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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어느 한 남자의 명랑성 회복기
 글쓴이 : 상헌 | 작성일 : 20-01-23 22:10
조회 : 597  
어느 한 남자의 명랑성 회복기

안상헌(금요대중지성)


1. 역겨움에 지친 어느 한 남자

많이 당황스러웠다. 하나는 그래도 공부를 했던 내가 ‘니체’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야심경’ 암송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유튜브에 있는 2분 49초짜리 송광사 젊은 스님들의 집단 독송을 한동안은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니체를 읽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혀 들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학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뛰쳐나와, 문을 등 뒤로 힘껏 닫아버리긴”(『차라』, 「학자들에 대하여」, 212) 했지만, 당시 나의 몸은 니체와 불교의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신체가 아니었다.

나는 왜 이런 몸이 되었을까? 집과 학교에서 ‘남자’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늘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고, 학교도 참 오래 다녔으니 내 몸에 ‘남자’라는 말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새겨져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 이후의 공부에서 나는 또 한 번의 강한 세례를 받았다. 배움이란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이렇게 ‘배운 남자’가 되었고, ‘배운 남자’로서 ‘사회적 실천’을 위한 공부와 일을 하려 애썼다. 사람이 살기에 ‘좀더 세련된 제도’를 만들기 위한 공부와 실천이 중요했지, 나 하나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사적인 이해관계 같은 것에는 민감하지 않았다. 한 때는 그 삶이 참 좋았다. 나는 기꺼이 짐을 지고자 했고, 때론 ‘전투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역겨움’이 몰려왔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는 예전에 나름 헌신했던 공부와 삶의 장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몇 년을 이런 저런 곳에서 다른 일과 다른 공부를 하면서 살았다. 때론 시민운동단체에서, 때론 대학 연구소에서, 때론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 하지만 역겨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를 대하는 나의 생각에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역겨움!’ 그것은 니체의 ‘임신’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내 안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였구나!’라는 생각이다. 이제 나는 과거와 달리 ‘역겨움’이 나에게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나를 짓누르지는 않는다. 대신 최근 나는 니체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나의 말, 행동, 생각을 하나씩 바꾸는 중이다.

니체가 읽히는 몸이 된 나에게 최근 다가온 문장 하나! 니체는 남자들의 세상을 늙은 여인네들의 비유를 통해 비아냥거린다. 니체는 이 장에서 여인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남자들이 만들어온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여인은 복종해야 하며, 그 자신의 표면을 위해 어떤 깊이를 찾아내야 한다. 표면은 여인의 정서, 일종의 얕은 물 위에서 요동치는 격한 살갗이다.
이와 달리 사내의 심정은 깊다. 그리하여 그의 강물은 지하의 동굴 속으로 솨솨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여인은 이러한 사내의 힘을 짐작은 하겠지만 이해는 하지 못한다.(『차라』, 「늙은 여인네들과 젊은 여인네들에 대하여」, 110)

니체에게 (젊은) 여인은 생산이 가능한 존재이며, 이들은 생산을 위해서 자기에게 복종하고 자기에게 명령하는 존재이다. ‘물의 표면’ 혹은 ‘여인의 살갗’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생동하며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한 비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러하기에 여인은 생성하고 변화하는 것을 위해 어떤 깊이를 찾아내고, 표면을 통하지 않고는 깊이를 드러낼 수 없기에,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려 애쓴다.  

하지만 사내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은 별것도 없으면서 괜히 깊이 있는 척만 한다. 그저 짐작만할 뿐 이해할 수는 없는, 땅 밑에서 울리는 소리들을 듣고자 온갖 애를 다 쓰는 ‘배운 남자들.’ 사내들이 ‘깊은 심정’이라고 말하지만 여인네들에게 이것은 짐작만 갈뿐,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젊은 여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들은 왜 저러고 살까?”

‘반야심경’을 암송한 것은 니체를 공부하고 있었던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반야심경’을 외우기는커녕 3분을 듣고 있을 수도 없었던 내가 260자 한역 반야심경을 외우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도올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X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승경전의 핵심은 『반야심경』과 『금강경』에 있다. 도올 선생은 그 내용을 이렇게 요약한다.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인 『금강경』은 원래 ‘벼락경’이다. 불타나 예수나, 그들의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위대성은 단 하나! “아상我相”을 지니지 않았다. “지혜의 완성”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으로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아상我相을 죽이는 것이다. ‘벼락’으로 깨는 것은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고, ‘나’를 깨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의 보살 사상의 핵심이다.(도올 김용옥,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191-195)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내가 속해 있었던 집단은 “가까이에서 보니 함께 하고 싶고, 또 함께 해야 할 것 같아 그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네들 내부로 들어가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어려웠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배타적이었다.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들만의 상相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고 설정한 명분에 집중하다보니, 주변을 세심히 살피면서 변화를 민감하게 보는 감각을 잃고 말았다. 

2. 다른 앎을 탐색한 니체

1883년과 1884년. 니체의 나이 39세에서 40세.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차라』)가 저술된다. 이 책의 주인공 ‘차라투스트라’는 니체가 추구하고자 했던 새로운 인간 유형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말과 노래로 쏟아져 나오는 이 책은 니체의 대표작인 만큼 그의 철학을 온전히 담고 있는 경전 같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위버멘쉬로 가는 길’을 가르치고자 한다. 차라의 가르침을 따라 ‘위버멘쉬’로 가는 길로 나아가려면 니체 자신이 이 길을 열어간 과정에 우리도 익숙해져야 한다. 니체는 ‘반시대적 사유’, ‘방랑철학자의 길’, ‘자기관찰력의 극대화’, ‘그림자들과의 싸움’이라는 과정을 거쳐 ‘영원회귀’하는 우주에서 위버멘쉬라는 인간의 과업을 깨닫게 된다.

반시대적 사유
시대와 인간에 대한 니체의 역겨움은 강했다. 그는 시대가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것(종교, 국가, 제도, 학문, 예술 등)을 역겨워했고, 이를 주도하는 인간들을 ‘난쟁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니체는 그 역겨움에 질식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역겨움을 이기고 위버멘쉬에 이르는 기술을 익혔으며, 그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니체는 전사였다. 니체는 ‘반시대적 사유’라는 자신의 철학적 방법론을 통해 ‘강한 사유를 통한 강한 인간의 탄생’을 염원한다.

『반시대적 고찰』은 전적으로 호전적이다. 이것들은 내가 몽상가가 아니라는 점, 내가 검을 빼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점을 입증하며 — 아마도 내 손목이 위험하리만큼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도 역시 입증하고 있다.(『이 사람』, 397)

『반시대적 고찰』에 대한 니체 자신의 서평을 시작하는 글이다. 이 싸움은 순진한 몽상가의 꿈이 아니었고, 구체적인 현실과의 싸움이었으며 즐겁고 (위험하긴 하지만) 자유롭고 경쾌한 싸움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니체는 이 시기에 ‘반시대적’ 이라는 ‘강한 사유’를 주문했다. 니체는 우리에게 ‘강한 사유’는 ‘강한 욕구’를 끌어 올리고, 나아가 ‘강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가르친다. 반시대적 사유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의 존재를 바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제 그동안 현대인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이제 쳐다보고 싶은 마음조차 잃어버린 사람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방랑 철학
총명했던 니체, 특히 언어와 음악에서는 탁월했던 니체. 그는 1869년 4월(25세) 박사학위도 없는 조건에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담당 원외교수로 위촉되고, 1870년 4월 정교수가 된다. 그만큼 당시 고전문헌학 분야에서 매우 주목을 받았던 니체였다. 그렇지만 니체가 고전문헌학자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게 한 첫 작품, 『비극의 탄생』(1872년)은 당시 고전문헌학계에서는 혹평을 받았다.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을 주목한 니체는 앞으로 자신이 만들어갈 철학은 그 자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후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1873-1875년)과 같은 글을 50편정도 쓰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그려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4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1879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바젤 대학을 떠나기까지, 10년 정도 고전문헌학 교수로 재직한다. 그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퇴직 직전 휴양을 이유로 떠난 제네바에서 시작된 니체의 방랑 생활(혹은 휴양 여행)은 비젠, 장크트모리츠, 베네치아, 질스마리아, 메시나, 로마, 타우텐부르크, 나움부르크, 라이프치히, 제노바, 뮌헨, 플로렌츠, 니차 등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여러 곳으로 이어진다.(니체 연보, 책세상)

니체는 이렇게 고정된 연구실도 안정된 일상의 삶도 보장되지 않는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알프스의 신선한 공기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온화한 공기를 찾아 다녔지만, 그의 건강이 특별히 좋아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 방랑의 기간 동안 니체는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계속했다면 나올 수 없는 ‘문체’와 ‘내용’으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니체 철학’을 생성해 낸다. 그리고 그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본다. 

그 당시 내게 결정적이었던 일은 바그너와의 결렬이 아니었다—나는 내 본능이 총체적으로 길을 잃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바그너나 바젤의 교수직 같은 개별적인 실책은 그 총체적인 길 잃음에 대한 징후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돌연 나를 엄습했다 : 이때 나는 다시 내 정신으로 돌아오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시기라고 생각했다.(『이 사람을 보라』, 407-408). 

혈기 왕성한 시절 열렬히 추종했던 바그너와의 결렬. 회복되지 않는 건강. 안정된 삶과 명예를 보장하는 교수직에서의 떠남. 그렇게 시작된 방랑 생활을 통해 니체가 사유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 혹은 ‘본능’의 발견을 통한 ‘자기 정신의 회복’이었다고 훗날 니체는 고백한다. 그 시기 니체의 삶에 닥친 난관과 질병은 개인의 것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시작된 방랑 생활에서 길어 올린 그의 사유는 니체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니체가 현대인의 삶에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방랑자 니체는 ‘영원한 것’과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실제로는 마음과 생각에 건강하지 못한 병들을 가득 지닌 채, 왜소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니체는 ‘영원하고 안정된 것’을 찾지 말고, 대신 삶에 ‘영원한 활기’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안정과 정주가 삶의 목적이 된 현대인들에게 방랑자가 겪는 매일 매일의 ‘낯설고, 새롭고, 불편한 것’들은 그들의 삶을 불안하고 무겁게 할 것이다. 하지만 방랑자는 이 ‘낯설고, 새롭고, 불편한 것’들은 그 자체가 삶이되고, 이것들로부터 각자의 삶의 활기를 찾아낸다.

자기 관찰
1858 여름 슐포르타 입학 시험을 준비하면서 첫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 나의 교육은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 인격을 갖춘 남자의 지도가 나에게는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여덟 개의 자서전을 쓴다.(『니체』, 뤼디거 자프란스키 / 오윤희 역, 528)

14세에 자서전을 쓴 니체. 이후 10년 동안 여덟 개의 자서전을 쓴 니체. 이런 니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니체의 특성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가능할 것이다. ‘외톨이’, ‘고독자’, ‘부적응아’ 등등. 하지만 니체를 이렇게 치부하기에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삶에 대한 철학적 의미가 너무 크다. 하여 니체의 이러한 특성을 탁월한 자기 관찰력으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이러한 관점은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등에서 2,300개 이상의 ‘아포리즘’이라는 형식의 글을 썼고, 이를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과 생각’을 깊고 넓게 파고들어가 우리에게 펼쳐 보인 그의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시기 아포리즘 형식의 글은 니체가 어른이 된 후 쓴 또 하나의 철학적 자서전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유용한 내용과 그 형식은 그 누구의 자서전과도 비교 불가하다! 니체는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이 극복해낸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했고, 때론 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유쾌한 작업”(『인간적』, 『아침놀』, 『즐거운 학문』 서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니체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본성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본성에 속하지 않는 것들에서 나를 해방시켰던 것이다. 내게 속하지 않는 것이란 이상주의다 : (…) ‘자유정신’이라는 말은 여기서 어떤 다른 의미로도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 자유정신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유하는 자유롭게 된 정신인 것이다(『이 사람을 보라』, 404).

이 시기 니체는 아포리즘이라는 문체를 통해 현대인의 민낯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니체가 보여주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관찰력은 놀랍다. 니체가 드러내는 우리의 민낯을 처음 볼 때는 부끄럽지만, 내가 그 민낯을 스스로 보는 힘을 조금이라도 갖게 되면 왜소한 내가 아닌 조금은 두툼한 나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니체는 현대인들의 삶이 무기력한 것은 자기 관찰력의 결여에 있다고 말한다. 니체가 자신을 해방시킨 방식은 이상주의와의 결별이다. 니체가 해방되고자 했던 것은 삶에 구체적이고 가까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영혼의 구제, 국가에의 봉사, 학문의 발전, 또는 전 인류에 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명망과 재산 등’과 같은 이상이 아니다. 니체가 추구한 해방은 ‘개개인의 욕구, 24시간이라는 생활에서 대두되는 크고 작은 필요’에서의 해방이다.(『인간적 Ⅱ』, 224) 이렇듯 니체가 자기 관찰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하루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그가 추구하고자 한 자유정신이다.

그림자들과의 싸움
‘방랑 생활’과 ‘자기 관찰’을 통해 힘을 키운 니체는 『차라』에 와서 우리에게 ‘위버멘쉬’에 이르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니체 스스로 『차라』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즐거운 학문』에서 그는 그림자들과의 새로운 투쟁을 선언한다. ‘위버멘쉬’를 위한 전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관문이다.

새로운 투쟁.―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그리고 우리는―우리는 그 그림자와도 싸워 이겨야 한다!(『즐거운 학문』, 183)

신은 죽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떤 신의 대체물들이 있을까? 우리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각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 속에 있을 것이다. 누구는 아직도 연민의 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종교적 삶에, 누구는 정의로운 국가와 제도를 위해 살아가다 작열하는 불꽃과 숯이 되어버린 단단한 삶에, 누구는 절대로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진리와 앎의 갈구에, 누구는 수천 년 동안 아무도 열광시키지 못하는 도덕에, 누구는 우리를 생존 그 자체의 정당화에 영원히 머물게 하는 행복 추구(『차라』, 19)에 각자의 그림자들이 늘 함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은 19세기 유럽과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도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 속에서 여전히 ‘정신의 난쟁이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그림자들과 싸워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이 싸움의 과정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와 내 눈에 비친 이웃들의 삶과 세상을 동시에 위버멘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니체를 따라 이렇게 선언할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지상의 나라를 원한다.”(『차라』, 519) 그렇다! 이제 우리는 ‘차라의 가르침’을 따라 지상에서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와 같은 존재, 지상에서 어떤 것이든 키워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대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길에 나서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두운 밤과 깊은 몰락의 시간이 있을 것이고, 때론 사다리와 계단이 필요하겠지만!

영원회귀의 깨달음
니체의 위버멘쉬는 인간이란 자신을 영원히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니체의 초인은 ‘자기극복을 이룬 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극복은 이 세계란 것이 ‘영원회귀’라는 깨달음에서 가능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와 그를 따르는 짐승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먼저 차라투스트라의 심중을 헤아린 짐승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차라투스트라는 이제 영원회귀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처럼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만물이 제 스스로 춤을 추지.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웃고 달아나지.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지.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소생한다. 존재의 해(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이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자신에게 신실하다. 
매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 있다.(『차라』,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359-360)

이 말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축복함과 동시에 몰락한다.

나 다시 오리라. 이 태양과 이 대지, 이 독수리와 이 뱀과 함께, 새로운 생명이나 좀 더 나은 생명, 아니면 비슷한 생명으로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나 더없이 큰 것에서나 더없이 작은 것에서나 같은, 그리고 동일한 생명으로 영원히 되돌아오는 것이다. 또다시 만물의 영원한 회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이다.
또 다시 위대한 대지와 위대한 인간의 정오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다시 사람들에게 위버멘쉬를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나 나의 말을 했으며, 그 말로 인해 부서지고 있다. 나의 영원한 운명이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나 예고하는 자로서 파멸의 길을 가는 것이다!
몰락하는 자가 그 자신을 축복할 때가 되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끝난다.(『차라』,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365)

이렇듯, 니체는 이 세계를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오며,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도는 것. 즉 세계의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소생하는, 그래서 존재의 해(年)는 영원히 흐르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처음 언급한 『즐거운 학문』에서 한 악령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 것이다! 이 최종적이고 영원한 확인과 봉인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가?(『즐거운 학문』, 315) 

이러한 악령의 질문은 니체가 깨달은 영원회귀 사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영원회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 인간은 이제 결코 이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가 아니라 삶을 현실 속에서 그 자체로 삶을 긍정하고 자신의 삶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 ‘자기극복’이자 ‘위버멘쉬’임을 말하고 있다.

3. 다른 공부로 다른 삶의 길을 찾다

파리채와 같은 운명에서 탈주하다
니체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촉망받는 대학교수로 임용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대학이 주도하는 근대 학문의 왜소함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10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철학자, 니체’의 삶을 살게 된다. 지금의 우리가 읽고 있는 니체는 ‘대학교수, 니체’가 아닌, ‘방랑자, 니체’가 사유하고 쓴 글이다. 부처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부처는 왕궁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수행과 탁발의 과정에서 깨달은 부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지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니체도 부처도 안정되게 주어진 틀 안에서는 자신의 사유도 삶도 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이당의 공부과정에서 나에게 큰 각성이 있었다. 그것은 ‘자칫 파리채와 같은 존재로 삶을 마감할 뻔했다’는 깨우침이다. ‘배운 남자’들의 힘으로 하려 했던 ‘제도 개선이 지금 어떤 꼴인가?’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했던 일은 ‘대학입학제도’를 바꾸는 일이었다. 올 해도 ‘대학입학제도’를 개선하려는 논의가 있었고 최근 그 결과가 나왔다. 한 쪽이 힘을 가지면 ‘00찬스’로 대표되는 기득권층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가 운영된다. 한 때 내 귀에 참으로 거슬렸던 말이 있다. “누가 누구를 어느 자리에 꽂아 줬다”는 말이다. ‘00찬스’를 잘 활용했다는 말일 것이다. 반면 다른 한 쪽이 힘을 가지면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평등주의’를 내세워 그동안 쌓인 상대적 박탈감에 복수하려 한다. 하나의 제도를 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뒤집고 있다.  

무한 반복되는 제도 개선의 실패.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내가 현장에 없어서? 아니다. 내가 현장에 있거나 없거나 별 차이가 없다. 물론 분투는 했겠지만. 나보다 더 ‘많이 배운 남자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분투가 계속되었다면, 나의 무기는 파리채에서 총으로 총에서 대포로 변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아무리 파괴력 있는 무기를 내가 가졌다 한들. 그것의 용도는 시장터의 파리를 잡는 일에 쓰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무한 반복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사법제도 개선’ 같은 다른 제도도 내가 그 내용을 다 알 순 없지만 아마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이렇듯 문제는 ‘제도’에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은 더 이상 ‘배운 남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 니체는 말한다. 

“더 이상 저들을 잡아보겠다고 팔을 들어올리지도 말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저들이고, 파리채가 되는 것이 너의 운명이 아니니.”(『차라』, 「시장터의 파리들에 대하여」, 86)

니체는 문제의 핵심을 다르게 보았고, 당연히 그 해결책도 다르게 찾는다. 니체는 조그마한 힘을 가졌다고 자기 먹을 것을 우선 챙기는 인간들을 당연히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니체는 “이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과 섞이고 혼동되고 싶지가 않다”고 말하면서, “사람은 평등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평등해서도 안 된다!”(『차라』, 「타란툴라에 대하여」, 169)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뜻밖에라는 가문’의 일원이 되어
니체는 목적론을 해체한 철학자이다. 니체의 목적론 비판은 ‘어떤 행위에 대한 대가를 설정하는 모든 것’이 대상이다. 니체는 먼저 ‘내가 믿기만 하면 천국은 보장되어야 하고, 내가 연민의 정을 내면, 나에게도 이웃에게도 복이 저절로 따라와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한다. 이는 철저한 ‘교환관계’라는 것이다. 또한 니체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공명과 이익을 주장하는 공리(功利)주의자들도 비판한다. 니체는 모든 행위 마다 어떤 이득을 바라는 이들의 논리는 전형적인 약자의 논리라 비판한다. 니체에게 이 둘은 삶에 활력을 주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된다. 둘 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판이니, 동의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입장에 철저한 반대자였던 칸트마저 목적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즉 ‘지금 현재의 세계는 부조리하고 한없이 비도덕적이지만, 나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인류의 도덕적 진보에 분명한 기여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떤 대가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본다.(김동국,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229, 삼인)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부터 이미 칸트를 ‘번데기’에 비유하면서까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시 칸트가 구축하려했던 대학 중심의 철학은 그곳이 아무리 큰 학문을 한다고 간판을 내걸었든, 니체에게는 작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대학 안에서 안정된 학문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국가와 자본에게 스스로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호소해야 했고, 또 성공을 거둔 집단들이다. 

스스로 점점 작아지고자 하는 이들, 이들은 니체가 비판하는 ‘번데기’가 맞다. 왜냐하면 니체가 인식한 세계는 ‘영원회귀’하는 세상에서 ‘힘에의 의지’만이 작동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원회귀’하는 세상이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즐거운 학문』, 315, 책세상) 움직일 뿐이다. 이렇게 ‘영원회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가?”(『즐거운 학문』, 315, 책세상)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만이 남는다. 이 질문에 대하여 니체는 우리의 삶에는 ‘힘에의 의지’만이 있다고 답한다. ‘영원회귀’하는 인간의 운명에서 “영원한 자기 창조와 영원한 자기 파괴라고 하는 이러한 디오니소스적인 세계, 이중적 관능이라는 이러한 비밀의 세계, 이러한 나의 선악의 저편의 세계, 이는 순환의 행복 속에 목적이 없다면, 목적이 없으며, 원환 고리가 스스로에 대해 선한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의지가 없다.—그대들은 이러한 세계를 부를 이름을 원하는가? (…) 이러한 세계가 힘에의 의지다 — 그리고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들 자신 역시 이러한 힘에의 의지다 — 그리고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전집 18, 『유고』, 435-436, 책세상). 따라서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힘에의 의지’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 외에 다른 삶의 길은 없다. 이 세계는 결코 고정될 수도, 특별한 목적을 가질 수도 없는 영원히 ‘생성하고 변화하고 창조하는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공부와 삶은 어땠을까? 돌아보니 과거 내가 속해있었던 집단이 딱 이랬다. 칸트는 대학을 좋아했다. 내가 경험한 대학은 칸트를 참 좋아했다. 나는 칸트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았지만 대학은 좋아했다. 그 속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나는 현실의 이해관계에 그리 민감하지 는 않았다.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대가를 바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명분에 맞는 일을 하다보면 내 먹을 것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고 살았다. 그러나 명분은 매우 중요했고, 거기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배운 대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니체에게는 이해관계에 민감한 것이나, 명분과 의미에 빠져 사는 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어떤 방식이든, 그것은 목적론에 빠진 삶이다. 니체가 보기에 이러한 삶은 ‘영원회귀’하는 세상에서 생명으로서 ‘힘에의 의지’가 작동할 수 없는 삶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다른 배움과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니체’와 ‘불교’와의 만남. 특히 니체는 나를 “뜻밖에라는 가문”의 일원으로 이끌었다. 니체가 이끈 “뜻밖에 라는 가문,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유서깊은 귀족이며, 그것은 모든 사물을 목적이라는 것의 예속 상태에서 구제해준 것”(『차라』, 「해돋이에 앞서」, 275)이다. 나는 “뜻밖에라는 가문”을 만나 과거 나의 공부와 결별할 수 있었다. 나는 과거에도 공부란 걸 했었다. 선생님도 계셨고 선후배 동료들도 있었다. 선생님도 우리도 모두 배운 대로 살려고 애썼다. 그 때 우리의 배움에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어떤 명분과 목적도 분명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명분과 목적만 남고, 사람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지금은 어쩌면 내가 가장 멀리 과거의 공부에서 떠났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섭섭함만 남았고, 각자의 길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서 이런 질문이 들었다. “그 때 우리들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 우리들은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막연했다. 다만 ‘그 결과는 더디 오겠지만, 우리로 인하여 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다. 이랬던 나에게 니체는 너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가장 좋은 것은 배우지도 못했다. (…) 그러니 너희는 다만 창조를 하기 위해서만 배워야 하리라!(『차라』, 「낡은 서판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 340-341)고 말한다. 나는 이제 ‘제대로 배우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배우기 위해’, ‘창조를 하기 위해서만 배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니체는 내게 지금까지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한 높이로 올라갈 것과 지금까지 한 번도 내려가보지 못한 깊이로 내려가라고 다그친다. 그러면서 이 높이와 깊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였다고 말한다. 

저 더없이 높은 산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 일찍이 물어본 일이 있다. 그때 나는 그들이 바다에서 솟아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증거가 저들의 암석과 산정의 암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더없이 깊은 심연으로부터 더없이 높은 것이 그의 높이까지 올라왔음이 틀림없으렷다.(『차라』, 「나그네」, 256)

니체와 불교. 나에게 정말 낯선 공부였다. 그러나 이 낯선 공부가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이 낯선 공부는 나를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낮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 나는 이제 ‘사회적 명분과 목적이 아닌 매일의 일상이 공부와 삶이라는 것’, ‘내 본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생명력있고 활기찬 삶이라는 것’, ‘삶의 활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한 걸음 걸어갈 때 만나게 된다는 점’ 등을 내 삶의 새로운 서판으로 걸고 있다. 이러한 서판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어떤 낯선 공부도, 어떤 낯선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몸이 되고 있다. 어떤 사건을 만나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뿐만 아니라, 우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내 삶의 힘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니체를 이해할 수 있다니!”, “내가 부처님 말씀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다니!”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단지 내가 과거와는 다른 좀더 재미있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한줄기 빛을 보았을 뿐이다. 

‘위버멘쉬’를 새로운 과업으로 삼다
‘영원회귀’를 우주 운행의 원리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높이에 오르면 된다. 그 높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존재하는 것의 총체인 우주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우주와 하나가 되는 체험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이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어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 같은 높은 경지에 올라 세계와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기에 이른 사람이 위버멘쉬이다.

이처럼 생을 병들에 한 초월적 이념과 신앙, 그리고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은 사람, 힘에의 의지를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 영원한 회귀에서 오는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 니체가 머릿속에 그린 위버멘쉬다. 이 위버멘쉬 경지에서 자신과 세계를 상실한 인간은 자신을 되찾고 세계를 되찾게 된다. 그 순간, 주변은 한층 밝아지고 청량한 기운까지 감돌게 된다.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의연하게 “좋다 그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을 외치게 된다.(정동호, 『니체』, 594, 책세상) 

하지만 니체는 지금까지 위버멘쉬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니체는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앞으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원히 위버멘쉬의 길을 가기를 원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라 ‘위버멘쉬’라는 과업이다. 이렇듯 위버멘쉬는 인간 모두가 이 지상의 나라에서 스스로 성취해야할 과업이다. 영원한 자기극복의 길에 나서는 것과 위버멘쉬 혹은 ‘깨달음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4. 명랑성 회복과 일상의 변화

‘명랑성 회복’이라는 새로운 서판을 걸게 되다
니체 철학은 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한 니힐리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의 니힐리즘은 부정을 위한 거부가 아니다. 오히려 니체의 니힐리즘은 디오니소스적이라 할 만큼, 그의 부정은 긍정을 내포하고 있다. 니체는 세상과 인간의 민낯을 본 그 만큼,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긍정했다. 이제 내가 니체를 읽어야 할 지점은 이곳이다. 니체는 한층 명랑해졌고, 자신에게서 넘치는 힘을 발견했다.

암울하지만 대중에게 책임 있는 일을 하면서 명랑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 그런데 그 어떤 것이 명랑함보다 더 필요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일도 들뜸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잘되지 못하는 법이다.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힘이야말로 힘에 대한 증거이다.(『우상의 황혼』, 「서문」, 73)

세상에 대한 의무감으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좋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내가 좋다는 이유로 공부만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것은 원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도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책임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가 타인에 대한 책임이다. 중요한 것은 그 책임을 ‘명랑함’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 ‘명랑한 인간-되기!’ 니체가 말했듯이 내 삶의 활기를 위해 이 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명랑함에는 들뜸과 넘침이 있다. 음식도 맛있게 되기 전, 부글부글 끓을 때 약간의 들뜸과 넘침이 있다. 다만 이를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나보고 ‘들떠있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고,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상한 길로 가지 않고, 내가 ‘명랑한 인간-되기’로 가는 좋은 징조였으면 좋겠다. 다행히 니체는 이런 내게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고 있다.

생명은 이 비밀도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 그는 말했다. “보라, 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렷다.(…)
생명이 있는 곳, 거기에만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나 가르치노라.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힘에의 의지라는 것을!(『차라』, 「자기극복에 대하여」, 195-196)

나는 ‘배운 남자’이전에 생명이다. 내가 생명이라면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다시 시작한 공부를 시작한 후, 가끔 ‘들뜸’과 ‘넘치는 힘’이 감지되기도 했다. 다르게 인식한 세계에서 예전과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나는 이쯤에서 세상일은 그만두고 그냥 혼자 조용히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최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니체가 말했듯이 “이 세계에는 많은 것들이 악취를 내뿜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지혜가 들어있다. 역겨움. 그것이 바로 날개와 샘이 어디 있는지를 예감하는 힘을 창조해내니! 더없이 뛰어난 자에게도 역겨움을 일으키는 무엇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더없이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아직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오 형제들이여, 이 세계에 많은 오물이 있다고들 하는데 거기에 많은 지혜가 들어 있다!”(『차라』, 338) 이제 나는 역겨움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나를 완성한다는 새로운 과업을 품고 다시 사람 속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심지어 과거 문을 꽝 닫고 나온 곳에서도 다시 뭔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에게 과거와는 다른 ‘인식체계’가 왔다. ‘영원회귀’와 ‘힘에의 의지’라는 인식체계가! ‘연기緣起’의 조건에서 이 순간 ‘생성하고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나!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났으니, 내 삶에서 새로운 많은 것이 가능하다.

과거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실패했다. 나는 반쯤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은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게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반쯤 파멸한 자들이여! 그대들은 실패를 하고 절반만 성공했지만 그것이 뭐 그리 놀랄 일이란 말인가! 그대들 내부에서 인류의 미래가 밀치락달치락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사람에게 있어서 더없이 먼 것, 더없이 깊은 것, 별처럼 더없이 드높은 것, 그의 엄청난 힘. 이들 모두가 그대들의 항아리 속에서 서로에 맞서 거품을 내고 있지 않은가?
많은 항아리가 깨어진다 하여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이랴! 마땅한 방식으로 그대 자신들을 비웃어주는 법을 익히도록 하라!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여,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차라』, 「보다 지체 높은 인간에 대하여」, 480)

“실패로 끝났다고?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나는 실패하고 파멸했지만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많은 귀한 것이 성취되었다. 그것은 “작고 훌륭하며 완전한 것, 제대로 된 것들”(『차라』, 「보다 지체 높은 인간에 대하여」, 480)이다. 니체는 말한다.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 주변에 작고 훌륭하며 안전한 것들을 놓아두도록 하라!”고.(위의 책, 481)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의 새로운 서판이다. 이 새로운 서판을 위해 나는 이렇게 읽고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또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로 인해 역겨움을 느끼거나 무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시도와 물음’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라는 인식의 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행하는 활동은 ‘영원회귀’하는 공간에서 나라는 한 사람이 ‘힘에의 의지’를 발현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연기緣起’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생성하고 변화하는 지금 이 순간의 일’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은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니체와 불교의 지혜에 완전히 의지해야 한다. 의지하는 만큼, 인식하는 만큼 힘이 생긴다.

존재의 질을 높이면서 명랑하게 살아가기
과거 나는 ‘사회적 실천’을 위한 공부를 했고, 그렇게 살았다. 예를 들어 ‘좀더 세련된 제도’, ‘좀더 평등한 기회’, ‘좀더 공적인 가치의 실현’을 위한 공부를 했고 이를 위한 실천을 했다. 니체의 비유에 따르면 ‘낙타’, 혹은 ‘사자’와 같은 삶이었다. 이제 나는 ‘지혜의 실천’을 위한 공부와 삶을 살고자 한다. 니체의 ‘초인’과 대승불교의 ‘보살’의 가르침을 배워 ‘공부 보살’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니체와 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제도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니체와 불교를 만난 이후 나는 더 이상 제도를 붙들고 있을 생각이 없다. 니체의 말은 나를 다른 길로 가게 했다. 니체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너의 공부와 노력에는 ‘자기 극복’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너의 ‘정의로움’을 앞세워 남을 탓하고, 제도를 바꾸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나는 일찍이 그러한 너의 ‘정의로움’이 얼마나 궁핍하고, 추하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인지를 알고 있었다. 특히 너는 제도를 앞세워 스스로를 작열하는 불꽃이자 숯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않느냐?”(『차라』) 그렇다! 하마터면 나는 작열하는 불꽃이자 숯으로 살다가, 딱딱하고 남을 재단하기 좋아하는 존재로 삶을 마감할 뻔했다. 다행이 최근 나는 ‘차라’의 가르침에 나를 올려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의 말, 생각, 행동, 나아가 나의 세포가 ‘위버멘쉬’의 길로 하나하나 변해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앞으로 다른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과거 나의 공부와 일이 제도를 바꾸려는 전사의 길이었다면, 이제 나의 공부와 일은 ‘공부보살의 길’이라 부를 수 있다. 보살은 혼자서 삼매에 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과거 우리가 그랬듯이 ‘우리만 옳다’라는 의도치 않은 고상함도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보살은 불력(佛力)에 의해서만 삼매에 드는 것이고, 우리는 ‘영원회귀’가 아닌 다른 갇힌 세계에서는 절대 ‘위버멘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 힘으로 자기 세계의 선정에 드는 것은 결과가 처음부터 뻔하다. 자기 생각으로는 유원•광대한 듯이 보이는 경우에도 결국 그 근본이 자아 관념에 뿌리박고 있는 한, 그것은 좁고 열등한 선정이며 이른바 유루정(有漏定 ; 번뇌를 포함하는 선정)에 틀림없다. 『화엄경』의 선정은 그렇지 않아서, 스스로 삼매에 들면서도 그것은 비로자나불에 의지하고 있다. 즉 우리는 스스로의 삼매를 통해 비로자나불의 삼매에 접하고 그 삼매에 동화될 수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스스로의 삼매는 우주 그것의 삼매에 접하고 우주 그것의 삼매에 동화되는 것이다. 거기서는 자기 혼자 선정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그것이 선정인 것이며 삼라만상이 좌선하고 있는 것이다.”(다마키 고시로 지음/이원섭 옮김, 알기 쉬운 불교 『화엄경』, 26-27, 현암사) 그러니 우리는 ‘나’라는 상相, 혹은 나라는 ‘주체’, 혹은 나와 세상에 대한 ‘목적론’을 버리고, ‘영원회귀’한 세상, 혹은 연기로 이루어진 세상의 변화와 생성의 흐름 속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이 과정과 함께 나는 앞으로 ‘존재의 질을 높이면서 명랑하게 살아가기!’를 실천할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방법을 터득하면 우리 삶을 꼭 해야 할 숙제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역할과 맡은 일을 해내면 됩니다.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정 수준의 성공이나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틱낫한, 『내손안에 부처의 손이 있네』, 196~197) 

‘영원회귀’하는, 혹은 ‘연기緣起’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목적’이니 ‘의무’니 하는 세상에 대한 부담감 없이, 뭔가 성취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채 의식도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명랑한 삶이다. 이러한 나의 명랑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간절히 원할 만큼 넉넉한 삶이다."(『차라』, 531) 나의 명랑함은 이제 세상의 어떤 아픔도, 지옥도, 미움도, 비방도, 불구자도 간절히 원한다. 과거 나에게 역겨움을 일으켰던 그 어떤 것도 이제는 나를 생성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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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수달   2020-04-06 15:34:12
 
무장애의 길에 나선 듯한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삶과 글에의 치열함이 전해지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세상의 어떤 미움과 비방을 간절히 원한다는 말씀에 화상입은 듯합니다! ^^ 가시는 길을 응원하며 덩달아 힘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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