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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삶의 무대는 극장이 아니라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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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주 작성일19-07-19 15:12 조회1,5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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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대는 극장이 아니라 공장이다
 
이한주 (금요 대중지성)


근대과학의 발전과 함께 서양철학은 테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인식론에 몰두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을 지나면서 존재론 쪽으로 기울어진다. 새 존재론이었던 헤겔의 변증법은 맑스와 니체에 의해 비판적으로 극복된다. 그리고 이 두 계열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구조주의와 68혁명을 통과한다. 그런데 68혁명이 지난 후 두 계열의 철학은 인간이 억압을 욕망하는 이유 앞에서 가로막힌다. 자본주의는 무르익을 대로 익었고, 물신에 예속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도 그에 따라 더욱 강렬해져 갔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안티 오이디푸스』가 탄생한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자본주의 억압을 욕망하는 인간에 대한 철학서이다. 그래서인가? 서문을 쓴 푸코는 들뢰즈와 과타리가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몸 안에 남아있는 파시즘의 가장 미세한 흔적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몸 안의 파시즘! 미세하게 침투한 자본주의의 억압! 이 책은 이것에 대한 자세한 추적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을 따라가기 전에 초석으로써 먼저, 『안티오이디푸스』의 탄생 배경을 알아보자.


1968년, 질 들뢰즈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상상력에 권력을!” 
“보도블럭 아래 해변이 있다!”


수많은 깃발과 플래카드와 포스터가 뿌려진 거리, 혁명의 외침들 속에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질 들뢰즈, 쓰러진 그의 몸 위로 혁명의 목소리들, 발걸음들이 뛰어 왔다가 멀어져갔다. 들뢰즈는 리옹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서 유일하게 혁명의 거리에 섰다. 하지만 폐질환에 잠식당한 몸으로 학생 시위대와 함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몸 상태를 들뢰즈 자신이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후 일어날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 사건 이후 한쪽 폐를 절단해야 하는 큰 수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보통사람의 8/1의 폐활량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왜, 그는 그 몸으로 혁명의 외침들 속에 있어야만 했던 것일까?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은 교육환경에 반발하는 학생시위로 시작해, 노동자 세력의 가담, 드골 정부의 사임으로 이어졌으나 이전의 혁명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혁명은 보도블럭 표면 위에서 그치는 거시정치의 혁명이 아니었다. 68혁명은 혁명의 슬로건이 말해주듯 보도블럭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그 아래의 모래 속 삶들이 원하는 자유, 일상 속에 스며든 파시즘에 대한 저항, 미시정치의 혁명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 여성, 반교육, 반지식인 등, 그들의 자유 쟁취를 위한 새로운 힘의 분출이었던 것이다.

 
이 혁명은 미완으로 남는다. 드골 정부의 우파는 몰락했고, 공산주의 좌파는 이 혁명의 몸부림이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문제로만 보였기 때문에 해결점을 제시할 수 없었다. 대중들은 실망했다. 이데올로기도, 지식도, 국가권력도 자신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오히려 대중들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지식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고, 지식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중들에게 혁명의 리더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다. 그들 자신이 혁명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되었다. 일상을 덮치고 있는 모든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의 권위가 아니라 보도 블록을 부수고 깨트려 버릴 망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들뢰즈는 자신 또한 망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또한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기존의 철학 체계의 억압을 부술 필요성을 느꼈다. 왜냐하면, 68혁명 이후 그에게 새로운 질문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 이 자본주의는 왜 파시즘을 욕망하도록 부추기는가? 왜 젊은이들은 저항하다가 좌절하고 주저앉는가? 그들은 이 억압의 존재를 명확히 알고 있는가? 들뢰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체 속으로 자신을 완전히 들이밀어 넣기로 한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견고한 주체를 해체해야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니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우연 같지만, 필연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과타리와의 만남이었다.



1969년, 가타리

1969년 6월에 펠릭스 과타리는 『기계와 구조』라는 텍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자였던 그는 라캉의 제자였고,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고, 맹렬한 활동가였으며 프랑스 라보르도 정신병원의 주도적 멤버였다. 과타리는 스승이었던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한가지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억압에 관한 이론이었다. 억압이란 어떤 표상을 의식에서 배제하고 무의식 속에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억압 이론을 발전시켜 인간의 무의식에는 원억압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에 단일한 원인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었다. 라깡은 남근의 거세로 그것을 표현했다. 거세, 또는 원억압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파악한 과타리는 의심이 일어났다. 욕망에는 과연 결핍이라는 단일한 원인밖에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들뢰즈의 텍스트,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를 참조한다.  


들뢰즈의 이론은 사회의 불균형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종교, 정치, 경제, 또는 노동, 결혼, 예속과 자유, 삶과 죽음 등에 관련이 있는 선이라는 기표는 하나의 체계로써 반복해야만 하는 의무처럼 인간 사회에 적용된다. 하지만 이런 기표의 성격과 달리 적용 대상인 사회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 즉 차이나는 현실과 천천히 조우한다. 이때 기표와 기의 사이에 존재의 불균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포착했다. 반복과 차이의 어긋남, 이 불균형, 이 지점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여기에서 철학의 실천적 측면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논리에는 모호함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타리는 이 논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항상 정신병원의 현장에서 환자들을 관찰하던 과타리의 중점적 의문은 ‘정신병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의 집단, 가족, 관계의 존재 방식에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병원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라는 것이었다. 정신병원도 사회적, 정치학적인 장으로 파악하고 구성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과 사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억압을 다른 시선으로 볼 기회이며, 이 사회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과 연결될 지점이라고 보았다. 활동가였던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아주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불균형과 환자들의 병리적 심리 연구, 그것의 사회적 실천까지도 생각한 것이다.


과타리는 『기계와 구조』에서 기계 개념으로 이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결핍이라는 단일한 원인으로 보는 스승 라깡을 부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복수의 흐름으로 파악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직 과타리의 논리체계로서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때 이 설익은 논리에 강하게 이끌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들뢰즈였다. 들뢰즈는 68혁명 이후 자신의 사유의 선명함을 강렬하게 원했다. 들뢰즈는 인간 사회의 불균형과 억압의 관계성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에서 시작되어 라깡까지 이어진 원억압, 또는 남근의 거세의 기원으로서는 68혁명의 현상, 혁명의 상황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들리즈가 보기에 인간 사회와 욕망 사이에서 억압이 일어나는 것은 결핍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반복되기 때문이었다. 이 반복의 작동 원리, 이것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가타리의 기계 개념이었다. 그런데 기계의 작동 원리에서 들뢰즈는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반복이 억압을 낳는다면, 그 기계는 반복하지 않으려는 성질도 갖고 있다는 것도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타리가 말하는 기계가 가지고 있는 이탈의 특성이었다. 


여기에서 현대철학의 혁명적 개념인 ‘욕망하는 기계’가 탄생한다. 반복되는 시간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탈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기계, 기계의 어긋나는 작동, 다른 기계들과 연결과 접속, 절단, 침투,  또 다른 이탈, 여기에서 생성의 힘을 본 것이다. ‘욕망 기계’의 혁명의 힘, 즉, 무의식의 혁명적 힘이 창조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들뢰즈와 과타리는 자신들의 욕망 기계의 연결 접속을 느낀다.  '욕망 기계'의 혁명적 힘이 창조되는 순간이었다.



욕망 기계의 공장으로

‘욕망 기계’를 함께 창조한 들뢰즈와 과타리는 억압의 문제로 다시 돌아간다. “인간은 왜 흡사 자신들이 구원받기 위해서이기라도 한 듯이 자진해서 예속을 위해 싸우는지” 스피노자에서 라이히로 이어지는 질문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물신의 파시즘을 욕망하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철학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의식의 세계는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극장이 아니라 무한히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천명한다. 즉, 우리의 삶의 무대는 하나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아니라 욕망하는 기계들이 진동하고, 폭발하고, 아우성치는 공장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 공장 위에서 사유의 혁명가로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를 가르고 있는 간극들, 그 불균형, 거기에서 발생하는 파시즘, 그 속에 자신들의 혁명가로서의 꿈을 새기게 된다. 『안티 오이디푸스』라는 망치의 탄생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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