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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다르게 살아본 자, 차라투스트라
 글쓴이 : 시원한바람 | 작성일 : 19-07-18 19:42
조회 : 436  

다르게 살아본 자, 차라투스트라

 

송형진(장자스쿨)

 

차라투스트라는 이란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예언자로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스타어(고대 이란어)로는 자라투스트라(Zaraϑuštra)이고, 영어식으로는 조로아스터(Zoroaster), 독일어식으로 하면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 신과 악마의 강렬한 대립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유명한 종교이다. 형이상학을 극복하고자 했던 니체는 왜 이원론적 세계관의 종교를 창시한 그 예언자를 자신의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니체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도덕이라는 오류를 창조해냈으며... 그 오류를 인식한 최초의 사람... 진실성에 나오는 도덕의 자기 극복이라고. 차라투스트라는 도덕을 창조해낸 자이지만 그 도덕의 오류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스스로의 진실성으로 그것을 극복해서 다르게 살았던 최초의 인류라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도덕이 오류임을 알고 그것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도덕을 창안하였으나 그것이 오류였음을 최초로 인식하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진실성으로 끝까지 자신의 사유를 밀고 나가서 스스로 도덕을 극복했다는 점을 니체는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왜 진실성에 나오는 도덕의 자기 극복자로서 차라투스트라에 주목했을까? 그것은 니체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이해될 수 있다. 니체의 생애는 자기 극복의 연속적인 과정이었다. 자기 극복의 체험과 그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자신의 사상이 니체로 하여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차라투스트라)를 쓰게 하였다.

 

니체 생애에서의 자기 극복의 체험들

 

니체는 18441015일 프로이센의 작센주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부모는 모두 루터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6(1849)에 아버지를 병으로 잃게 되면서 여자들만이 있는 외갓집(나움부르크)에서 자랐다. 니체의 어머니는 니체가 아버지를 따라서 목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1864년부터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공부를 하던 니체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신학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한다. 돔김나지움과 슐포르타 시절에 목사였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쓰기도 한 니체가 스스로 신학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니체는 무신론이야말로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었다고 말하고, “삶과 반대되는것으로서 신을 사유하면서 신의 존재와 관념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발발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니체는 전쟁을 경험하기 위해서 참전하게 된다. 당시 그는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고전문헌학 교수였는데, 학교 당국은 의무병의 조건으로 참전을 허락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참전하지만 심한 이질 등에 걸려서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제대를 하게 된다. 참전 중에 사실상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을 썼는데, 이 책은 1872년에 발간되었고, 대중적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고전문헌학계에서는 혹평을 받았다. 이 책의 주요내용 중의 하나가 그리스 비극이 민중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말한 소크라테스를 그 그리스 비극을 몰락시킨 주범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 그것으로 충만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삶을 긍정하게 한다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진실하고 담대한 사유가 서양정신사의 거인과 맞짱을 뜰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니체는 1865년에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게 되고, 그 책에 매료된다. 그리고 바그너라는 시대적 거장과 1869년부터 쇼펜하우어 사상과 음악을 매개로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되고, 그와 함께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고자 1876년 열리는 바이로이트 축제를 준비한다. 하지만, 축제 당일의 소란스런 분위기, 공식적인 행렬과 연설, 늙은 황제의 참석 등을 보고 심하게 구토 증세를 보이면서 행사 중간에 자리를 뜨고 만다. 바그너에게서 국가주의와 영웅주의를, 그리스도교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니체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동시에 쇼펜하우어와도 결별한다. 이것은 형이상학에 의지하고 있던 자기 자신과의 결별이기도 하다. 그는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글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년 출간)을 쓰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자기의 생각을 바그너나 쇼펜하우어 등 다른 사람의 사유가 아닌 자신의 사유로 말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1870년 전쟁 참전이후에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1879년에 더 이상 가르치는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둔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맞는 기후와 토양을 찾아서 여러 도시를 방랑하며 글을 쓰는 생활을 정신적 붕괴(18891)가 찾아올 때까지 계속하게 된다. 18761881년은 니체의 건강이 가장 나빴던 시기였지만 그는 병을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병으로 인해서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관점을 전환하는 훈련의 기회로 삼았고, 그래서 하나의 시각만을 갖는 맹목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그로 인해서 건강이 가장 안좋았을 때에 염세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전형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병을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적극적 자극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을 창출했다. 이 위대한 건강은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기 위한 생리학적 전제이기도 하다고 니체는 말한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던 니체는 새로운 사유를 만나게 된다. 18818월 어느 날 질스마리아의 실바플라나(Silvaplana) 호수의 수르레이(Surlei)라는 거대한 바위에 도착했을 때, 영원회귀라는 새로운 사유가 그를 엄습한 것이다. 영원회귀 사유는 차라투스트라의 근본사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원회귀 사유는 기존의 가치와의 결별을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와 사유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형이상학과의 결별 그리고 새로운 영원회귀 사유의 엄습, 이것이야말로 니체로 하여금 차라투스트라를 쓰도록 만들었다. 이는 쇼펜하우어 등의 영향으로 자신도 형이상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가 있었지만 그것의 오류를 인식하고 진실한 사유를 통해서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진실성에서 나오는 도덕의 자기극복자인 차라투스트라를 그의 책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넘어서다

 

차라투스트라에는 영원회귀이외에 신의 죽음’,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등 니체의 핵심 사상들이 모두 녹아서 아포리즘 형식으로 들어있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고, 비유와 은유가 넘쳐나며, 마치 산문시와 같아서 이를 음악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그 평온한 음조를 제대로 들어야만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차라투스트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의 대표적인 경구는 신은 죽었다일 것이다. 이 경구가 니체의 저작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1882년에 발간한 즐거운 학문이고, 그 다음 저작인 차라투스트라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 경구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가 절대적인 존재인 신의 죽음이고, 두 번째가 영원불변하는 것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의 죽음이다.

당시 독일은 과학의 발전,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헤겔 철학의 유행, 왕정에 대항하는 부르조아 세력의 확산, 경제적 풍요와 부르조아 문화의 만연 등으로 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신을 믿고, 신을 믿는 것 이상으로 과학,이성,국가,유토피아 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럴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를 니체는 2천년 넘게 서양정신사를 이데아’, ‘도덕의 법칙’, ‘절대이성’, ‘유토피아’, ‘등 이원론적 형이상학에 기반해 있는 가치와 관념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형이상학의 극복을 자신의 위대한 과제로 생각했으며, “신은 죽었다는 말로 그것을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왜 신을 죽여야만 했을까? 왜 형이상학의 극복을 자신의 위대한 과제로 설정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열쇠는 플라톤시대 이전인 기원전 6세기경의 고대 그리스에 있다. 니체는 그 시대의 그리스 문화에는 삶에 대한 엄청난 긍정이 있음을, 그 문화를 지배했던 것은 지상의 정신이었음을,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모든 타고난 재능은 경쟁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의 긍정, 지상에서의 구체적인 체험, 경쟁과 능가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그 많은 전쟁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의 충만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달리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지배하에 있는 인간들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 때문에 삶이 움츠려 들고, 원래 삶이란 괴롭고 피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삶의 충일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경쟁보다는 절대적인 권위와 신앙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삶이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삶을 긍정하라”, “대지에 충실하라는 사유를 했던 니체는 자신의 진실성으로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해서 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신의 죽음이후에도 허무주의의 출현으로 이 세계의 왜곡은 계속된다고 보았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 위버멘쉬의 출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상승의 욕구를 가진다는 힘에의 의지”, 최고의 긍정사유인 영원회귀등을 사유하였다. 이런 새로운 가치와 사유들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것이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인 것이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를 읽어갈 것이다. 니체의 위대한 과제가 담긴 책, 도덕을 창안했으나 그 오류를 최초로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다르게 살아본 자인 차라투스트라가 평온한 음조로 들려주는 만인을 위한 책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책을 나는 읽어갈 것이다. 나는 이제 그의 독자(讀者)가 된 것이다. 높은 긍지, 부드러운 손가락과 용감한 주먹 그리고 즐거운 긍정의 정신을 가진 독자이고자 한다. 함께 그런 독자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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