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감이당-나는 왜]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마음』읽기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 > 감성에세이

[2019 감이당-나는 왜]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마음』읽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산진 작성일19-08-09 14:01 조회2,239회 댓글0건

본문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마음』읽기



                                                                                             최희진(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은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면 누가 어디에 취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화제였다. 몇 년이 지나자 누가 누구랑 결혼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거리였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었다. “너 그 얘기 들었어?”로 시작되는 대학 선후배들의 자살 소식은 그 후로도 몇 차례 이어졌다. 어떤 후배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자살했다고 했다. 어떤 선배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잘 사는 듯 했는데 자살했다고 했다. 어떤 선배는 우울증이 있어서 자살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충격을 주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져갔다. 과거에 알던 사람의 자살 소식은 뜨문뜨문 멀리서 들려오는 각각의 이야기들일 뿐,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서 주인공인 선생님은 자살한다. 자살한 선생님이 쓴 유서가 책 전체 분량의 3분의 1이나 차지한다. 그러니 작품이 얼마나 우울하고 어둡겠는가.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은 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도 이제 소설을 써 보겠노라고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들을 벤치마킹 차원에서 읽던 때였다. 그 무렵 『마음』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나서 소세키 책은 한동안 쳐다보지 않았다. 읽으면서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남산강학원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읽기 세미나에서 소세키를 다시 만났다. 그의 글에는 태평스러움 속에 불안함이 있었고, 신경질 속에 찌질함이 있었고, 유머 속에 우울함이 있었고, 관조 속에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마음』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다음 해 수업에서 『마음』을 다시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음울하고 칙칙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감이당 화요대중지성에서 『마음』을 다시 만났을 때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선생님의 유서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호소하는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울림에 응답하고 싶어졌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면서도 나는 선생님이 왜 자살했는지 제대로 해명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선생님의 죽음을 이해하는 일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말한 바 있다. 문명이 이대로 발달하면 미래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이고, 학교에서는 윤리 과목 대신 자살학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아직 학교에서 자살학을 가르치진 않지만, 백 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다. 『마음』의 선생님, 내 주변 사람들,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유명인들이 자살하는 이유와 그 죽음의 의미는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소세키가 내다본 것처럼, 그리고 『마음』의 선생님이 유서를 통해 호소하려고 한 것처럼 나는 이들의 자살이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마음』을 읽는 이유는 그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은, 문명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두려움 없이 인간의 어둠을 응시하는 용기를 낸다면 소세키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책임감 있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