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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요지성] 왜 유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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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웅 작성일19-07-18 15:54 조회1,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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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금요지성 2학기 과제 1조 이 기 웅

 

왜 유식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얼마 전에 복잡한 마음을 잠시라도 잊고자 대청소를 했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갈피에서 20대 초반의 오래된 반명함판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낯선 사진이 왜 여기에 있지? 이 사람은 누구지?’궁금했다. 마침 거실에 있던 아내에게 사진 속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아내가 사진을 한참 살펴보더니 당신이잖아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뭐라고? 하면서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봤더니 35년전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찍었던 내 사진이었다. 갑자기 ‘35년 전의 나는 누구이고 지금의 나는 누구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나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과거와는 많이 변해 있었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에 대해서 단순히 피상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나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이 나라는 존재는 몸도 생각도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성찰 없이는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유식사상은 이렇게 변화하는 내가 변하지 않는 나를 세워서 현실의 세계를 분별하는 그 마음의 구조와 작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일종의 불교심리학이다. 유식을 한마디로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밖에 다른 경계대상이 없고 세상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란 뜻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펼치는 세계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 마음이 만드는 세계는 무엇일까? 그동안 나는 고집불통망나니라는 무의식속의 또 다른 나로 인해 소통이 막힌 괴로운 세계를 펼쳐왔다. 그래서 불교공부를 시작했고, 불교가 추구하는 근본가치도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괴로움의 세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괴로움의 세계는 내가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곡해된 현실세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괴로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현실세계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부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서로 의존관계에 있는 인연에 의해 변화(緣起)하는 존재다. 모든 것이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이며,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무상한 것이 괴로움인가? 그 것은 변화하지 않는 라는 상()을 세워서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욕망이라는 갈애(渴愛)가 일어나며, 그 갈애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근원적 괴로움이 생기고, 온갖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하셨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이라는 갈애는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세계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타자들과의 끊임없는 관계를 통해 변화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은 연기법과 무아를 기초로 현실세계의 통찰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부처님의 이런 근본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을까? 인도에서 유식사상이 출현하기 까지를 근본불교, 부파불교, 중관불교, 유식불교로 나눌 수 있다. 근본불교란 부처님 사후 불교가 근본분열이 일어나기 전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원형 그대로 유지되던 시기를 말한다. 부파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원형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 상좌부와 시대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이해하려는 진보적 대중부로 분열한 후 다시 20여개의 부파로 분열한 시기를 말한다. 이를 소승불교 또는 아비달마라고도 부른다. 부파시대인 B.C 3세기경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소카왕의 적극적인 불교 옹호정책에 힘입어 불교가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 왕실과 상업으로 부호가 된 장자들의 막대한 지원으로 사찰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이에 따라 걸식행위는 형식적이 되었고 승려들은 아라한을 증득하기위한 개인적 해탈에 몰두하거나 자기부파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교리연구에만 치중했다. 그러다보니 중생구제는 멀어져갔고, 심지어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왜곡시키기도 하였다. ‘설일체유부라는 한 부파는 일체유라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실유설을 주장하여 부처님의 무아설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실유설이란 모든 존재는 쪼개고 쪼개다 보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와 같은 극미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부파불교에 대한 반성으로 전개된 것이 대승불교이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교리적 측면에서는 부처님의 연기법과 무아사상을 기초로 ()’이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그리고 실천적 측면에서는 부처님의 전생담에서 보살이라는 개념을 중생구제와 해탈을 동일시하는 의미로 확장시켰다. 예컨대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중생을 다 구제한 후 부처가 되겠다고 서원한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이 용수보살이다. 용수(150~250)는 바라문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태어났다. 용수는 반야부경전의 공()이론을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발전시켜 부파불교의 실유설과 유아론적인 힌두교의 범아일여사상을 철저히 비판한다.

용수는 중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무자성이며, 이 세상의 본질은 무자성이기 때문에 일체가 공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는 연기적 존재다. 예컨대 크다는 말은 작다는 말에 의지하여 크다는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와 같이 용수는 부처님의 무아와 연기법을 근거로 공사상을 전개한 것이었다.


유식사상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그러나 용수가 죽고 80여년이 흐르자 용수의 공사상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텅 비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이란 언어에 집착하여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과 언어가 필요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4세기경 유식사상이 출현했다. 유식사상의 발생요인은 선정수행을 통해 공관(空觀)을 체득한 사람들이 마음에 나타난 영상을 보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임을 자각하여 출현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윤회의 주체를 추구한 끝에 마음 근저에 있는 아뢰야식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뢰야식은 과거의 업보를 씨앗형태로 저장하고 있다가 그 씨앗이 적당한 인연을 만나게 되면 발아하여 다음 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유식의 창시자는 미륵이다. 미륵이 실전인물인지는 불명확하지만 그의 저서 유가사지론에는 선정수행이란 요가행의 17단계가 서술되어 있다. ‘유가사란 요가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식을 체계화시킨 사람은 무착(300~390)이며 브라만출신이다. 그는 처음 화지부라는 소승의 한 부파에 출가했지만 나중에 대승불교로 전향한 뒤 공관을 체득한다. 그러나 공관을 체득한 뒤에도 의문이 생겨서 도솔천에 머물고 있던 미륵보살을 찾아가서 배운 것이 유식사상이었다. 무착은 당시의 유심사상을 정리하여 섭대승론을 펴냈다. ‘섭대승이란 대승을 포섭한다는 의미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세계를 9가지로 정리하였다.

유식사상을 완성시킨 사람은 무착의 동생인 세친보살(320~400)이다. 그도 설일체유부라는 소승에 출가하여 구사론500여권의 소승논서를 저술했으며 대승으로 전향한 뒤에도 500권의 대승논서를 저술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천부논사, 천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친의 저작 중 가장 뛰어난 것은 당시의 유식사상을 총망라하여 30개의 게송으로 압축한 유식삼십송이다. 세친은 이 책에서 마음의 구조(心王)8식로 정리하고, 그 마음의 작용(心所)들을 탐··치 등 51가지로 세세히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가에는 너무 난해하여 많은 논사들이 주석을 달았다. 그중 대표적인 십대논사들의 주석서를 당나라 현장법사가 17년간의 인도유학 후 귀국하여 성유식론으로 번역함으로써 법상종의 유식사상이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래된 것이다.


왜 유식인가?

   그런데 공관(空觀)을 체득한 무착과 세친이 왜 유식에 심취했을까? 그리고 현장법사는 무엇 때문에 유식을 공부하러 멀고 먼 인도에까지 갔을까? 나는 요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 마음의 온갖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일어나는 마음의 미세한 작용들을 차분히 그리고 세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길들여진 습관에 속기 십상이다. 일어나는 사건마다 감각적 욕망들이 함께 작용하여 굴레를 만든다. 그 굴레에서 벗어날라치면 그 때마다 그 의지를 흐리게 하는 유혹적인 마왕이 등장한다. 마왕의 실체는 감각적 쾌락에 길들여진 습관의 종자들이다. 마왕은 그릇된 사고나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들을 찾아낸다. 그래서 무착과 세친등은 나와 같은 중생들이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마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절실하다고 여긴 것 같다. 유식사상은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하여 번뇌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제법 잘 버티고 있다. 그것은 유식공부를 통해서 요동치는 감정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덕분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과 나의 고집불통 무의식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삶의 방향도 잡혀가고 있다. 유식불교는 요즘의 나에겐 삶의 등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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