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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목성- 여행기] 2019년 길 위의 ‘인연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1-24 10:24
조회 : 71  


 

2019년 길 위의 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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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대중지성  홍옥주

 

소중한 인연, 함께 한 사람들

2019919일 중국의 시안으로 역사탐방을 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를 공부하고 떠난 역사탐방인 만큼 의미가 남달랐다. 사실 반년 넘게 공부하고 여행을 떠나는 건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탐방지 별로 나눠서 미니강의를 한다는 것이 부담은 됐지만 준비작업은 신선하고 즐거웠다.


공항에서 학인들을 한 분씩 만날 때마다 설레었다. 마침내 비행기 탑승 전 일행들 모두가 모였을 때 여행이 실감 나면서 괜히 신났다. 떠남 자체를 즐거워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일행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이 걷고, 같이 식사를 나누며 웃고 수다를 떠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라 생각한다. 여행지의 풍광이나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길 위에서 사람들을 알아가고 교감하는 것이 내겐 가장 소중한 일이다. 여행은 익숙한 사람도 새롭게 만나고, 전혀 몰랐던 사람과도 교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여행은 몇 개월을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과 떠나는 것이라 더 즐거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여행 내내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저녁마다 만난 과일을 사주신 길쌤, 학인이 아님에도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와 준 장금쌤 동생, 여행지의 가이드를 해주고 끼니마다 맛집으로 안내해준 고마운 쭌 언니, 차에서 이동할 때 먹을 간식 챙기느라 엄청 바빴던 은순쌤, 안 씻고 자려는 나를 설득해서 씻고 푹 자도록 도와준 룸메이트 미옥쌤, 심한 차멀미로 고생하신 지원쌤과 이혈침으로 도움주신 상훈쌤, 여행 내내 즐거움을 더해 주었던 미성년(예진 아씨, 준후 반장님, 승주양) 친구들, 그리고 여행 마지막 전날 밤에 한잔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만난 중국인 가족 등등


이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살면서 처음 경험한 또 하나의 만남이 있다.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만난 것처럼 한서에서도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2200년 전의 한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막연히 이름만 알았던 유방무제를 만났고 문제, 경제, 소제 등의 황제도 새로 알게 되었다. 여태후, 소하, 조참, 진평, 이릉, 가의, 소무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에다 솔직히 기억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인물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숨 쉬고 걷고 먹고 활동했던 그곳으로 갔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 나는 2200년 전 한나라 수도였던 이곳 시안을 밟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 만남의 현장을 찬찬히 중계해보려 한다.

 


첫째날 2019919일 목요일

시안 공항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처음 방문한 곳은 한무제의 무릉이다. 이슬비가 간간이 내려 다른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전세를 낸 것처럼 그 넓은 공원을 여유롭게 거닐면서 볼 수 있었다. 한참 공원을 둘러보다가 산 전체가 한무제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큰 규모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않은 무덤 스케일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커도 너무 크다.


그러고 산 옆쪽을 보니 또 다른 무덤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묘 두 구가 있었는데 각각 위청과 곽거병의 것이었다. 위청과 곽거병은 무제 시절 흉노 정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장군들이다. 묘의 배치를 보아 이 두 장군이 한무제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당시 흉노는 한나라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흉노와는 고조 때부터 굴욕적인 화친 정책을 폈지만 침략은 끊이지 않았고 더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흉노 정벌로 정책을 바꾼다. 이때 위청과 곽거병은 10년 동안의 대공세로 흉노를 멀리 고비사막 북쪽으로, 서역으로 쫓아내는 공을 세운다. 이런 장군들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웠을까 짐작할 만하다.


사실 한무제는 후대에 매우 많은 업적을 남긴 황제다. 그럼에도 나는 한서를 읽었을 때 무제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끊임없는 전쟁과 많은 제사로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심한 사치로 풍속을 문란하게 한 부분에서 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었다. 통치자가 스스로를 단속하고 다스려야 천하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한서의 정치 철학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릉을 둘러보고 무제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위청과 곽거병 장군의 묘를 자신의 묘 옆에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나서 아끼는 사람을 대하는 한무제의 따뜻한 마음과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흉노를 막기 위해 전쟁터에서 혼신을 다했던 신하를 잃은 황제의 애통함까지 전해져 왔다.

 


둘째날, 2019920일 금요일

비온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은 맑고 쾌청했다. 오늘은 한경제의 양릉에서 답사를 시작했다. 나는 한나라의 문제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양릉 앞에서 미니 강의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오랜 전쟁으로 힘들었던 백성을 위해 노심초사 고민하고 스스로 농사지으며 지극히 검소하게 생활했던 황제, 한나라의 3대 황제인 문제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는데 마음만 앞섰다. 그냥 수다 떠는 자리에서는 말을 잘하는데 주목받는 자리는 어찌나 어색하고 떨리는지. 그래도 마치고 나니 맘이 가볍고 여행이 한층 즐거웠다.


무릉처럼 한경제의 양릉도 부지가 매우 넓었다. 그러나 능은 그렇게 크지 않고 소박하며 정갈해 보였다. 아버지 문제와 마찬가지로 백성의 힘든 삶을 걱정하고 공경 검소한 생활로 모범을 보였던 황제를 닮은 능이라고 느껴진다. 양릉의 유물전시관에는 진시황릉의 병마용 같은 토용들이 많았는데 그 크기는 1/3로 작고 질박했다. 전한시대 황제들 중 내 맘에 가장 울림을 주었던 황제가 한문제인데 아쉽게도 일정이 빠듯하여 문제의 무덤인 패릉에 가지 못했다. 사실 문제의 능에서 미니강의도 하고, 술도 한잔 올려 존경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훗날을 기약해본다. 그래도 아버지 문제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 백성을 다스렸던 경제의 양릉이라도 와서 다행스러웠다. 이분들의 삶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검소하고 질박한 생활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을 다짐해본다.


양릉에서 가까운 곳에 한고조 유방의 장릉이 있다. 진시황릉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렀는데 발굴이나 개발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의아했다. 그래도 한나라를 세운 황제의 무덤인데 황무지처럼 놔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고조인 유방보다 무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나 보다. 묘역이 개발되지 않아 좋은 점도 있었다. 산 같은 능 위로 올라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좁은 길을 따라 능 위로 올라가서 바로 옆에 있는 여태후릉도 보고 미니 강의도 들으며 주변경관을 둘러보았다.


이다음 우리 일행은 홍문연 유적지로 이동했다. 홍문연 유적지에서 한고조 유방이 맺은 그 기막히게 절묘한 인연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흥미진진하다. 한나라를 세우기까지 항우와의 전쟁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연들이 어찌나 많던지... 천하통일에 꼭 필요한 인재였던 한신이 도망가자 뒤쫓아가 끝내 잡아온 소하, 항우 진영의 명 장수 영포를 설득해 데려온 수하, 천하의 곡식이 모이는 오창 지역을 차지하라고 알려준 역이기, 죽음의 위기에서 살길을 열어준 장량, 번쾌, 항백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 홍문연 유적지에는 이들의 석상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들 덕분에 유방은 항우를 이겨 통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재들이 유방에게 몰려온 이유는 유방이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능력 있는 사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유방에게 꼭 배우고 싶은 덕목이다

 


셋째날, 2019921일 토요일

오늘 아침에도 날씨가 좋았다. 시안은 평소에 공기가 탁하고 흐린 날이 많다는데 우리는 다행히 도착한 날만 흐렸고 이후로는 계속 맑았다. 오늘 가는 함곡관은 숙소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시안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도 듣고 간식도 먹으며 차창 너머로 황하를 구경했다. 황하가 더러워서 누런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실제는 황토가 녹아 누렇지 깨끗한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이지만 나는 오늘 황하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래서 사람은 뭐든 경험하고 배워야 하나 보다.


섬서성에서 하남성으로 넘어가는데 검문검색이 있었다. 국경을 넘는 것도 아닌데 여권을 검사한다. 우리 같은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에 대한 검색도 철저하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더 철저하게 한다고 했다. 여권을 호텔에 두고 온 터라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쭌 언니의 유창한 중국어 덕분에 무사히 통과했다. 이럴 때 언어가 안 됐으면 참 난감했을 것 같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 함곡관에는 엄청난 크기의 황금빛 노자 동상과 도덕경 5천 글자들이 새겨진 비석이 병풍처럼 멋지게 세워져 있었다. 황금과 무위청정의 노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그분의 후손들은 귀함을 표현하고자 존경의 마음을 담아 황금빛 찬란한 노자를 만들었나보다. 내가 그리도 존경과 감동을 받은 문제, 경제는 황로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렸다. 이들 황제는 무위자연을 몸소 실행하고 정치로 실현했다. 노자가 말하는 도, 무위는 실천하기 어렵다지만 일단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해진다.


동상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함곡관의 관문이 나왔다. 이곳은 천하의 요새로 전국시대 진나라는 함곡관 덕분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고 내치에 힘을 기울여 부국강병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함곡관의 지세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망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고산 절벽과 황하를 끼고 있는 이곳 지형상 함곡관을 지나지 않고는 관중이나 중원으로 갈 수 없어보였다. 이 시절 지세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함곡관으로 인해 천하를 통일했건만, 진나라는 통일한 지 16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긴긴 전쟁 끝에 세운 진나라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지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다스림이었다. 함곡관 안에 있을 때와 함곡관 바깥까지 진출했을 때의 다스림은 달라야 한다. 가혹한 법만으로 넓어진 나라를 다스리는 건 무리였다. 변화의 흐름을 타야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넷째날, 2019922일 일요일

태사공 사마천의 묘는 시안에서 동북쪽으로 3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사마천의 고향 한청이라는 곳에 있다. 중국의 3대 국가 제사가 황제, 공자, 사마천 제사라고 한다. 그만큼 사마천은 중국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에 묘와 사당이 있는 이곳은 크고 웅장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사기의 내용을 돌에 새겨 넣은 조각상들은 놀랍고도 아름다웠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산 위쪽에는 돌로 둘레를 만든 묘지가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관은 다른 능에서 볼 수 없는 멋진 모습이었다. 올라가는 길은 돌을 다듬어서 깔아놓았는데 몇 번 걸려 넘어질 뻔했다. 신경 써서 천천히 걷다보니 이렇게 한발 한발 마음을 다해 살아갔을 사마천의 삶이 보이는 듯했다. 사마천이 어떤 마음으로 고통을 견뎌가며 죽간에 글을 새겼을지 잠깐이나마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다.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하게 되는데 평소에 이릉과는 가깝지도 않았고 뜻하는 바도 같지 않았기에 술 한 잔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평소에 사마천은 이릉의 사람됨을 높이 샀다. 이릉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에게 신임을 받고 재물을 양보하며 의리를 지켰고 아랫사람도 공경할 줄 알고 나라의 위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릉이 흉노에 패전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이는 이릉의 잘못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황제에게 힘껏 이릉을 변호했으나, 황제는 분노하여 무고죄로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사형을 선고했다. 사마천은 역사책을 완성하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한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고통 속에서 발분하여 사기라는 책을 남긴 사마천. 사마천의 노력 덕분에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새로운 인연을 향해 열린 길

고백하자면, 여행을 다닐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주를 계속 마시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도 칭따오와 서봉주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날 밤에 긴장을 풀고 마셔버린 백주가 돌아오는 날 오전 내내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 비행기를 타기 전에 진정되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날의 술자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날 저녁 자유시간이 주어져 몇몇 학인들과 숙소 주변 소박한 식당으로 진출했다. 잘 안 되는 중국어로 음식을 시켰는데 맛이 별로였다. 작년에 나는 남산강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나름 중국어 우등생(?)이었다. 메뉴선정엔 실패했지만 배운 중국어를 써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다른 걸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보는데 옆자리에 중국인 가족이 먹고 있는 두부요리가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저걸 먹자! “칭 게이 워를 외치며 손짓을 했더니 알아듣고 가져왔다. 당연히 맛은 좋았다. 그런데 옆자리 젊고 잘생긴 아저씨가 기분 좋게 말을 걸어왔다. 서로 못 알아듣는 말을 잠깐 주고 받았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나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이 언어의 장벽도 허물만큼 친밀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재밌고 신기했다. 여행의 마무리도 좋았다. 지나친 음주만 빼면.


여행과 우정이라는 단어만 보고 무작정 등록한 목요대중지성에서 학인들과 한서를 만났고, 이곳 시안에 여행 와서 또 다른 많은 인연들과 만났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라는 요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인연의 숫자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 어떤 인연과 마주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기대되기도 하고 또, 소중하다. 우리는 마치 인연에도 정답이 있는 듯 좋은 인연이나 당장 이득이 되는 인연을 원하고 찾아다닌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서를 공부하며, 그 역사의 현장을 여행하며 인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저러하게 마주친 인연의 결과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게 나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마주치는 인연들에 진솔하게 성의를 다할 뿐이다. 감이당이라는 공동체 공간과 2019년이라는 시간과 함께하고 있는 학인들, 선생님들과의 인연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길을 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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