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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나는 크레타인이오!
 글쓴이 : 한정미 | 작성일 : 19-07-18 21:39
조회 : 352  


나는 크레타인이오!

한정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418월부터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필했다. 그 시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무렵이다. 그 해 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간다. 기근이 닥치면서 식량 부족으로 무려 50만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카잔차키스가 머물던 에기나섬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아내 엘레니가 들판에서 뜯어 오는 초근목피와 몇몇 친구들이 보내준 음식물 그리고 근처 감옥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구해다가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체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지냈고 아내에게 미소 지으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그리스인 조르바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자유와 용기와 유머가 넘치는 활기찬 그리스인 조르바가 전쟁과 기아로 인한 죽음과 사투하며 쓰였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지중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시스 조르바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지중해는 끊임없는 전쟁과 혁명과 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시대였다. 크레타의 독립 전쟁과 마케도니아 독립 투쟁, 그리고 발칸 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암울했던 시기였다. 19세기 말 지중해를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이 무너지면서 발칸반도에 대한 지배력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케도니아에 모자이크처럼 섞여 살고 있던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등 각 민족은 마케도니아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직접 마주하고 있던 그리스와 불가리아 사이의 암투가 가장 치열했다. 소설 속에서 조르바는 불가리아 마을로 들어가 불을 지르거나, 악질 불가리아인 신부를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1904년 불가리아와의 치열했던 게릴라전을 이야기했다.

 

전쟁 중 조르바를 만나다


소설 속 조르바의 본명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 (1865?-1941)’. 그는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서쪽에 위치한 카타피기라는 조그만 광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르바가 살던 당시 그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청년 조르바는 힐키디키 지방에서 광부로 일하며 15세의 어린 엘레니와 결혼을 해서 8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던 중 엘레니가 32살의 나이로 죽자 조르바는 아이들을 버려둔 채 집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아기온 오로스라 불리는 아토스산으로 떠났다. 그때가 세계 1차 대전 중이었고 마침 아토스산을 여행하던 카잔차키스를 만났다고 한다.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친구가 된 뒤, 펠로폰네소스 남부에 있는 마니(Mani) 지역으로 함께 가서 탄광을 개발했다. 그리스는 갈탄이 부족해 에너지 공급이 부족했다. 전쟁으로 궁핍한 국가 살림을 돕기 위한 시도로 이루어진 탄광개발, 그의 첫 번째 아내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시인 앙젤로스 시켈리아노스 등 몇몇 친한 지식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르바가 그 갈탄 광산 노동자 감독관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나 갈탄 탄광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바탕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조르바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크레타를 생전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후 1939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맞서 싸웠다. 그렇게 한창 전쟁 중 일 때 그들이 함께했었던 이야기인 그리스인 조르바가 완성된다.

그리스인 조르바1946519풍운아 알렉시스 조르바스의 삶과 행적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에서 출판되었다. 그 다음 해인 1947년에 스웨덴어로 번역되었고 스웨덴에서의 반응은 매우 뜨거워서 초판이 나오자마자 다 팔리고 바로 2쇄 인쇄에 들어갔다고 했다. 곧이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가 개선장군처럼 파리를 활보하고 다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놀라운 인물은 죽어서도 여행을 계속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조르바가 마치 케이블을 짓느라 공중에 날려버린 돈을 다 갚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전쟁이 휘몰아쳤던 격동의 시기였으나 고통의 삶을 살아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가득한 영혼을 지닌 자유인들이었다.


크레타인으로 산다는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당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자라선 아테네대학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법학보다는 문학에 심취했다. 25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유명한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니체에 관한 학위논문을 완성한다. 학업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온 뒤 정치 관료, 사상가, 사전편찬작업, 어린이 책을 집필하는 등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특히나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행이다. 그의 삶은 늘 여행 중이었으며 유럽은 물론, 일본, 인도, 중국 등 아시아까지 섭렵했으며 많은 여행기를 저술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항상 자신은 크레타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인이며 자유인이라고 말했다. 늘 크레타의 흙을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며 힘이 들 때면 흙을 움켜쥐며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는 왜 그렇게 크레타를 사랑하는지, 왜 그렇게 부르짖는지, 왜 한시도 잊지 않는지 나는 궁금했다.

크레타는 1830년 그리스가 독립하고 나서도 편입되지 못하고 여전히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841년 이후로 4(1858,1866,1869,1897)이상의 독립투쟁을 일으켰고 1913121일이 되어서야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독립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크레타의 독립투쟁 때 마다 그리스본토나 낙소스섬으로 가족들과 함께 잠시 피신해 있기도 했었다. 1897년 크레타가 4번째로 독립투쟁을 시작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4대 강대국은 크레타를 진정시키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터키인들이 1898825일에 수백 명의 그리스인과 17명의 영국 군인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크레타를 점령하고 있던 4개국은 오스만 터키군을 섬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크레타를 독립국으로 선언했다. 소설 속에서 조르바가 터키인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와 마담 오르탕스가 4개국 제독의 애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이때의 파란만장했던 크레타를 말하고 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계속 받던 시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크레타의 고난과 투쟁을 고스란히 목격했던 카잔차키스, 그런 그에게 크레타, 크레타의 투쟁, 크레타의 자유가 당연히 자신의 의무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나는 축소판 크레타처럼 영혼이 내 핏속에서 팽창함을 느꼈다. 그것은 세대박이 범선과 형태가 같아서, 같은 세기와 같은 공포와 같은 기쁨을 살아가며, 성스러운 아시아와 정열적인 아프리카와 이성적인 유럽 세 대륙의 격렬한 가능성을 지닌 세 바람 속을 항해 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열린책들, 634-  


Born to be 역마


크레타 인으로서 핏속에 크레타의 영혼을 가득 담고 바람 속을 항해하는 세대박이 범선 같이 그는 일찌감치 길을 떠났다. 아테네 대학을 졸업한 후 석 달 동안 그리스 본토를 순례했다. 순례를 통해 그는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 위치한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숙명적인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하고 크레타로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아토스산, 팔레스타인, 프랑스, 영국, 이집트, 러시아, 카프카스, 스페인, 영국, 일본, 중국 등 74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세계 곳곳을 끊임없이 탐사했다. 또한 자신의 욕망과 사유와 고통과 고뇌, 고독하면서 격렬한 구도적 열정으로 창작의 원천인 내면을 정제하는 연금술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죽을 것 같다란 그의 말이 증명하듯이 늘 바람을 타고 다니는 배처럼 세계를 떠돌다가 드디어 193753세 때 그리스 에기나 섬에 집을 마련했다. “장기거주라고 불리긴 했지만 카잔차키스가 이라는 곳에 거주했던 기간은 길어야 2년 정도라고 한다. 그리스가 동서양의 교차로라서 그런 걸까? 카잔차키스의 사유와 철학의 길도 지상의 길처럼 열정 가득하다. 그는 자신의 스승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단테, 니체, 붓다 그리고 조르바를 꼽았다. 특히나 30세부터 불경을 읽고 연구하며 붓다의 생애를 다룬 희곡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에 감명을 받고 끊임없는 시련의 고통을 맞서 나아가는 숭고한 영혼을 본받기를 원했다.

길 위에있었던 그의 삶은 죽음조차도 길 위에서였다. 초청받아간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중국 독감에 걸리게 되었고 독일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그의 시신은 크레타로 옮겨졌다. 크레타의 영혼과 육체를 이어받은 크레타의 아들, 크레타의 말이 무엇인지를 찾으러 세상을 순례하고 다시 크레타의 품에 안긴 자유인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향한 투쟁 가득한 길고긴 영혼의 순례를 마치고 그의 유언대로 소박한 나무 십자가가 세워진 이라클리온의 마르티넹고 언덕에서 사랑하는 아내, 엘레니 사마우와 함께 조상들의 뼈와 영혼이 함께 있는 크레타의 흙으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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