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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만가성인(滿街聖人), 모두에게 성인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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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19-07-19 17:45 조회1,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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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성인(滿街聖人), 모두에게 성인의 길을 열다

한성준(장자스쿨)


어느 한 소년이 스승에게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라고 묻는다. 스승은 “과거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자네뿐만 아니라 부모의 명성도 높아지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소년은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학문하여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라며 맞받아쳐 선생을 당황하게 한다.
  이 당돌한 소년의 이름은 왕수인. 보통 왕양명이라고 불린다. 그는 소년 시절 자신의 주장처럼 평생 성인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명나라 최고의 장군이자 시대를 뒤흔든 철학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고 철학을 하였기에 그런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또 그가 말하는 성인은 무엇일까?
 

청년 양명의 주자학으로 성인되기

  왕양명이 살던 명나라 시대는 유학, 정확히 말하면 주자학이 국가의 학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관리가 되고 싶든, 성인이 되고 싶든, 사대부라면 누구나 주자의 학문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 주자학은 사대부들이 단지 관리가 되기 위해 유학을 공부할 뿐, 삶의 문제는 불교의 선(禪)이나 도교의 양생술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남송시대에 탄생한다. 이렇게 삶과 공부가 분리된 지점에서 주자는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고민하다 그 답을 ‘앎’에서 찾는다. 그는 단지 오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대한 윤리론이었던 유학을 만물과 우주에 대한 앎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으로 확대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떨어져 있지 않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만물과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그가 『대학』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격물(格物)’에 있다. 격물이란 ‘물(物)에 이른다(格)’는 것이다. 사물을 하나하나 탐구해가다 보면 앎이 쌓여서 지극해지고 결국에는 우주의 이치인 천리(天理)를 통달할 수 있게 된다. 
  주자는 이 ‘격물’을 통해 사대부들에게 성인에 이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공부와 배움을 통해 이치를 터득한다면 누구든지 올바르게 살아가는 성인이 될 수 있었고 죽음의 문제마저 넘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새로운 비전과 방법은 유학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고 많은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세상천지에서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는지 한 때 그의 제자가 3000명에 이른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혁명적인 학설은 주류 학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사이비 학문으로 낙인찍혀 위협을 받게 되고 그가 죽은 후 백여 년이 지나서야 국가로부터 정식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자학은 관학이 되면서 생기를 점점 잃기 시작한다. 사대부들은 국가의 관리가 되기 위해서 주자의 말들만을 외우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면서 주자와 다른 의견들은 배척하고 무시되었고 점점 새로운 학문을 억압하며 도그마가 되었다. 결국, 주자학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으로서의 생명력도 잃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사대부들은 주자학이 관학을 넘어 ‘성인-되기’ 학문으로 부활하기를 꿈꾼다. 양명도 그런 사대부 중 한 사람이었다. 청년이 되어서는 친구와 함께 대나무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이치를 터득해보려 대나무 격물을 시도하지만 열흘 넘게 대나무와 씨름만 하다 쓰러져 병을 얻게 된다. 그 이후 경전을 통해 이치를 터득해보려고도 하고, 친구와 스승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 불교나 도교에 빠졌다가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끊지 못하고 결국 다시 유학으로 돌아와 ‘성인-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심(心)학의 탄생, 누구나 성인에 이르는 길

  양명은 주자의 학설에 따라 내 마음 바깥에 있는 이치를 배우고 궁구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 그에게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온다. 양명이 35살 때 황제를 이용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유근의 횡포를 보다 못해 상소를 올린다. 양명의 상소에 분노한 유근은 죽을 수도 있는 장형 30대를 때린다.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의 오지 중의 오지인 귀주의 용장으로 귀양을 가게하고 난 후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까지 한다. 양명은 자객을 피해 겨우 용장에 도착하지만, 그곳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고 뱀, 독충 같은 것들이 우글거렸으며 풍토병과 자객까지 끊임없이 그를 위협하였다. 거기다 먹고 마시고 잘 곳조차 제대로 없어 자급자족해야 했다. 
  양명은 유배를 와서 모든 영광과 치욕, 희망과 절망을 버렸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두려움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는 돌로 만든 관을 만들어 놓고 밤낮없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성인이었으면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크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난다. “나의 본성은 성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여태까지 마음 밖에 있는 사물에서 이치를 구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같이 있던 시동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그날 밤의 번개 같은 깨달음은 양명의 심(心)학을 탄생시킨다.
  그는 그날 밤 이치가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치임을 깨달았다. 우리 마음속에는 배우지 않고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고 있는 양지라는 이치가 이미 있기에 ‘성인-되기’는 이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양명은 성인이란 모든 이치를 알아서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사욕에서 벗어나 자신의 양지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렇기에 공부 또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사욕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공부는 길 위나 전쟁터,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능하기에 양명은 장군이자 동시에 철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양명의 깨달음은 개인적이면서 시대적이었다. 명나라 중기로 오면서 기술이 점차 발전해서 개간 할 수 있는 땅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잉여생산물이 점점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상업과 공업이 활성화되었다. 농업 위주의 경제가 흔들리고 상인과 기술자들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사농공상의 구별이 약화되었다. 단지 주어진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났다. 하지만 주자학에서는 백성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들은 배울 수 있는 환경과 계급이 아니었기에 성인이 되는 길에서 배제되었다. 백성은 단지 사대부들에 의해 교화되어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다. 양명학은 그런 사람들에게 성인에 이르는 길을,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만난 사건 속에서 사사로운 욕심을 덜어내고 양지를 실천하여 바름을 구현하기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산은 평지의 광대함만 못하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듯, 누구나 양명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양명의 제자 중에는 사대부는 물론 소금 장수, 협객, 나무꾼, 옹기장이, 농사꾼 등 직업과 신분의 경계가 없다. 그들은 길 위에서 양명을 만나 배우고 또 전파해 나간다. 그들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벽을 보고 좌선을 하거나,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며 양지를 밝혀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스승 양명은 물론, 제자들 역시 길 위에서의 강학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제자들의 강학은 단지 스승의 말을 되풀이하는 활동이 아니다. 각자가 스스로 깨닫고 실제로 체험한 만큼만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의 학문은 스승의 학문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학문이다. 그들은 양명이라는 평지를 거침없이 달려 나가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나간다. 그중에서도 전서산, 왕용계, 왕심재 이 세 제자가 특히 그러했다. 전서산은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마음을 바로잡는 공부를 핵심으로 삼았고, 왕용계는 마음의 본체 상에서 깨닫는 수양을 중시하였다. 사람들은 나중에 전자를 양명 우파라 부르고 후자를 양명 좌파라 부른다. 공부를 중시한 우파는 주자학과 연결이 되고, 깨달음을 중시한 좌파는 불교와 가까워진다. 소금 장수라는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진 왕심재는 실천을 중시한다. 
  왕심재는 어렸을 적 가난하여 마음껏 공부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혼자 경전들을 읽기 시작했고 깨우친 바가 있었다. 그러다 양명을 만나 양지를 배우고 나서 크게 감복하여 그의 제자가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이것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직접 만든 수레로 거리와 산골짜기를 누비며 학문을 전파해 나간다.
  양명은 자신을 태산에 비유한 제자에게 “태산은 평지의 광대함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항상 평지가 되려 하였다. 태산은 어디에서든 중심이 되려 하지만 평지는 중심이 없다. 단지 넓게 펼쳐져 있어 어디로 달리든 스스로 기준이 되어 길을 만들어나가게 한다. 성인이 되는 길은 결국 단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두가 성인에 이르는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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