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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주체를 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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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7-19 16:55 조회2,0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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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 지우다


                                      김영미(금요대중지성)


 

청년기의 레비스트로스는 철학공부에 싫증을 느껴 방황했다. 철학교수자격시험 준비과정에서 사유 훈련한 변증법이 사달이었다. 변증법은 무슨 문제든 적용하기만 하면 깔끔하게 처리되는 만능 해법이어서 논리적 기교와 지능은 연마시켰다. 대신 정신은 고갈되었고, 우울증이 왔다.


  그렇담, 철학교수자격시험은 통과했을까? 물론이다. 그것도 최연소로 3등이었다. 성적으로만 보면 우수한데 그리 진정으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자신의 사유는 냉기로 찼다고 여겼을까? 



주체가 흔들리다


국면은 다른 지형으로 이행할 통과하는 경계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불연속이다. 이때 레비스트로스는 낯선 것과 충돌하여 우울증이 들었고, 자기 세계에 대한 의심과 혼란을 겪었다. 그는 존재의 지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뚫고 새로운 지형으로 나갔다.


  그는 청소년기를 포함해 남미 브라질 탐사와 미국 망명 시절 3번의 국면을 맞았다. 과정에서 주체는 흔들렸다. 이미 주어진 주류 사유방식과 문화, 사회 체계들에 거리를 두고, 회의했다. 그중 남미 브라질의미개사회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이었다. 철학공부에 적응하지 못한 국면이 정신적 방황이었다면, 번째 남미 탐사는 몸으로 경험한 혼돈이었다. 결과 문명적 사고 대신야생의 사고 발견했고, 그것을구조주의 체계화했다. 이야기는 번째, 번째 국면들을 전개하면서 설명하겠다. 


  밥벌이로 시작한 철학 교직생활에서도 그의 우울증은 여전했다. 2 차에 우연히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회』를 읽었다. 가슴이 떨렸다. 지식이 아닌 직접 체험해야만 사회의 의미를 있는 원주민 사회를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을 싫어한 그였지만미개사회탐사만큼은 떠나길 바랐다. 시절인연이 닿았다. 지도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파울루 대학에 교수 자리가 비었는데 관심 있냐는 것이었다. 드디어 도전할 기회를 만났다. 상파울루에 체류하는 내내 브라질 내륙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여태껏 소개되지 않은 원주민까지 찾아 나섰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당시 유럽의 주류 사상은 인간중심주의였다. 신과 전제군주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인식했다. 미신과 무지몽매에서 벗어나 대상을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할 있고,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이루었고, 그만큼 물질적 부를 증대시켰다. 역사 발전에 진보를 이룬 서구는 비서구 사회의 모범이 된다는 우월감에 빠졌다.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요, 인간중심주의이다. 모두가 자기와 똑같기를 바라는 동일성의 욕망이었다. 


  무렵 레비스트로스는 새로운 국면을 통과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접하며 절대화된 주체를 의심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인식할 없으면서 스스로 결정하며 산다고 착각했다. “의식은 자기를 속인다.” 또한 실제 의식할 있는 표면이 아닌, 의식이 접근할 없는 심층에 의미가 있음을 배웠다. 이를 토대로 남미미개사회 탐사하며 서구 계몽주의의 현실을 목격했다. 훼손되고 망가진 그곳은 그야말로슬픈열대였다. 이제 그는 1930년대 새로운 철학으로 등장한 주체철학에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실존주의와 대척점에 섰다.


차이와 동일성의 대결


2 세계대전 번째 국면을 맞았다. 그는 나치 세력을 피해 뉴욕 신사회연구원과 록팰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이주했다. 물설고 서먹서먹한 미국 생활은 힘들었다.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았다. 생활공간을 마련하고, 생계 수단을 찾으며 곡절도 겪었을 것이다. 대신 초현실주의자 그룹과 미국 인류학의 대가 보아스와 우정을 나누면서 현상 이면에 있는 의미를 탐착하는 일에 힘썼다. 특히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에게 소쉬르의 랑그와 기호체계, 그리고 음운론의이항대립개념을 배웠다. 이항대립은 사물과 사물 간의, 요소와 요소 관계의 대립성을 설정하고, 여기서 이들 간의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차이들이 변형되어 만들어낸 상이한 문화 속에서 공통 질서가 있음을 밝혀준다. 레비스트로스는 음운론을 통해 친족 문화가 언어활동처럼 구조적임을 간파했다. 그래서 이항대립을 친족 분석에 적용했다. 


  결과 상이한 친족관계와 혼인 형태에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공통성이 있었다. 모든 문화는 근친상간을 금지했을까? 근친 간에 혼인을 하면 돌연변이를 낳을 있고, 문화적으로도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사회 질서와 균형을 위협할 것임을 인간들이 직감한 것은 아닐까? , 인간은 동일성을 반복하면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것이다. 그래서 동일자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 인간 삶을 영위하는데 차이가 중요함을 무의식적으로 구조에 반영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체계를 분석하여 구조주의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구조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친족, 혼인, 신화, 토템에 담겨진 모든 문화 간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와 법칙을 탐구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구조란 무엇일까? 구조는 다양성 너머에 있는 공통성이고 불변의 법칙이다. 일종의 보편적 무의식이라고 있다. 따라서 구조는 의식되지 않지만 사물들을 작동시키는 질서이며 개인이 있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개인은 구조의 산물이며, 구조는 주체보다 선행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당대 핫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2 세계대전 파리 카페 어딜 가든 실존주의 이야기로 웅성거렸다. 실존주의는 양차 대전 이후 인간성에 대해 의심했던 개인들에게 삶의 목적과 희망을 주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니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무엇을 해도 괜찮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리고 항상 결핍된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미래의 , 새롭게 변화될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자기를 실현하면 된다.


  개인은 무한한 자유와 인간에 대한 무한긍정 철학에 열광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자유는 어찌 보면저주받은 자유였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도박 같았다. 선택과 결과의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었다. 무한한 자유는 불안을 야기했다.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중압감과 옴짝달싹할 없는 상황에 빠졌다.


  개인들은 존재의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절대 자유를 부정하였다. 선택과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였다. 개인들은 안전한 은신처를 찾았다. 그곳이 내면이었다. 자기를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고독한 공간이었다. 내면에 숨은 개인은 외부를 평가하고 계몽하려고 들었다. 개인은 차이를 제거하고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무리 이루었다. 그러나 타자의 시선 때문에 더욱 옴짝달싹할 없었다. 


  1955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출간했다. 실존주의에 지친 개인들은 구조주의에 열광했다. 개인에게 타자는 이상 지옥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자는 나를 발견할 있는 거울이고, 세계를 이해할 있는 매개체였다. 개인은 관계를 사유함으로써 개인은 혼자가 아닌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살아감을 깨달았다. 시선을 유럽을 넘어 비서구까지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다양한 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은 구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었다. 질서 속에서 절대적 주체는 사라진다. 


  이제 개인은 절대 자유와 책임의식의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이상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래를 향해 자기를 기투하지 않아도 되었다. 개인의 시선을 미래에서 현재로, 내부에서 관계로 돌렸다. 사람들은 차이를 사유하면서 영원한 것을 욕망하지 않고 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당면 상황에 집중할 있었다. 의미 추구에 짓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킨 구조주의는 혁명적이었다.


생기를 되찾다


레비스트로스는 여러차례 국면을 통과하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찰했다. 마치 신석기인들이 미개척지에서 경작지를 만들려고 불을 내는 것처럼 국면마다 수확을 얻은 다음 국면으로 넘어갔다. 타자와 낯선 세계들과 부딪힘으로써 이미 주어진 사유들을 의심했고 새로운 사유에 필요한 영양분을 빨아들였다.


  과정에서 주체가 흔들렸다. 주체는 자신이기도 하고 서구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와 정면충돌하면서 동일자를 욕망하는 폐쇄성을 보았고, 타자를 거부하는 배타성을 직시했다. 이것이 젊은 우울증의 원인이었고, 자신의 사유가 냉기로 이유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미개사회 직접 체험함으로써 자기 세계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쐬어 생기를 얻은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여행은 마음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임을.


  그는 항상 원시사회를 지칭하는미개사회 작은따옴표를 붙여 사용했다. 이는 서구인들을 향한 경고였다. 자기와 다르다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자각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슬픈 열대』는미개사회 대한 명예회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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