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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제국 팽창의 욕망에서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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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9-07-19 19:12 조회1,8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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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팽창의 욕망에서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박장금 ( 금요 대중지성 )


  『회남자, 회남 지역의 제후, 유안이 지은 저술이다. 유안은 한나라가 최고로 번성했던 무제 시대를 살았고, 한고조 유방의 손자로 삼대가 모두 모반에 연루되어 자살한 집안의 자손이기도 하다. 비운의 집안으로 안타까워하기에는 그의 이력은 참으로 다채롭다. 그는 회남 지역의 왕이었고 당시 방술가로 대변되는 지식인 그룹을 보유한 총책임이자 수석 문장가였다. 그리고 갈홍이 지은 신선전에 등재될 만큼 중국 대표 신선이고, 우리가 즐겨 먹는 두부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종횡무진 행보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지식인 그룹을 이끌면서 글을 쓰고, 신선이 되고자 했던 왕. 그가 쓴 회남자에는 신선의 비전이 담긴 통치술, 황로학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황로학? 우리는 보통 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방술 정도로 생각하지만, 중국의 자부심 한나라의 정치 비전이었다. 보통 유학을 중국 사상의 중심축으로 알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황로학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여 회남자와 만나려면 황로학의 출현부터 이해해야 한다.

 

황노학이 탄생하기까지

  중국은 통일되기까지 물고 뜯는 전쟁의 역사였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사람들은 끝도  없는 싸움에 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순시절 같은 통일된 중국을 만들어낼 만한 강한 통치자를 갈망했다. 평화를 향한 갈망이 어디서나 뚜렷하게 느껴졌다.” 통일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으로 위험한 게임이었지만 중국 백성들은 평화를 위해 통일을 욕망했다. 백성들의 갈망 덕분에 기원전 221, 춘추전국시대(BC 770~ 220)를 지나 전쟁이 종식되고. 진나라에 의해 통일이 되었지만 14년 만에 멸망한다.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위해 법가를 정치 이념으로 삼아 백성들을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능률적인 전투 기계로 만들었다. 법가의 창시자 상앙은 능력 제일주의를 표방했다. 법가 입장에서 보면 유학의 예 또한 번거로운 격식으로 경쟁에서 밀리는 무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제국은 유학을 버릴 수는 없었다. 유가의 정치는 하늘의 명을 시행하는 것으로 공자님 덕분에 정치가 영적 행위로 격상되면서 통치자가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대신 유학은 통치자에게 인의의 실천을 요구했지만, 왕의 자질에 따라 인의는 외면한 채 땅 따먹기에 열중하는 왕이 등장했다. 법가와 다름없이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졌고 작은 국가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소국 중심으로 등장한 게 노자이다. 노자는 인의를 내세워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유가를 비판하면서, 제발 세상의 근원을 탐구해서 도와 하나가 되라고 요청한다. 자연에서 영원한 것은 없고, 흥망도 번갈아 옴을 깨달은 왕은 영토 확장이 살 길이 아니라 소멸로 가는 길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듯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통치술로 가져와서 지배자들의 탐욕을 멈추게 만들었다.

 

황로 정치의 힘, 도덕적 자기 수양

  제자백가의 피 튀기는 실험을 거치면서 한고조 유방(BC 247~195)은 통일에 성공한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이어 두 번째 제국이 되었지만 통일의 기쁨 보다는 수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제국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절실한 질문 속에서 탄생한 통치술이 황로학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실험장이었고 황로학은 그 경험을 종합한 통치학이기도 하다. 예컨대 법가로 인해 진나라는 망했지만, 제국을 운영하려면 능률적인 법가 없이는 제국 통치가 불가능했다. 법가만 그런가. 제국 유지는 하나의 사상에 의존할 수 없었다. 결국 제자백가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용법이 중시 되면서 여러 사상이 믹스된 통치학이 요청된 것이다. 황로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제자백가 중 노자와 당시 신화적 존재인 황제가 강하게 결합했다. 무력으로 통일한 제국 유지를 위해 부드럽고 약하고 유연해야 한다는 무위를 통치원리로 삼는 모순된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언뜻 보면 이상적으로 보이는 황로학이 현실에서 적용될까 싶지만 한나라 문경제는 무위지치를 멋지게 실현한다. 무위 정치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 같지만 영토 확장의 욕망을 도덕적 수양으로 방향을 틀어야 가능하다. 실제로 문경제는 자애로움, 검소함, 천하를 위해 나서지 않음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문제의 경우 저고리 하나를 20년간 입었고, 형벌과 조세를 가볍게 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안정되었고 풍속이 바뀌었다. 솔직히 업적 면에서 보면 문경제가 한 일은 별 게 없다. 하지만 이 행위 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윤리적 가치를 읽어내야 무위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문경제는 무위야 말로 백성을 살리는 정치임을 확신했고 무위의 비전을 온 몸으로 체득고자 스스로 수행자 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연 과학의 발전과 성인 만들기

  문경제의 무위 정치 덕분에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은 원기를 회복하였고, 무제는 나라가 안정되자 문경제와 달리 제도와 문물에 대한 정비를 해야 했다. 행정을 관리하기 위해 유자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황로학이 뒤로 밀렸다. 유학은 양날의 칼이다. 무제는 유학의 인의를 내세웠지만 수행보다는 인의를 명분 삼아 부국강병을 추구했다백성들조차 원기를 회복하자 오만과 사치로 흘렀다.

  이때 회남왕 유안은 진나라 멸망의 징후를 감지했다. 유안은 지방 제후로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면 제후국은 소멸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유안의 대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보통은 전투력 강화에 주력할 것 같은데 천하의 지식인들을 불러 모아 스스로가 총감독이 되어 제자백가의 학설은 물론 천문, 지리, 역법, 수리, 기술 등의 성과들을 집대성한다  


“(중략) 천지의 이치가 다 연구되고 인간의 일들이 다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왕의 도가 모두 갖추어졌다. (중략) 지금 대부분 배우는 사람들은 성인의 바탕이 없는데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평생 혼돈 속에서 헤매면서 환히 밝은 도를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천시, 인사, 제왕의 도를 회남자에 담았으니 보통 자질의 인간도 배우고 실천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 자부심은 그 당시 자연철학의 폭발적인 발전과 관계가 깊다. 태양의 흑점 관측, 역사에 일시 기록, 위치와 거리가 정확한 바둑판식 지도 제작, 나침판, 자석 기술. 의학 등, 과학이 발전했지만 지금 시대와 다른 점은 그 것이 인간의 윤리와 같이 간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석의 밀고 당기는 관찰을 통해 사물들 사이에 흐르는 자기장의 세계를 감지한다. 이런 원리에 대한 자각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인식을 깨고 사물 또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서로 감응하는 거대한 장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회남자에서는 자득(自得)’으로 표현하는데 마음의 작용을 자기장과 다르지 않게 보았다. 그것은 몸과 분리된 정신활동이 아니다. 심신을 아우르는 마음은 정, , 형으로 세분화되어 오장육부를 윤택하게 하고 사지를 움직이게 하고 피와 기운을 돌게 하는 매커니즘과 연결된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그토록 원하는 쾌락과 부귀 등은 생명을 위협하는 활동으로 전락한다. 쾌락을 위한 성행위는 생성하는 자연에 위배되는 것으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기혈을 막히게 해서 오장을 병들게 한다. 쾌락만 그런가. 힘의 증식인 권력은 자연의 원리를 역행하는 것으로 개인의 몸과 삶뿐 아니라 백성과 국가까지 병들게 만든다. 유안은 자연의 이치 탐구를 통해 인간을 개별자에서 우주적 존재로 이해하는 정신혁명이야말로 인간이 부국강병을 위한 전쟁 기계로 소모되지 않고 생명을 보존하는 몸, 관계, 통치의 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던 것이다. 이것이 유안이 추구한 절대 자유의 경지로 대변되는 신선의 세계이기도 하다.

 

몸과 우주 통치술의 부활

  유안은 드디어 회남자를 완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제에게 받쳤다. 무제의 제국 팽창 욕망을 회남자의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그 방향을 틀 수 있는 역전의 순간이 아니던가. 아쉽게도 무제는 유안의 기대와 달리 부국강병의 욕망을 끝내 접지 못했고, 유안은 모반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자살하고 회남자는 실패와 좌절의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의 비전은 폐기되어야 할까. 앞서 문경지치에서 보았듯 황로학은 매뉴얼적인 통치술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의 자기장 속으로 녹아드는, 도덕적 수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치술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본질에 대한 질문, ‘Who am I’?에서 출발한다. 회남자 첫 챕터 원도는 유한한 몸을 끝도 없는 존재로 확장한다. 내 안의 우주적 생명성과 조우하면서 더 이상 소유가 무용해지는 경지를 터득하게 만든다. 그것은 주체의 해체이자 인간 스스로 우주가 되는 체험이다. 유안의 표현에 따르면 오장을 윤택하게 하고 피부를 촉촉이 적시면서 그 법칙을 몸에 체득하여 평생을 함께하면, 온갖 일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온갖 변화에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손바닥 안에 구슬을 가지고 놀 듯 스스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유안은 드디어 회남자를 완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제에게 받쳤다. 무제의 제국 팽창 욕망을 회남자의 몸과 우주의 비전으로 그 방향을 틀 수 있는 역전의 순간이 아니던가. 아쉽게도 무제는 유안의 기대와 달리 부국강병의 욕망을 끝내 접지 못했고, 유안은 모반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자살하고 회남자는 실패와 좌절의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의 비전은 폐기되어야 할까. 앞서 문경지치에서 보았듯 황로학은 매뉴얼적인 통치술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의 자기장 속으로 녹아드는, 도덕적 수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치술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본질에 대한 질문, ‘Who am I’?에서 출발한다. 회남자 첫 챕터 원도는 유한한 몸을 끝도 없는 존재로 확장한다. 내 안의 우주적 생명성과 조우하면서 더 이상 소유가 무용해지는 경지를 터득하게 만든다. 그것은 주체의 해체이자 인간 스스로 우주가 되는 체험이다. 유안의 표현에 따르면 오장을 윤택하게 하고 피부를 촉촉이 적시면서 그 법칙을 몸에 체득하여 평생을 함께하면, 온갖 일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온갖 변화에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손바닥 안에 구슬을 가지고 놀 듯 스스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부국강병을 위해 백성을 전쟁 기계로 만드는 당시의 욕망은 경제 성장을 위해 국민을 노동과 생산의 현장으로 내모는 우리 시대와 너무나 닮아 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정치는 어떤가.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자본 증식의 욕망은 다르지 않다. 물질 분배를 정치로 여기고 그것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대중은 화폐와 상품이 주는 쾌락을 향해 돌진하여 자기 몸과 삶을 기어코 망친다. 전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중독, 묻지마 살인, 마약, 폭력, 강간, 성 접대, 횡령, 돈세탁 등이 난무한다. 이것은 인간이 악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시선으로 세상과 만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왜 그 원리를 통치와 삶에 적용하지 않는가.

회남자는 통치자의 책이지만 나에게도 유효하다. 나도 내 몸과 삶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연의 원리 탐구를 통해 고립된 신체가 우주적 신체가 되는 길. 그때 나의 일상은 우주의 흐름으로 충만해지면서 실천의 길이 열린다. 이천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물질의 분배 외에 어떤 비전도 부재한 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그래서 다시 황로학이다. 유안이 꿈꾸던 몸과 우주의 비전을 다시 실험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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