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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장자, 생명의 주체로 살다
 글쓴이 : 소리향 | 작성일 : 19-07-19 20:03
조회 : 312  

장자, 생명의 주체로 살다

 


금요대중지성 이경아


장자는 자신의 시대가 침체하고 혼탁해서 올바른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우리는 왜 그 시대를 알아야할까? 자신이 사는 시대를 한 발 떨어져 보기는 어렵다. 내가 살아가는 현장이기에 수많은 사심들이 뒤섞여 있고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에 눈이 멀어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시대 밖에서 어느 한 시대를 볼 때는 객관화가 가능하다. 그 시대를 거울삼아 내가 사는 현재를 비춰볼 수 있다.

 

카오스의 시대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 중기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 왕이 봉토를 내렸다. 하지만 한, , 조 세 나라는 진()의 세 가문이 제후에게 대항해서 만들어진 나라들이다. 이제 나라란 주 왕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뺏고 소유하는 것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전국(戰國)시대가 열린 것이다. 철기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생산량 증대 그로 인한 부에 대한 욕망과 강대국들의 천하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전쟁이 끊이질 않았던 시대이다. 전쟁의 양상도 바뀌었다. 예의바른 전사들이 전차를 몰며 경쟁하던 제의화 된 대결이 사라졌고 명예와 존엄보다는 규율, 효과가 중시되었다. 전투도 효율성이 중시 되어 귀족들이 아닌 군사전문가들이 지휘했다. 과거에는 어린이, 여자. 부상자, 병자를 죽이지 않았는데 이제 모두가 적이 되었고 잔인해졌다. 징병제를 실시했고 농민들도 실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민들도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면 신분이 상승 되었다. 철기와 말이 만나면서 넓은 평지에서만 가능했던 전쟁이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되었고 속도전, 장기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강대국들에게 짓밟히고 전란과 기아, 살육과 능멸이 흔했던 가혹한 시대. 지배층에선 권력찬탈로 왕들이 수시로 죽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전쟁에 희생되어 들에는 죽은 시체들이 한 나라만큼이나 쌓였다. 전쟁 중에 부모는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형제자매와 처자식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자는 송나라 출신인데 송나라는 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땅(四戰之地)’이라 불렸다. 여러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는 약소국이어서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고 항상 전란의 중심지가 되었다. 망한 은나라의 후예로서 멸시받고 착취당하며 살았지만 그들에겐 오래된 문화와 전통이 있었다. 송나라는 쓸데없는 동정이나 인정을 뜻하는 송양지인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인과 예를 중시해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장자가 처한 세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수탈, 잔혹한 정치로 인해 암울한 세상이었다. “처형된 사람은 서로 포개어 나란히 누워있고, 형구를 짊어진 사람은 비좁아 서로 밀치고 있으며, 매를 맞아 죽은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고 탄식하게 만드는 그런 불안과 절망에 가득 찬 시대였다. 장자의 고민은 이러한 불안과 절망 속에서 시작되었다.

지식인에서 철학자로

 

장자는 송나라 칠원이라는 옻나무 숲에서 숲지기 생활을 하다 일찍이 그만두고 은자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릉숲에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장자가 지식인에서 철학자로 변전하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철학자의 길을 간다. 장자라는 텍스트를 쓰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장자가 조릉이라는 밤나무 숲 울타리 안을 거닐다 이상한 까치 한 마리를 보았다. 그 까치를 잡으려고 활을 쥐었는데 문득 울고 있는 매미 한 마리를 발견한다. 사마귀 한 마리가 그 매미를 노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고 까치는 그 사마귀를 잡으려고 제 몸을 잊고 있었다. 또 장자는 까치를 겨냥하느라 숲지기가 나타난 것도 몰랐다. 장자는 외물에 정신이 팔려 자기 생명을 놓치고 있고, 모든 생명이 위험하게 연루되었음을 깨닫고 3개월간 칩거하며 깊은 고민에 빠진다.

장자는 밤나무 숲이라는 그물망 안에서 만물이 다 연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누군가를 노리고 누군가도 나를 노리는 관계, 내가 외물에 빠져드는 순간 내 몸에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득에만 눈이 어두운 상태, 그리고 내 욕망을 따라 사는 건 위태로운 길이며 다른 존재를 위험에 빠뜨릴 뿐 아니라 내 생명력도 위험에 빠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서로의 생명을 지키면서 공존할 수는 없을까? 사회를 떠나 산다고 해도 만물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세상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과연 천하를 손에 쥐려는 군주만의 문제인가? 정치가들의 출세와 권력을 향한 권모술수, 상인들의 이익다툼, 부자에 대한 시기, 가난한 자에 대한 무시, 장애인에 대한 차별어린 시선...이런 것들은 군주가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외물을 쫓고 있었다. 그것이 재물이든 지식이든 명성이든 권력이든 간에. 장자는 개인 안에 있는 이러한 욕망들을 보았다. 또 이런 욕망들 넘어 더 근원적인 생과 사에 대한 부자유를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이 부자유한 현실에 속박되지 않고 생명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정권이 바뀐다고 부정부패가 사라지는가? 혹 위대한 정치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내안에 그런 욕망들이 작동하는 한 자유로울 수 없고 여전히 위태로울 뿐이다. 외물에 빠져들고 사회적인 가치기준에 매여 있는 한 우리는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장자는 세상의 현자들이 말하는 여러 가지 가치체계가 편견과 독단에 가득 차있다고 보았다.

인의예지를 주장하는 유가, 반전과 겸애를 외치는 묵가, 법치를 주장하는 법가...이들의 주장이 나름대로 근거는 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맞다 하고 절대화하는 그런 편협함을 비판한다. 공자의 도덕적 이상주의는 공자 자신의 훌륭한 인격과 성실한 노력이 뒤따랐고 권력에 비굴하게 야합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공자 사후 100여년이 지나면서 지금의 유가는 공자의 인이 실현되기를 바랐던 마음은 사라지고 공허한 형식만 중요시했다. 장자는 인의(仁義)의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권력에 아첨하고, 성인의 경전을 입신양명을 위해 이용하고,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그런 유가를 비판했다.

장자는 전쟁을 그만 두려고 하는 것이 전쟁을 만드는 근본이다고 했다. 묵가는 반전(反戰)을 주장하는데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전쟁을 찬성하는 것과 방식만 다른 것이지 지향점은 같은 것이었다. 전쟁을 반대한다면서 군비를 더 확충하고 평화를 원한다면서 평화조약과 함께 전쟁을 계획하고 상대를 지배하고자 한다. 전쟁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인 인간의 탐욕이나 세계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기에 반전론자들을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자로 보았다.

사마천의 분류로 인해 노장사상으로 엮여 있지만 노자와 장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자연의 근원적 이치를 따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춘추시대 인물인 노자는 통치를, 장자는 개인의 다스림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노자는 주나라 국립도서관 관장이라는 고위 관료였기에 통치를 말하고, 장자는 숲지기라는 하급의 관리였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자에게 이상적 인격의 대상이었던 성인(聖人)이라는 개념이 장자에게는 지인(至人), 신인(神人), 진인(眞人)이라는 주체적 성격을 지닌 개념으로 바뀌었다. ‘()’ 개념도 조금 다르다. 노자는 도를 천지 만물의 근원으로서 정적이고 본체론적인 실재라 생각했고, 태고의 소박한 도로 복귀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장자는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 그 자체가 도라고 생각했다. 노자의 국가주의 사상은 후에 황로학으로 한나라 통치의 기반이 된다.

장자는 전국시대를 지날 때는 57편 정도가 발견되었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서진의 곽상이 편집한 33편이다. 장자는 당대(唐代)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와 만나 선불교에 영향을 주었고 선승들 특히 9세기 임제는 장자의 진정한 계승자라 여겨진다. 당나라 때는 도교를 국교로 하면서 장자에 남화진경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생활인 장자

 

장자는 그 시대에 유명하지 않아서 많은 제자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예라는 제자를 비롯해서 자신의 장례를 치러 줄 제자들도 있었고 스승도 있었다. 부인과 자식들도 있었다.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녔지만 초나라 왕의 스카웃 제의는 국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거절했다. 목덜미는 비쩍 마른 채 두통으로 얼굴이 누렇게 떴고 아주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신을 만들며 살았다. 가난해서 못 먹기도 했겠지만 두통이 있고 얼굴이 누렇게 뜬 건 동의보감에 따르면 비위가 안 좋거나 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생각이 많고 까칠하고 예민하며 화도 잘 올라 올 거다. 하긴 예민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인간사회와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의 글이 예민한데 소심하지 않고 호탕하고 광대한 것은 자연을 관찰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작은 것부터 한없이 큰 것까지 잘 관찰한 덕이다. 전직이 숲지기였던 덕분에 글에도 자주 등장하는 작은 벌레들부터 다양한 나무들 그리고 드넓은 천지자연의 변화를 아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장자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헤칠 뿐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답을 구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장자가 혼란한 시대에 논쟁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

전쟁도 없고, 다이어트가 인생의 과제가 된 지금 우린 여전히 외부적 기준들로 불안하고 절망 속에 허덕인다. 외물에 시달리지 않고 생명의 주체로서 살기 위해 장자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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