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장자스쿨] 욕망 기계들이여, 새로운 삶을 부팅하라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 > 감성에세이

[2019 장자스쿨] 욕망 기계들이여, 새로운 삶을 부팅하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경 작성일19-07-20 11:00 조회2,598회 댓글0건

본문

욕망 기계들이여, 새로운 삶을 부팅하라


“모든 것은 욕망 기계들이다.” 정신분석학과 자본주의와 정면 대결하는 『안티 오이디푸스』는 ‘욕망 기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도 윙윙 소음을 내고 서로가 서로에 연결되어 끊임없이 가동 중인 기계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셀 수 없는 작은 기계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형상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기계 복합체인 인간이 아니라 각 기계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들뢰즈와 과타리는 인간에게서 기계들로 우리의 관점을 이동시킨다. 

  출간 당시 정신분석학은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가장 혁신적인 학문이었고, 전후 프랑스를 놀라운 경제 성장과 풍요로 이끈 자본주의는 이미 절대적인 사회 시스템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정신분석학과 자본주의를 뒤집어버릴 기획에 착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획의 핵심이 바로 욕망 기계다. 책은 대성공이었다. “욕망은 기계다”라는 선언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욕망 기계가 세상에 왔던 이야기를 따라 욕망 기계들의 대담한 모험을 다시 시작해 보자. 


욕망의 재발견, 세상을 뒤흔든 목소리들


“이 책은 그 5월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과타리의 말대로 『안티 오이디푸스』는 68혁명에서 시작되었다. 1968년 5월 프랑스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로 들끓고 있었다.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 환경과 권위적인 대학을,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공장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노동 환경을, 여성들은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비판했다. 예술가들과 동성애자, 이민자들도 제각각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처럼 68의 주인공은 혁명 조직이 아니라 하나로 수렴할 수 없는 수 만 가지의 목소리였다. 그곳에는 권력 투쟁도 이념 전쟁도 없었다. 사람들은 거리와 극장, 학교에 모여 제각각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에 대해 토론하고 요구하며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있었다. 68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혁명이었다. 

  혁명은 권력이나 이념 투쟁 대신 매일의 일상을 파고들어 왔다. 큰 배움터인 대학은 왜 교수들의 권위주의에 절여 있는지,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들은 왜 일터에서 소외되어야 하는지, 여성들은 언제까지 남성들의 지배 속에 머물려야 하는지. 이제 혁명의 상대는 정확하게 겨냥할 수 있는 독재자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으며 일상 속에 스며든 모순과 불합리였다.     

  68의 뜨거운 목소리들은 응답을 받지 못했다. “5월의 사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드골 대통령의 말처럼 당시 정치권은 우파와 좌파를 가리지 않고 68를 이해하지 못했다. 공공의 적도 제거하고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는 시대를 만들었더니 겨우 대학과 공장, 가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정치권은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 이런 소소한 문제는 그들 즉 정치의 주제가 아니었다. 

  혁명은 길지 않았다. 두 달도 안 돼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위태롭던 드골 정권도 다시 자리를 잡는다.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68이 제기한 문제들은 그대로였고,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사회 곳곳에 우글거리는 목소리가 잠재되어 있음과 혁명은 일상이 바뀌는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유산이라면 유산이었다. 그리고 68을 온 몸으로 겪은 들뢰즈와 과타리가 있었다. 이들은 68의 현장에서 들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발견을 한다. 그것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욕망의 진짜 얼굴이었다.


욕망 기계의 탄생, 괴짜 철학자와 의사의 횡단 실험


1968년 5월 들뢰즈(43세)는 학생들과 함께 시위 현장에 있었다. 리옹대학의 철학 강사였던 그는 국가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 그의 관심사는 학술적인 성과나 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일상에서 철학의 역할이었다. 그런 그에게 68에서 목격한 뜨거운 목소리와 빠르게 식어버린 사람들은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박사 논문도 통과되고 8대학의 교수가 된 들뢰즈는 심리를 다루는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었다. 

  여기에 딱 맞을 정신분석학자가 있었다. 펠릭스 과타리(38세). 그는 68혁명의 도화선이 된 3월22일 반권위·반정부 운동의 주요 가담자였고, 15살부터 사회운동과 정신분석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치와 정신분석학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였다. 그 무렵 과타리는 마음이 복잡했다. 라캉의 제자였지만 욕망을 이론화하고 의사와 환자를 위계화하는 정신분석학과 명성만큼 권력화되어 가는 라캉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라캉의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에 반대하여 ‘욕망 기계’라는 개념을 구상했지만, 논리를 갖추지도 68의 문제의식과 연결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각자 문제의식을 품고 있던 두 사람은 1969년 6월 운명처럼 마주한다. 들뢰즈의 친구이자 과타리의 동료였던 정신과의사 장 피에르 뮈야르는 두 사람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그들을 이어주었다. 철학자와 활동가로서 너무나 다른 궤적을 살아왔지만 두 사람은 68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다르지만 또 닮은 서로를 읽어냈고 이후 둘은 평생의 동료가 된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만남은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임상, 철학적인 토대와 논리의 만남이기도 했다. 이렇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68과 68이 남긴 “일상에서의 혁명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이는 “왜 인간들은 마치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싸우기라도 하는 양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울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현대인의 억압과 예속, 소외에 대한 탐구였다. 이 문제의 바탕에는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와 이것을 “너무나 잘 용인하고 있는 우리 자본주의 사회”가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욕망 기계가 제시된다. 욕망 기계가 겨냥하는 것은 두 가지 믿음이다. 첫 번째 적은 라캉의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이다. 당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주체론의 한계를 대신하여 사회란 언어처럼 내재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인간 역시 이 구조의 산물이라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각광을 받고 있었다. 라캉은 이러한 대세적인 흐름을 정신분석학에 접목하여 성본능 중심의 프로이트의 이론의 약점을 기표와 상징계 같은 복잡한 의미화와 구조로 보강했다. 이로써 현대인에게는 프로이트-라캉이라는 이중 그물이 쳐졌다. 

  두 번째 적은 모든 욕망을 가족 안으로 회귀시키는 오이디푸스와 영원히 부르주아를 꿈꾸는 노동/소비부품으로서의 현대인의 삶이었다. 오이디푸스와 자본주의는 엄마, 아빠, 아이 혹은 현대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규정될 수 없는 욕망을 가족과 돈으로 묶어 가족 기계, 돈 기계로만 작동하도록 한다. 욕망은 억압되고 일생동안 경험하는 수많은 관계도 모두 지워버린다. 


드디어 욕망 기계, 새로운 길은 접속이다


구조주의와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에 꽁꽁 매인 현대인에게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욕망 기계이다. 모든 존재는 욕망 기계들의 복합체이다. 인간도 사회도 국가도 이념도. 무엇도 세팅된 채 태어나지 않았고 부분 기계들이 연결되고 작동함으로써 비로소 그 형상이 드러난다. 그러나 프로이트, 라캉, 맑스는 부분 기계들이 아닌 오이디푸스, 의미화된 구조, 계층 투쟁과 체제 개혁을 바라봤기 때문에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당면한 문제들도 풀지 못했다. 

  모든 것이 기계들이므로 기계 분석이 없는 구조나 사회 개혁은 무의미하다. 결국 혁명은 지금 내 기계들을 세팅된 대로가 아니라 다른 접속을 통해 새로운 작동을 시작할 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68은 더 이상 가족 기계, 돈 기계, 의미 기계가 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바로 이것이 들뢰즈와 과타리가 ‘욕망 기계들’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동시에 이것은 욕망 본연의 모습에 대한 발견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자신이 기계들인지 몰랐을 뿐 늘 같은 일을 하는 고정관념 속 기계보다 더 기계답게 살아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의미와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살고자 기꺼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스스로의 욕망 기계들을 억압하고 인생의 의미도 쇼핑하듯 이렇게 저렇게 소비했을 뿐이다. 결국 억압과 예속, 소외는 우리 자신이 기꺼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들이 주는 안정감과 소비, 안락함을 즐긴 결과이다. 따라서 혁명은 어떤 좋은 제도나 장치로 가능하지 않다. 내 안의 기계들에 에너지만을 공급한 채 세팅된 프로그램대로 산다면 혁명은 영원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들뢰즈는 우리가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역사를 통과해 온 존재라고 말한다. 욕망 기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다른 기계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연결된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과타리라는 두 명의 만남은 우리의 사유과 행동을 새롭게 작동시키려는 제3의 철학기계로서 『안티 오이디푸스』를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익숙한 방식으로 욕망 기계를, 혁명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 책이 기존의 지식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정보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것은 도처에서 기능한다”처럼 명백한 주어도 설명도 없이 책이 시작되고, 수많은 철학자, 소설가, 예술가와 프루스트, 헨리 밀러 소설의 일부분이 본문 여기저기에 출현한다. 이들은 욕망 기계가 그러하듯 이런 접속들을 따라 우리도 자기의 기계들을 낯선 기계들에 연결시켜 보기를 바란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혁명가 커티스는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질주하는 계급혁명을 하다 마침내 머리칸에 다다르지만 바로 그 순간 혁명의 길도 방향도 잃어버린다. 반면 삐딱하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송강호는 하도 오래 닫혀있어서 문인지도 잊고 있던 옆문을 연다. 그 문을 열고 살아남은 두 아이가 17년 동안 금지되었던 대지를 걷는다. 두 아이는 이제 비참한 설국열차의 계급사회가 아니라 눈의 대륙에서 살아남은 곰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 갈 것이다. 들뢰즈와 과타리가 꿈꾸던 혁명이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의 작은 욕망 기계들을 자본주의 사회에 붙여서 질주하는 대신 지성이라는 전원을 켜고 본연의 내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이고 삶의 해방이다. 이제 우리가 『안티 오이디푸스』라는 이 철학기계에 접속해 새로운 삶을 부팅할 차례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