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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화성] 자신이 연약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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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진 작성일19-10-13 21:50 조회2,3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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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3학기 칼럼쓰기)



자신이 연약하다는 착각



                                                                                                           최희진(감이당 화요 대중지성)


퇴사 대행 업체가 생겼다.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을 대신해주는 업체다. 사직서를 대신 내주고 회사에 남아 있던 짐을 찾아 집까지 배송도 해준다. 주로 20~30대 젊은이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비용은 30만원에서 50만원 선이다. 사표 제출, 짐 수거 등을 대신해주는 비용치고는 꽤 비싼 셈이다. 하지만 이 업체를 이용한 젊은이들은 상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퇴사를 깨끗하게 끝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퇴사 대행 서비스에 매우 만족해했다. 회사에서 상사 등과 불화를 겪고 퇴사할 때, 퇴사 과정에서 마찰을 빚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은 퇴사 대행 업체를 찾는다.


이 업체를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이들이 나와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나는 하루 빨리, 깔끔하게 갈등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자신이 상처 받을까봐 염려한다. 자기는 너무 쉽게 상처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손상되는 것 같으면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공격해오는 존재들이다. 경계와 의심을 늦출 수가 없다. 자기 방어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나이가 들어도 인간관계에 미숙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 불편한 관계를 될 수 있으면 피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관계 맺기는 서툴다보니 관계는 점점 좁아진다. 남들이 보기엔 자기 생각만 하는 고집 센 사람인데, 스스로 생각하기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그래서 니체는 위험하게 살라고 말했나 보다. 무너지는 담장 앞에 서 있는다거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생각, 관계에서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삶이라는 커다란 바다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뒤의 육지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니 우리의 배여, 앞을 바라보라! 네 곁에는 대양이 있다.”(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책세상, 199쪽) 인생에서 청년기는 육지를 떠나 출항하는 배와 닮았다. 돌아보면 떠나온 세계가 이제 막 멀어지고 있고, 앞을 보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육지에서는 선명했던 길들이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자유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늘 붙어 다닌다. 그러나 바다로 나간 청년은 포효하는 대양과 낯선 세계를 온몸으로 만나게 된다.

 

퇴사대행업체는 불편한 관계를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관계를 맺고 끊는 것과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는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해지고 기발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상품들을 이용한다고 해서 불편한 관계를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갈등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자기 방어적 태도만 세질 뿐이다. 위험하게 살라는 니체의 말을 다시 가져와 보자. 불편한 관계를 겪는 것은 자기를 연약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위험해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연약하다는 착각을 깬 사람에게 불편한 관계를 겪는 것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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