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basic
커뮤니티
사진방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감성에세이

[2019 장자스쿨] 자기해부의 글쓰기
 글쓴이 : 무늬 | 작성일 : 19-07-20 01:15
조회 : 575  
   자기해부의 글쓰기(7.19.1).hwp (19.0K) [10] DATE : 2019-07-23 14:43:07

자기해부의 글쓰기

    

이문희(토요 장자스쿨)

      

신해혁명으로 297년간 지속된 청나라가 멸망했고,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한 이래 2133년 동안 지속된 중국 제국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이 사건의 태동은 중국이 세계를 향해 강제로 문을 열게 되는 1840년대 영국이 일으켰던 아편전쟁이다. 그 후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이 연합하여 개방을 거부하는 중국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이에 분노한 민중은 70년 동안 끊임없이 저항한다. 그리고 191110월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중봉기가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중국은 다시 대혼란으로 접어들고 만다. 혁명 후 나라는 왜 순식간에 더 복잡한 상황이 되었을까? 당시 베이징에 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루쉰의 남다른 기록을 살펴보자.

 

신해혁명 후 10


그가 베이징에 살게 된 경위와 기록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루쉰은 고향 사오싱에서 사범학당 교장을 역임하다가 혁명에 참가한다.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여전한 부패를 목격한 후 크게 실망한다. 그는 중앙정부는 여건이 좋을 것으로 판단해 중화민국원년(1912)부터는 임시혁명정부가 있는 난징에서 교육부 관료가 된다. 그리고 혁명정부가 북상함에 따라 베이징까지 간다. 혁명정부가 베이징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임시총통인 쑨원이 반혁명세력인 위안스카이와 타협했기 때문이다. 농민들과 청년들의 피로 이룬 총통의 자리가 겨우 3개월 만에 청나라의 베이양 대신이었던 관료에게 넘어갔다. 더욱이 그런 자가 중화민국의 개국공신까지 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이 지켜만 봐야했다. 혁명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폭풍우 같았다. 거센 비바람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서있는 곳이 위안스카이가 총통인 정부의 공무원이라니. 중국 전역은 혁명세력이든 봉건지주세력이든 상관없이 너도나도 혁명의 간판을 내걸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혁명당의 당원들은 지난날의 과오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자신들이 한 자리라도 차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 때 황제를 꿈꾸는 위안스카이는 비밀리에 하수인들을 풀어 모든 진보세력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교육부 사회교육국 과장으로 일하는 혁명가 루쉰은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이 시기를 루쉰은 나는 온갖 방법을 써서 내 영혼을 마취시켰다. 나를 국민(國民)들 속에 가라앉히기도 했고 나를 고대(古代)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더 적막하고 더 슬픈 일들을 몇 차례 겪었고 또 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일과 내 뇌수를 진흙 속에 묻어 사라져 버리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6년 동안 옛 고문을 베껴 쓰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러면서 틈틈이 혁명 후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생각, 가령 혁명 주도자들의 무능과 다시 황제가 되려는 자들 때문에 민중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등 다양한 상황을 글로 자세히 쓴다. 또한 주변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을 쉼 없이 기록한다

 

때마침 베이징에서는 문예운동으로 신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신청년이라는 잡지가 창간된다. 자신의 주장을 글로 알리고자 일본 유학시절 잡지를 창간하려 했던 경험도 있고, 친구의 권유도 있어 19185월호에광인일기를 처음으로 발표한다. 이 작품의 모델은 루쉰의 외사촌동생이다. 심한 피해망상증에 걸린 사촌은 베이징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함께 병원에 가는 도중 일본 경찰을 보고 새파랗게 질리고 공포와 음산한 눈빛을 보이는 사촌의 행동을 일기에 기록했다. 또한 사촌은 상태가 점점 심해져 자신의 형님을 의심하는 편지를 어머님께 유서로 보내달라고도 한다. 이 유서는 현재 베이징 루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른 작품들도 루쉰의 개인사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1919년 고향의 가족들을 베이징으로 이주시키는 실제 상황이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변신한다. 이사준비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 다시 만난룬투라는 고향친구가 소설 주인공으로 소환된다. 어린 룬투를 통해 보았던 근원적인 생명력과 현실을 살아내는 어른 룬투의 생계와 질병, 가혹한 세금, 지방 토호들의 등살을 잘 묘사해낸다. 이렇게 혁명 후 10년간 기록된 글을 1923년 소설집으로 묶어외침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한다. 14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어 각각을 따로 읽어도 좋다. 아니면 루쉰의 자전적 소설 한편으로 묶어 읽어도 무방하다. 신해혁명 후 극심한 혼란기에 민중의 삶과 자신의 일상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써내려 간 그의 해부도를 만날 수 있으리라.

 

신해혁명 전 30


이렇게 루쉰의 글을 읽다보면, 민중을 깨우는 냉철한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가 태어난 1881년 사오싱에는 이미 뾰족한 교회당 지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인근 지역에는 상업이 발달했다. 근대의 상징인 기차가 중국에 들어온 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7살부터 루쉰이 배워 온 것은 여전히 한학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베이징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과거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해 가는데 옛 것만을 고집하는 고압적인 태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작품이나 전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집안 전체가 이웃마을 축제에 가기위해 즐거워하는 순간 아버지는 루쉰이 고전 문구를 제대로 암송하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축제에 갈 수 없다고 한 일화. 혹은 할머니가 난리 중에 태평천국군에게 잠시 잡혀 있었다고 할아버지로부터 미움을 받았다는 일화. 어린 루쉰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난징유학과 일본유학시절 공부를 통해 차츰 해소된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게 해준 영국의 헉슬리가 쓴천연론 새로운 유물론 사상을 갖게 했다.생존 경쟁이나자연 도태,적자 생존이라는 말들을 처음 알게 된 후 곧 바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 같은 나라일지라도 낡은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생존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모든 문제의식을 그에게 마주치는 자연과학책을 통해 해답을 찾아간다. 영국의 지질학자 라일이 쓴알기 쉬운 지질학도 셀 수 없이 여러 번 읽는다. 이미 루쉰은 의학공부를 중도에 포기한 후 문학창작과 사상투쟁을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조국의 혁명을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또한 여러 진보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던 청년 문학가였다. 그가 기고한 내용 중 자연과학 지식을 소개하는 글은 특히 많다. 이렇게 자연과학에 심취하면서 더욱더 애국의 길도 함께 걸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907허난이라는 잡지에 그가 발표한 과학논문과 문예논문은 애국주의 사상과 혁명적 투쟁정신으로 가득 차있다. 제국 열강들이 중국의 자원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고 그는 오늘은 산시성 어느 탄광을 영국에 빼앗기고, 내일은 산둥성 모든 탄광을 독일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때에 이르면 중국에는 광업은 있어도, 광산은 없게 될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중국의 자원을 빼앗아가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미 낡아빠진 제도를 살짝 바꾸기만 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만을 차지하려는 얼치기 혁명가들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서구의 의회정치 또한 봉건시대의 관료들이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것뿐이라고 외친다. 루쉰이 가고자 하는 혁명의 길은 암살이나 혁명 단체 활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것과 다르다. 그는 문예활동을 통해 침묵하며 노예처럼 살고 있는 국민들의 영혼을 깨우고 정신세계에 불을 지피고자 했다. 루쉰의 사상은 당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개조하려는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가 써내려가는 글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시선을 갖춘다.

 

자기해부의 글쓰기


집안이 망해서 고향을 도망쳤다는 고백.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때려치웠던 일. 잡지를 창간하려다 사기 당했던 사연. 집안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취직했다는 이야기. 혁명 후 할 일이 없어 고전만 베꼈다는 이야기. 이것은 소설집 서문에 쓴 몇 가지 일들이다. 이를 통해 38년간의 루쉰의 삶을 알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문처럼 소설들 역시 중국의 현실과 민중의 삶을 현미경을 들이대거나 엑스레이 사진으로 찍은 듯이 보여주고 있다. 불같이 일었던 혁명은 흔적도 없이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져 버리는 이유를 정확히 찾아 그것을 중국 민중들에게 알려준다. 당시 루쉰의 본명이 저우수런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소설Q정전을 읽고 각자 자신을 욕하는 것이라며 자신과 원한관계가 있는 이가 실제 저자일 것이라 추측하는 일도 벌어졌다. 근대 혼란기에 그가 의사가 되었다면 몇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의사의 길을 접고 글이라는 무기를 들고 사상적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반식민지 상태의 중국을 구한 것임에 틀림없다. 루쉰이 진정한 자신의 스승으로 기억하는 후지노선생이 있다. 그는 루쉰이 그린 팔 혈관도를 보고 말했다. 보기 좋게 그리지 말고 사실대로 그려야 한다고. 사실 루쉰은 꼬마화가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꽃과 나무, 동물 그리기를 좋아했다. 이런 루쉰에게 후지노선생의 한마디는 사실대로 그리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했다. 그리고 루쉰은 정말 그렇게 했다. 냉철한 자기해부를 통해 진짜 혁명을 하고 싶은 자. 루쉰의 글을 먼저 읽어야 하리라.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맨앞이전다음맨뒤
목록
199개의 글이 있습니다.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99 [2019 화성] 자신이 연약하다는 착각 산진 10-13 170
198 [2019 화성]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살아봐 플랫화이트 10-13 213
197 [2019 감이당_ 나는 왜] 춤 한판의 이치도 그 안에 있었네 달무리 09-19 259
196 [2019감이당-나는 왜]이옥, 내 마음을 흔들다 감이당 08-29 465
195 [2019 감이당-나는 왜] 스토리로 읽는 『동의보감』 포츈쿠키 08-29 482
194 [2019 감이당-나는 왜] 생명본위(生命本位)로 산다는 것 파랑소 08-18 933
193 [2019 감이당-나는 왜]『티벳 사자의 서』, 아버지가 준 선물 수천수 08-18 471
192 [2019 금성-나는 왜] 감각적 쾌락, 집착에서 깨달음으로 후후연 08-16 471
191 [2019 감이당-나는 왜]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마음』읽기 산진 08-09 456
190 [2019 감이당-나는 왜] 나는 지금 '글쓰기'로 도주 중이다! 백곰 07-28 501
189 [2019 장자스쿨] 욕망 기계들이여, 새로운 삶을 부팅하라 세경 07-20 532
188 [2019 장자스쿨] 자기해부의 글쓰기 무늬 07-20 576
187 (2019 금성) 장자, 생명의 주체로 살다 소리향 07-19 474
186 [2019 금성] 공자님은 왜, 주역에 날개를 달았을까 복희씨 07-19 548
185 [2019 금성] 조설근의 기억법- 현장보존의 미학 흰나비 07-19 465

감이당| 주소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79-66 깨봉빌딩 2층   전화  070-4334-1790

copyright(c) 2012 gamidang.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