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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감이당_ 나는 왜] 춤 한판의 이치도 그 안에 있었네
 글쓴이 : 달무리 | 작성일 : 19-09-19 16:17
조회 : 259  


춤 한판의 이치도 그 안에 있었네


김연정(수요대중지성)

 

다섯 살 꼬맹이, 여섯 살 위의 언니가 추는 춤이 너무 좋아 보였나 보다. 하도 귀찮게 졸라대는 통에 엄마는 시켜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게 작은 것이 신나게 대장 노릇을 하며 뛰어다녔다는 나. 이것이 가끔 한 번씩 엄마가 회상하는 내가 춤을 만난 첫 장면이다. 그저 언니를 따라 하고 싶었던 건지, 예쁜 옷에 곱게 화장한 모습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의 즐거움 때문이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런 활발함과 씩씩함은 그때 다 불살라 버렸던 것일까. 학창시절의 나는 남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이었다. 아마도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주변인이자 이상주의자. 그런 성격으로 남들 앞에 서는 무대예술을 한다는 것이 모순 같았다.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짙은 화장에 영혼 없는 웃음으로 가득한 춤 공연을 볼 때마다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었다. 진실한 마음을 몸에 담아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통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언어들과 만났다. ‘엎고 제치기’, ‘맺고 풀기’, ‘감고 뻗기같은 동작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들은 굴신과 회전의 반복을 통해서 호흡의 순환, 기운의 변화, 음양의 조화, 태극의 운용과 같은 말들로 이어졌다. 춤이란 호흡과 기운의 변용이며,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태극의 생명력을 담아내는 것이라 배웠다. 이것이 우리 움직임의 기본 원리이고 우주 자연의 원리이며, 동양 사상의 정수와 맞닿아 있다는 말이 조금씩 머리에서 마음으로 흘러 내려왔다. 그 동양 사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감이당이라는 새로운 공부의 장에 발을 디뎠다. 인문학자라고만 생각했던 고미숙 선생님이 몸과 우주에 대해 강의하시는 것을 듣고 여기라면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마음과 하나 되는 몸에 대한 화두와 맞짱 뜰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주역(周易)과 만났다. 왠지 익숙한 말들인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난감한 책은 처음이었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변화()에 대한 인문자연과학을 총망라한 종합해설서라는 생각을 했다. 주역은 치밀한 수 개념으로 짜인 구성과 수화목금토 천지자연의 운행원리로 인간 삶을 엮어내고 있다.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에 쏟는 어리석은 힘을 내려놓고 본질과 원리에 집중하도록 한다. 팔다리가 먼저 움직여 겉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운의 싹을 틔워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엮어내는 춤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자연 세상의 춘하추동, 인간 행위의 기승전결, 인간 삶의 생장수장, 우주 자연의 성장소멸, 이 모든 변화()의 도()’가 춤 한판의 이치였다.


주역을 읽다 보면 광대무변한 우주의 이야기를 하다가 하찮은 일상의 이야기로 죽비를 때리는 듯하다. 내 삶으로 파고 들어오는 텍스트의 열린 가능성이 고정된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망망대해에 나를 훌쩍 던져놓는 것 같다. 64, 384효가 만들어 내는 강유(剛柔)와 중정(中正)의 끊임없는 변화와 반전의 이야기들은 현재를, 그리고 나를 읽게 한다. 주역에서 춤 움직임의 원리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공부가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가 되었다.


글을 보면 고스란히 내가 드러나듯이 춤에서도 그 사람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몸을 양생하는 것도, 무대에 서는 일도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나를 닦을 일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충만한 수시변역(隨時變易)의 원리도 우주 만물의 이치도 내 한 몸 닦으며 체득되는 앎,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앎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길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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