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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응답하라! 그리스 비극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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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각통 작성일19-07-19 17:11 조회1,5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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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그리스 비극 정신
 

성승현(금요대중지성)


오이디푸스는 우연히 신탁을 듣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양자였던 걸 몰랐던 오이디푸스는 집을 떠남으로써 이 신탁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길을 떠나 테바이에 이르렀는데, 수수께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스핑크스를 목격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맞히게 되고, 테바이의 왕이 된다. 하지만, 테바이에 이르는 길에서 이미 친아버지를 죽였고,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되어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버린다.

오이디푸스는 정말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비극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겪은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안다’라고 생각했던 점이고, ‘안다’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점이다. 

나는 이 지점이 『비극의 탄생』에서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지식, 인식으로 삶을 겪는 ‘이론적 인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론적 인간들은 ‘인간’을 해결 가능한 과제들이라는 협소한 영역 속에 가두고, 지식과 학문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지식이나 학문으로 무장을 해도 개별적 실존의 끔찍함을 들여다보게 되면, 겁을 먹고 마비된다. 오이디푸스는 어떠했는가. 이 끔찍한 실존 앞에서 겁을 먹고 마비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파괴함으로써, ‘안다’고 하는 기존의 세계와 결별했다. 이제 불확실한 삶, 동시에 모든 것이 가능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 과정 자체가 ‘생성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고통’에 대한 사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이고, 비극이다. 삶과 동시에 죽음이 있고, 만남과 이별, 건강과 병 등이 함께 맞물려 있다. 게다가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삶의 태도를 정한다. 이상을 설정함으로써 삶을 낭만하거나, 삶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며 부정하는 것으로! 니체는 낙관하는 것이나 비관하는 것 모두 염세주의적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염세주의란 반드시 몰락, 퇴폐, 실패, 지치고 약화된 본능의 표시인가? 강함의 염세주의는 존재하는가? 행복으로부터, 넘쳐나는 건강으로부터, 그리고 생의 충만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가혹함과 두려움 그리고 삶의 악함과 문제적인 것에 대한 지적인 욕구는 존재하는가? 혹시 충일함 자체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가능한가? (니체,  『비극의 탄생』, 아카넷, 16쪽) 


니체는 두 종류의 염세주의를 제시한다. 약함의 염세주의와 강함의 염세주의! 약함의 염세주의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으로부터의 도피를 특징으로 한다. 또 학문이란 것은 삶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기에 약함의 징후라 판단한다. 반면, 강함의 염세주의는 생의 충만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삶에 있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적으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용기, 즉 자신의 힘을 시험해볼 수 있는 호적수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니체는 기대했다. 독일 국민이 강함의 염세주의자이길! 그래서 오이디푸스처럼 고귀하게 고통을 겪어내기를! 


‘진보’라는 허울에 갇힌 독일 
『비극의 탄생』을 쓴 당시의 독일이 어땠길래,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정신까지 소환하게 된 걸까? 니체가 19세기 독일을 다르게 사유하게 된 전환점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다윈은 ‘인류가 우발과 우연을 통해 순전히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그 전까지는 ‘존재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점 진화한다’는 것으로써 진화를 생각했는데, 다윈은 고차적인 동물들과 인간이 전적으로 개체들 안에서 ‘우연한 변이’를 거쳐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로써 세계를 ‘진보’의 차원이 아닌, ‘변화’의 차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니체는 이를 적극 수용했다. 이제 더 이상 존재에 대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세계는 우연과 변화의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니체가 보기에 독일은 이런 분위기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은 어땠을까?  당시 독일의 화두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혁명은 진보된 국가를 따라하는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발적이지도 않았고, 내부의 동력도 크지 않았다. 유럽은 동양과 달리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국가를 형성했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립은 뒤늦게 이루어졌다. 후발주자였던 독일의 혁명은 ‘프랑스 따라잡기’ 식이었다. 특히 상류층은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 마치 고등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기도 했다. 혁명도 프랑스 혁명에 자극을 받아 일어났다. 프랑스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신호 삼아 혁명을 일으켰다. 주요 과제는 ‘국가의 수립’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했고, 결국 실패했다. 외부(프랑스)에서 제시한 매뉴얼을 흉내내는 것으로 혁명을 수행하고 있으니 결과는 뻔했다. 

앞에서 니체가 생각한 세계는 ‘우연과 변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의 ‘성격’이다. 즉 승리한 자는 ‘적응한 자’가 아니라 ‘강력한 활력을 지닌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독일은 오히려 이미 세팅된 유럽 세계에 ‘적응하는 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연도 겪지 않고, 변화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던 거다.

1871년, 드디어 독일이 통일을 하게 되었다.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쟁’에 의해서였다. 니체에게는 전쟁이 오히려 우발적인 사건처럼 해석됐다. 혁명조차 수동적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독일이 전쟁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니체의 생각으로는 ‘전쟁이 곧 진정한 혁명’이었다. 그랬기에 니체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했다. 

나 역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희망 때문에 나는 직접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후송되는 부상자와 함께 누워서 그를 돌보던 외로웠던 밤, 비극의 세 가지 심연을 떠올렸던 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세 가지 심연은 바로 광기, 의지, 고통입니다. (같은 책, 13쪽)


니체가 전쟁에서 발견한 ‘광기, 의지, 고통’은 혁명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혁명은 기존의 세계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폭발되는 것이 ‘혁명’이다. 광기와 고통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비로소 ‘주체’가 사라진다. 무슨 말일까. 비자발적이고, 반혁명적인 독일이라는 껍질이 벗겨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진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게 되고, 우연과 변화를 겪을 수 있는 독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우려하는 점이 있었다. 인간이 우연과 변이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삶을 살아간단 말인가. 인간들이 느낄 삶에 대한 ‘허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윈주의를 참작하면서도 결코 다윈주의 때문에 붕괴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상을 만들어야 한다"(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북캠퍼스, 130쪽)고 생각했다. 니체는 그 세계상을 그리스 비극에서 발견했다. 


자기포기, ‘디오니소스적인 것’ 
“도덕과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삶에 대한 가르침과 평가, 즉 하나의 순수하게 예술적인, 하나의 반기독교적인 가르침과 평가를 고안했다. 그것을 무어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 것인가? 나는 문헌학자로서, 언어의 전문가로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어떤 그리스 신의 이름으로 그것에 세례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니체,  『비극의 탄생』, 아카넷, 31쪽)  


위의 글을 통해 『비극의 탄생』이 무엇과 싸운 텍스트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도덕적인 것, 기독교적인 것과 싸웠다. ‘삶’을 구토와 염증을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 보고, 저 높은 곳에 ‘이상’을 설정해놓는 것. 그렇게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삶을 경멸과 영원한 부정의 무게에 짓눌려 갈망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서, 삶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은 정해진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지 않으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는 우발과 우연의 산물이다. 니체가 발견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모든 가치들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이상’으로 설정된 세계를 깨뜨리고 전복한다. ‘주체’가 해체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는 늘 고통이 따른다. ‘고통’이 비극의 주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깨지고 파괴되고 전복된다고 해서 ‘허무’를 낳지 않는다. 왜? '자기를 포기'하는 동시에 아폴론적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개체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체가 생성되고, 새로운 삶이 펼쳐지게 된다. 이것이 니체가 그리스 비극을 소환한 이유다.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다. 디지털의 혁명이니, 4차 산업의 도래니 하는 것들이 화두가 되고 있다. 유동하는 신체,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고방식이 가능한 세상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사유를 조각내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은 점점 고립되고 황폐해진다. 왜일까. 이러한 새로운 세계조차 자기 자신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파편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저 디지털이라는 혁명 위에 가볍게 올라탈 수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구성할 수 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디오니소스적인 사유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그리스 비극 정신’에 응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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