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금성] 비극, 생에 대한 찬가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 > 감성에세이

[2019 금성] 비극, 생에 대한 찬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생각통 작성일20-01-23 22:27 조회2,012회 댓글0건

본문



비극, 생에 대한 찬가 

성승현 (금요대중지성)

1. 삶은 비극이다?
2.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난다
3. 운명애를 위한 필수코스 ‘디오니소스적인 것’
① 오이디푸스 : 불행이 아닌 운명으로
② 프로메테우스 : 운명, 실험이 되다 
4.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서의 ‘전쟁’과 ‘음악’
① 독일 전쟁 : 혁명
② 바그너의 음악 : 불협화음
5. 영웅의 운명에는 얼굴이 없다
6. 모든 삶을 사랑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래서였을까? 어린 시절 도서관을 전전하며 책을 읽어댔다. 이것도 습관이 되었는지,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책부터 찾곤 했다. 나이가 들며 그 범위는 확대되었다. 정치나 사회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궁금했다. 사회적으로 저명하거나 박식한 사람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의견을 학습했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지 못하면 삶을 엉망으로 살 것 같았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옳고 그름을 가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든든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분별은 더욱 심해졌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강력해졌다.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경직되어 갔던 것이다. 

이런 예를 들 수 있겠다. 나는 ‘순결’에 대해 학습했고, 그것은 나의 앎이 되었다. ‘순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性)이란 방탕하고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지키지 못할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것이고,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라는 관념이 주입되어 있었던 것. 20대, 막 연애를 시작할 나이가 되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정신적 교감은 좋지만, 육체적 관계는 아직!’이라며 방어했다. 우연히 대학 선배로부터 혼전순결이란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관념인지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의 충격이란.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을 뿐이다. ‘순결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구시대적 산물’이라는 앎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앎은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고, 감각하지 못했다. 왜일까? 내 앎의 영역을 벗어나는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측되지 않는 삶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경직된 삶에 답답함을 느낄 때 만난 것이 니체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강렬하게 잡아당긴 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었다. 도취, 심연, 혼돈, 황홀경, 생명력 등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니체가 ‘삶을 변호하는 본능으로서의 본능’으로 『비극의 탄생』을 썼듯이, 경직된 삶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내 본능은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니체는 비극을 통해 삶을 사유했다. 비극은 따로 있지 않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 있고, 만남과 동시에 이별이 있는 것처럼 비극은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비극을 삶으로 표현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이것에 대한 태도다. 비극을 ‘소크라테스적’으로 겪을 것이냐,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겪을 것이냐! 

소크라테스적으로 겪는다는 것은 ‘앎’을 통해 비극을 겪는 것을 말한다. 니체는 비극이 에우리피데스(그리스 비극 작가)를 정점으로 ‘소크라테스적’으로 변했다고 본다. 말로써 모든 것이 설명되고, 학습 가능한 것이 됐다. ‘이론적 인간’의 탄생이다. 하지만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론을 탄탄히 해도, 그것은 삶 위에서 매번 미끄러진다. 삶은 가상이고 착각이고 오류의 필연성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고통 앞에서 어떤 이론도 통하지 않는 경험을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론적 인간들은 ‘인간’을 해결 가능한 과제들이라는 협소한 영역 속에 가두고, 지식과 학문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지식이나 학문으로 무장을 해도 개별적 실존의 끔찍함을 들여다보게 되면, 겁을 먹고 마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으로 세운 개별적 삶에 대한 환상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의, 축제, 술과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보라. 이성적인 것, 형식적인 것은 사라지고 야생 혹은 본능만이 남는다. ‘힘에의 의지’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도 표현한다. 니체는 이를 ‘개별화의 속박이 분쇄되고 존재의 어머니들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개별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며 옭아맸던 개체로써의 ‘자기’를 ‘포기’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개체는 찢김을 당하고 죽는다. 하지만, 그 개체는 지식과 학문으로 무장했던 현상으로써의 ‘나’일 뿐이다. 그 현상이 죽으면 삶을 추동하는 ‘힘에의 의지’만 남게 된다. 

de1.jpg


지식과 학문으로만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어떤 존재로도 변이되지 못하는 신체, 사물의 가장 깊은 핵심에 이르지 못하는 신체, 그런 신체를 고집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자신이 되어보는 그런 경험의 길을 가보는 거다.


1. 삶은 비극이다?

이제 우리는 ‘비극’에 대해 좀 더 깊은 사유를 할 필요가 있다. 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할까.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고민할까. 왜 인간은 이렇게 알고 싶어하는 걸까? 기원전 900년에서 200년까지를 축의 시대라 부른다. 이때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철학적ㆍ종교적 전통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또한 붓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예수 등 사유의 천재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사유가 최고로 꽃피던 그 시기는 역설적으로 인류가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시기였다. 끊이지 않는 전쟁,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사람들은 ‘인간의 길’에 대해 통찰했던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서 사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축의 시대 성인들처럼 통찰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고통을 겪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중에서도 니체는 그리스에 주목했다.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이고, 비극이라고 했다. 삶과 동시에 죽음이 있고, 만남과 이별, 건강과 병 등이 함께 맞물려 있으므로. 게다가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때 사람들은 이상을 설정함으로써 삶을 낭만하거나, 삶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며 부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한다. 니체는 낙관하는 것이나 비관하는 것 모두 허무주의적 태도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것을 약함의 염세주의라고 명명한다. 

염세주의란 반드시 몰락, 퇴폐, 실패, 지치고 약화된 본능의 표시인가? 강함의 염세주의는 존재하는가? 행복으로부터, 넘쳐나는 건강으로부터, 그리고 생의 충만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가혹함과 두려움 그리고 삶의 악함과 문제적인 것에 대한 지적인 욕구는 존재하는가? 혹시 충일함 자체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가능한가? (니체,  『비극의 탄생』, 아카넷, 16쪽) 


니체에게 있어 염세주의는 피해야 할 무엇이 아니다. 다만, 그는 두 종류의 염세주의를 제시한다. 약함의 염세주의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으로부터의 도피를 특징으로 한다. 또 학문이란 것은 삶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기에 약함의 징후라 판단하는 것이다. 반면, 강함의 염세주의는 생의 충만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삶에 있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적으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용기, 즉 자신의 힘을 시험해볼 수 있는 호적수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니체는 강함의 염세주의자가 되기 위해 그리스 비극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 가장 비극적인 현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삶으로 가장 강력하게 유혹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좋은 삶, 내게 유익한 삶만을 따로 원하는 게 아니었다. 희로애락이 점철된 삶, 그 모든 삶을 강력하게 원했다. 우연히 찾아오는 수많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삶’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동력이 비극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그리스 비극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들은 우선 차안의 위로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 그대들이 전적으로 염세주의자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나의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아마도 그대들은 웃는 자로서 제일 먼저 형이상학을 던져주게 될 것이다! (같은 책, 38쪽)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쓰고 16년이 지난 후에, 이 책의 서문을 다시 썼다. 이때 그는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염세주의자로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삶에 무수히 많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 삶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삶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낭만주의자가 되거나 낙관주의자가 되어버리기 쉽다. 고통이 동반되는 이 삶은 사후의 삶을 위한 대가로 여기거나, 고통 자체를 인식하려고 하지 않고 도망치거나. 그도 아니면, 이런 비극을 겪는 자신을 숭고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니체의 의도는 확실하다. 인생이 비극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엄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de2.jpg


2.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학습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학습이고 배움이지만, 성장하면서 각자의 환경에 맞는 상식과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것이 삶의 지침이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결정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된다. 그렇게 자신의 지식, 즉 이론에 근거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과 지식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쌓은 지식이겠지만, 분별과 배타, 경직 등의 현상을 낳는다. 자기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지 않을까. 

그리스 비극 작가 중에서도 이론을 통해 비극적인 삶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있다. 에우리피데스이다. 그리스에는 3대 비극작가가 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들 중 막내다. 그는 선배 작가인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가 그려낸 비극 세계를 탐구하고 또 탐구했다. 그렇게 포착해낸 것은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명료해 보이는 형체라 할지라도, 항상 불확실하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꼬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157쪽), 그 불확실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아낙사고라스처럼 이 세상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었다. 비극 무대에 도입했던 장치, ‘프롤로그’와 ‘기계장치의 신’은 그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고대 비극에서 제시되는 윤리적 문제의 해결 방식에 의혹을 가졌다. 행복과 불행의 분배는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사태는 단순한데 비해 묘사는 왜 이렇게 복잡한가, 소박한 인물이 기괴한 사건을 겪는다는 것이 인과에 맞는가, 비극의 언어는 왜 이렇게 거슬리는가 등등. 그는 이렇게 해명되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고 다듬었다. 연극 시작에 앞서 등장 인물이 사건을 겪게 되는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장치를 도입했는데, 그것이 ‘프롤로그’다. 그리고 연극의 종결부에서 ‘기계 장치의 신’이 등장한다. 기계신이 나와 비극에 대해 결말을 지었는데, 모든 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에우리피데스가 이 두 장치를 통해 제거한 것은 ‘혼돈’이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시스템이 행복을 보장한다’라거나 ‘천사 같이 착한 아이가 큰 불행을 겪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고 말하지는 않는가. 이것이 합리고 이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다. 질서를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혼돈을 제거하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슬픈 일을 말할 때면 슬픔에 빠져 눈물로 가득차게 되고, 섬뜩한 일을 말할 때면 머리칼은 공포로 곤두서고 가슴은 두근거리는 것’(163쪽)이다.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섬뜩한 일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을 제거하려 할수록 ‘나’라는 주체는 더욱 도드라졌다. 

니체는 이 대목에서 ‘가상 속에서의 서사적 망아(忘我)’가 되지 못하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에우리피데스가 추구했던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오히려 ‘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인간의 불안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가상 속에서도 ‘나’를 잊지 못하는 상태라니 말이다. 반면 에우리피데스의 선배들은 비극을 통해 삶의 우연성에 대해 가르쳐주려고 했다. ‘필연적인 형식’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자면 우연한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재능(166쪽)을 가지고 있었던 것. 세상은 이성과 합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비극이란 것이 불행을 겪어도 될만한 사람을 골라서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비극은 ‘우연히’ 발생하는 모든 것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3. 운명애를 위한 필수코스, ‘디오니소스적인 것’

지식과 학문이 나쁜가? 이론적인 게 나쁜가?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우리의 배움과 진리 추구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렇기에 용법이 중요하다. 니체는 ‘지식’이 삶을 통찰하는 ‘앎’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디오니소스적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지식이나 학문만으로는 이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세계를 원으로 간주했을 때, 지식이나 학문으로 알 수 있는 세계는 피자조각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려고 해도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때 비극적 인식이 터져나오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나는 피자조각의 앎으로 어떻게든 봉합하며 살려고 했다. 그 앎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야만 예측불가능한 세계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니체는 전혀 다른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나의 눈은 이전보다도 훨씬 늙었고 백 배나 버릇이 없어졌지만, 이 대담한 책이 처음으로 도전한 과제 – 즉 학문을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고,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본다는 과제조차 낯설어할 정도로 냉담하게 되지는 않았다. (같은 책, 19쪽) 

다시 쓴 니체의 서문을 보면, 그는 서투르고, 지나치게 꼼꼼하고, 비유가 난무하며 감상적인 이 책이 지금의 그에게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지 감추려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나에게 이 책은 있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과제로 삼았던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학문을 예술가의 관점에서 봐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왜? 예술가의 관점이 있어야만 ‘학문’은 ‘삶’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학문은 선악의 분별을 하게 마련이다. 알아야만 선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 분별을 지우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불리는 예술이다.
 
먼저, 디오니소스는 누구인가. 디오니소스는 술과 황홀경의 신이다.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고, 페르세포네의 아들로 보는 신화도 있다. 헤라의 사주 때문에 미치광이가 되기도 하고, 티탄들에 의해 여덟 조각으로 갈갈이 찢겨 삼켜지기도 하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 신앙을 전파하는 영혼의 사냥꾼이 된다. 포도주는 술이다. 포도는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술은 사람들을 도취와 환각상태로 이끈다. 학문과 지식으로 도배된 영혼이 환각상태가 되어 어떤 것에도 때묻지 않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갈갈이 찢긴 디오니소스는 어떤가? 기존의 ‘자아’가 갈갈이 찢기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반복한다. 이처럼 ‘나’라고 하는 자아를 잊게 하는 것이 디오니소스의 역할이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마력 아래서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만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적대시되어 왔거나 억압되어 온 자연도 자신의 잃어버린 탕아인 인간과 다시 화해의 축제를 벌이게 된다. (같은 책, 60쪽)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의식하는 ‘자아’를 잃어버림으로써, 잃어버린 ‘본성’과 재회하게 만든다. 이후에 디오니소스에게 올리는 디오니소스제가 성행했는데, 이를 법으로 제정하기 위한 논의가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자아’를 버리는 것이 시대의 화두라니!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제의 합창찬가인 디티람보스로부터 시작됐다. 디타람보스가 ‘비극’이라는 연극 형식으로 변형되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오이디푸스’의 얼굴을 한 디오니소스,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을 한 디오니소스였다. 이들을 통해 관객들은 ‘자아’를 버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de6.jpg


하지만, ‘자아’를 버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스토리와 연기적 측면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극장의 구조도 한몫했다. 극장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지금은 무대가 중심이 되어 있고, 관객은 구경꾼일 뿐이다. 하지만 이때에는 무대보다 관객석이 더 중요했다. 무대보다 관객석이 더 앞으로 나와 있는 구조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이 합창단이다. 합창단은 무대 위의 인물들을 살아 있는 실제 인물로 생각해야만 했다. 거인 프로메테우스를 눈앞에 실제로 보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 자신을 무대 위의 신과 마찬가지로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로 변신한 자들이다. 이들의 합창을 들으며 관객은 자신이 변하는 것을 보고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과 성격으로 들어간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다른 존재로의 진입(123쪽), 그것이 비극의 근원현상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운명 속으로 진입해, 그들의 비극을 함께 겪는다. 그들이 운명을 겪는 방식을 통해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겪었을까?

① 오이디푸스 : 불행이 아닌 운명으로

이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가 추구했던 비극의 본질에 대해 탐색할 예정이다. 그리스 비극의 시대에는 ‘운명’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삶은 ‘운명’에 의해 펼쳐졌다. 신들의 신탁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운명에 휩쓸리게 된다. 먼저 오이디푸스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라는 작품을 통해 ‘운명’에 대해 사유했다. 보통 운명이라는 말을 언제 쓰는가? 사랑을 할 때 ‘운명적 상대’ 운운하기도 하지만, 불행한 일이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당했을 때 절망적인 목소리로 ‘이것이 운명이란 말인가’라고 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이라는 소용돌이에서 가장 비참한 일을 겪은 인물로 꼽을 수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옆 나라 코린토스의 왕자가 되었다. 그런데 청년이 되어 우연히 그 신탁에 대해 듣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 위로 나선다. 테바이로 향하던 중 길에서 싸움이 붙었는데, 그때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 고통받고 있던 테바이를 구한다. 영웅이 된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되어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대로 이루어졌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서는 풀 수 없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운 자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감한 자였다. 그런 그에게 불행이 덮쳤다. 그의 운명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버린다. ‘알면 바꿀 수 있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오만’을 제거한 것이다. 동시에 ‘아는 자로서의 오이디푸스’를 파괴한 것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까지 읽어야 완성된다. 오이디푸스는 다시 길 위로 나섰다. 테바이를 떠나 방랑을 시작하게 된 것. 브로치로 찌른 눈은 보기에 흉했으며,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했다. 늘 굶주림에 시달렸고, 추위와 더위도 그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아티카의 콜로누스라는 신전 앞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마지막 신탁을 받게 된다. 그가 머물게 되는 마지막 땅에 묻히는 것만으로 자비를 베풀게 된다는 내용이다. 타인에게 축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극도의 수동성 속에서 최고의 능동성을 얻게 되고 이 능동성은 그의 생애를 훨씬 넘어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반면에, 젊은 시절의 의식적 노력과 정진은 단지 수동성으로 이끌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같은 책, 132쪽)

지금까지 그가 노력해서 이룬 행위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사건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반면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것에 순전히 인종자로 자신을 내맡길 때 오히려 자신의 주위에 축복이 넘치는 마력을 행사하게(131쪽) 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마지막 신탁인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주변은 다시 시끄러워진다. ‘그의 시체가 묻히게 되는 땅에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국가 간에, 형제 간에 분쟁이 일어난 것. 
  
사실, 오이디푸스는 방랑의 길을 떠나 고생을 할 때,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자신의 오만에 대한 대가로 자기 눈을 찌르는 용기를 보였지만,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마음이 요동친다. 테바이 성에 머물라고 했던 크레온이 추방 명령을 내린 것에 원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으나 두 아들은 아비를 나몰라라 했다. 그랬던 아들이 신탁을 듣고 아비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으니… 오이디푸스는 ‘너를 내 살해자로 기억한다’는 말과 함께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것이다. 
  
de5.jpg


이런 오이디푸스를 자신의 오만을 깨달은 자로 볼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악’에 반대되는 ‘선’을 추구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찾아온 아들에게 그의 뜻대로 해주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 “너희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여기도록, 그리고 눈이 멀었다고 아버지를 무시하지 못하도록”(212쪽)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것은 비단 자기에게 효를 베풀라고, 혹은 약자에 대해 거만하지 말라는 충고가 아니다. 
  
운명이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찾아온 아들 플뤼네이케스 역시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자’의 다름 아니다. 빼앗긴 왕위를 찾으려는 욕망에 가득차 운명을 거스르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운명처럼 찾아온 아버지의 불행, 그런 아버지를 부양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고 계신 옷은 옷만큼이나 오래된 더러운 때가 눌어붙어 살갗을 상하게 하고, 눈 없는 머리에는 더벅머리만 바람에 나부끼는구나. 비참하게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들려 있는 음식도 이것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구나” 플뤼네이케스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만큼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던 것. 플뤼네이케스는 이 운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비참한 삶은 자신의 운명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숙부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으려 하고, 친동생과 대결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이디푸스는 ‘젊은 시절의 의식적 노력과 정진’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오만과 너무도 닮은 아들의 오만에 저주를 퍼붓는다. “너를 다른 거처로 데려가도록 아버지 타르타로스의 끔찍한 암흑을 부르고, 이곳 원림에 계신 여신들을 부르며, 너희 둘 사이에 무서운 증오심을 불러일으킨 아레스를 부른다”(213쪽)라고. 오이디푸스는 플뤼네이케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비극적 사건을 불행으로 혹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다고 해석할 때 그 삶은 ‘불행’으로 해석된다.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일이든 내가 겪을 수 있는 일로 그 사건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억울해하거나 비탄에 빠질 이유가 없다. ‘어떻게 겪을 것인가’라는 문제만이 남을 뿐. 그래서 니체는 내게 다가오는 이 모든 ‘운명’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② 프로메테우스 : 운명, 실험이 되다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통해 운명에 대한 다른 용법을 제시한다.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신의 지위에 있는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한다. 신들의 특권인 ‘불’을 인간에게 나눠준 것. 이 때문에 신들은 크게 분노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어 매일 까마귀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내렸다. 대부분의 신들은 가혹한 형벌을 내린 제우스의 결단에 동의했다. 미개한 인간에 불을 줬다는 것은 ‘문명(文明)’, 곧 지혜를 줬다는 것이고, 이로써 신들은 권력을 빼앗겼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정의 실현이다. 또 이를 위해 고통이라는 운명을 적극적으로 겪는다는 것에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신이었다. ‘왜 인간들은 이 특권들에서 배제되지?’ 프로메테우스는 질문했다. 보통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를 평등에 기초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가진 자’가 자신의 특권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체는 그의 정의감을 근대적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초월적인 정의’라고 명명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렇게 해서 분명해지는 것은 신들이 ‘자신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거다.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는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불은 신들의 소유물이었다. 이것을 인간에게 줬다? 이 행위로 인해 ‘불을 유일하게 소유할 수 있는 신’이라는 존재가 부각된다. 신과 인간이 평등하게 불을 나누어 갖게 되자, 신이 개별적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적 존재가 되는 순간, 특권을 빼앗길까 두려움이 생기고 그것을 막아보고자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인간의 삶은 신에 의해 결정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리스 비극을 보면 인간이 겪는 운명은 모두 신의 뜻에 의해 그려진다. 그런데,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태도는 같지 않다. 이때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신이 결정했지만 신의 뜻대로 불행해지지 않는 것! 신이 결정했지만 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 그렇게 종속 관계를 벗어나게 됐을 때, 니체가 말하는 초월적 정의가 실현된다. 

de3.jpg


니체는 신화가 ‘삶을 지향하는 문화’의 역할을 해야지,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신이 초월적 존재가 되지 않도록, 종교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막은 셈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셈 족의 타죄신화와 대조(137쪽)된다. 타죄신화는 현재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는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를 따먹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호기심, 현혹에 넘어가는 것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인간에게 ‘원죄’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신과 인간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신에 대한 모독을 존엄하게 바라본다. 신을 모독한 죄와 그에 따른 고통을 정당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초월적 정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적 정의’란 것을 들 수 있다. ‘시적 정의’란 에우리피데스가 기계 장치의 신을 통해 추구한 것이다. 이성과 합리로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신념! 도덕은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알려준다. 지식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려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덕이고, 신앙이 곧 도덕이 되는 그런 세계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설정된 지식과 도덕은 정의롭지 않다. 자신들의 세계를 위협하면 폭력으로 그 성격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행사한 폭력이 그것이다. 
  
물론 존재는 기본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원한다. 하지만 안정에 대한 욕망은 존재를 딱딱하고 차갑게 만들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을 때를 떠올려보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무수한 가능성과 변수를 제거해야만 기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안정을 지켜낼 수 있다. 

현존하는 모든 것은 정당하고 부당하며 두 가지 면에서 똑같이 정당화된다. 이것이 너의 세계이다! 이것이 세계라 불리는 것이다! (같은 책, 140쪽)

프로메테우스는 이 안정에의 욕망에 균열을 내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정당함과 부당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현재의 질서가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질서는 안정에의 욕망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결국 폭력성을 갖게 되므로 그 자체로 부당하다. 이 말은 현존하는 모든 것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균열과 질서를 반복해야만 한다는 것! 그것은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삶은 곧 실험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4. ‘디오니스적인 것’으로서의 전쟁 그리고 음악 

니체가 19세기 독일을 다르게 사유하게 된 전환점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다윈은 ‘인류가 우발과 우연을 통해 순전히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그 전까지는 ‘존재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점 진화한다’는 것으로써 진화를 생각했는데, 다윈은 고차적인 동물들과 인간이 전적으로 개체들 안에서 ‘우연한 변이’를 거쳐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로써 세계를 ‘진보’의 차원이 아닌, ‘변화’의 차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니체는 이를 적극 수용했다. 이제 더 이상 존재에 대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세계는 우연과 변화의 산물일 뿐이다. 
  
이는 앞서 니체가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 그렇기에 이것을 지식과 학문으로 규정하면 할수록 어긋남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우연한’ 것이 독일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기존의 것에 대한 ‘파괴’다. 근대에 가장 어울리는 가치는 ‘이성과 계몽’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가치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다는 진화적 믿음이 팽배했다. 이 믿음에 균열을 낼만한 것이 필요했다. 니체는 이러한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전쟁’과 바그너의 ‘음악’을 꼽았다. 

① 독일 전쟁 : 혁명  

당시 독일의 화두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혁명은 진보된 국가를 따라하는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발적이지도 않았고, 내부의 동력도 크지 않았다. 유럽은 동양과 달리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국가를 형성했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립은 뒤늦게 이루어졌다. 후발주자였던 독일의 혁명은 ‘프랑스 따라잡기’ 식이었다. 특히 상류층은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 마치 고등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기도 했다. 혁명도 프랑스 혁명에 자극을 받아 일어났다. 프랑스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신호 삼아 혁명을 일으켰다. 주요 과제는 ‘국가의 수립’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했고, 결국 실패했다. 외부(프랑스)에서 제시한 매뉴얼을 흉내내는 것으로 혁명을 수행하고 있으니 결과는 뻔했다. 
  
앞에서 니체가 생각한 세계는 ‘우연과 변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의 ‘성격’이다. 즉 승리한 자는 ‘적응한 자’가 아니라 ‘강력한 활력을 지닌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독일은 오히려 이미 세팅된 유럽 세계에 ‘적응하는 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연도 겪지 않고, 변화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던 거다.
  
1871년, 드디어 독일이 통일을 하게 되었다.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쟁’에 의해서였다. 니체에게는 전쟁이 오히려 우발적인 사건처럼 해석됐다. 혁명조차 수동적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독일이 전쟁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니체는 전쟁의 발발을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분위기로 물든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분출로 여겼다. 그 당시 친구 로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우리의 낡아빠진 문화가 두려운 악령의 품에 안긴다’(85쪽)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이란 게 문명의 얇은 껍질을 부수고, 생이 중대한 국면에 처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던 니체는 망설이지 않고, 위생병으로 지원해서 전선으로 향한다.

나 역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희망 때문에 나는 직접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후송되는 부상자와 함께 누워서 그를 돌보던 외로웠던 밤, 비극의 세 가지 심연을 떠올렸던 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세 가지 심연은 바로 광기, 의지, 고통입니다. (같은 책, 13쪽)

니체가 전쟁에서 발견한 ‘광기, 의지, 고통’은 혁명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혁명은 기존의 세계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폭발되는 것이 ‘혁명’이다. 광기와 고통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비로소 ‘주체’가 사라진다. 무슨 말일까. 비자발적이고, 반혁명적인 독일이라는 껍질이 벗겨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진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게 되고, 우연과 변화를 겪을 수 있는 독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가 독일의 문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가나 돈벌이 그리고 군사적인 오만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드러나자 니체는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오히려 ‘프로이센을 문화에 가장 위험한 권력’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② 바그너의 음악 : 불협화음  

니체는 물질주의, 경제 우선주의, 역사주의에 의해, 그리고 독일 제국 수립과정에서 독일의 정신적 삶이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훼손된 독일의 정신을 바그너의 음악극을 통해 다시 일으켜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니체는 ‘쇼펜하우어주의자’였다. 개별성이 사라졌을 때 인간의 본성에 어떤 것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의지’만이 넘실댄다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크게 매혹됐다. 니체는 그 넘실대는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대적 문명에 의해서 말이다. 어떻게 그 ‘의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니체는 고심하던 차에 바그너의 음악을 만나게 된다. 니체는 바그너에게서 희망을 봤다. 니체가 바그너를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극적 신화가 산출하는 쾌감은 음악에서 불협화음이 낳는 쾌감과 고향을 같이한다. 고통에서조차 느껴지는 근원적인 쾌감을 수반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음악과 비극적 신화의 공통의 모태인 것이다. (같은 책, 287쪽) 

니체가 봤을 때, 바그너의 음악은 비극적 신화와 괘를 같이 한다. 디오니소스적 경험을 통해 잃어버린 탕아인 인간과 화해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본성의 넘실대는 ‘의지’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de4.jpg


바그너의 불협화음이 뭐길래? 바그너의 <트린스탄과 이졸데> 라는 작품을 보면, ‘트리스탄 코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화음이 있다. 이 화음에는 두 개의 불협화음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준다. 이 불협화음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일부는 해결이 되지만, 일부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이것을 듣는 사람은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을 해결하기 위해 그 화음 속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니체는 이 상태 속에 디오니소스적 요소가 있다고 봤다. ‘디오니소스적 현상은 항상 새롭게 반복해서 우리에게 개체의 세계를 건설하고 파괴하면서 유희하는 것을 근원적 쾌감의 분출로서 계시하는 것’(287쪽)이라고. 이것을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래를 쌓았다가 부수면서 유희하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기존의 독일인들에 타격을 가하지 않고는 ‘훌륭한 건강과 심오함, 디오니소스적 힘을 그대로 지닌’ 독일 정신을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타격은 바그너의 음악이 주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바그너에게도 실망하게 된다. 그가 어느새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예술 산업의 대표주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충격과 효과를 우선시했고,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했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효과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호화로운 대저택이었고, 자본이 투자된 장소였다. 이미 그의 예술은 본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관객은 장엄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공연을 감상하는 감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은 어떤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되어 ‘나’를 버리게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던가. 니체는 변질된 바그너의 음악세계와도 결별하게 된다. 


5. 영웅의 운명에는 얼굴이 없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우려하는 점이 있었다. 인간이 우연과 변이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삶을 살아간단 말인가. 인간들이 느낄 삶에 대한 ‘허무’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윈주의를 참작하면서도 결코 다윈주의 때문에 붕괴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상을 만들어야 한다"(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북캠퍼스, 130쪽)고 생각했다. 니체는 그 세계상을 그리스 비극에서 발견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쟁이나 바그너의 음악은 본질적인 방법이 되지 못했다. 결국은 그리스 비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중에서도 ‘영웅’에 집중된다. 『비극의 탄생』에서 언급되는 영웅을 꼽으라면 오이디푸스나 프로메테우스, 안티고네를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안티고네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다.
  
나는 안티고네를 인상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중요한 비극으로 이야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고유의 삶은 없고 아버지와 오빠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겪어낸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다. 안티고네는 매번의 조건 속에서 자기를 변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비밀이 풀리면서 동시에 안티고네의 출생의 비밀도 풀리게 된다. 그녀는 장님이 된 아버지를 따라 방랑길에 오른다. 새로운 왕 크레온의 아들과 약혼한 상태였지만, 테베에 남지 않는다. 오이디푸스는 오랜 방랑 끝에 클로노스라는 땅에서 비로소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 땅을 축복하며 세상을 떠난다. 그런 후에야 고향인 테베로 돌아왔는데, 이젠 역모에 몰린 오빠의 시체가 들판에 버려져 있다. 왕은 그 시체를 건드리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거라고 공언했다. 안티고네는 담담하게 오빠의 시체를 수습하고 체포된다. 
  
안티고네의 선택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정의로워 보인다. 눈이 먼 아버지를 책임진 유일한 인물, 버려진 시체를 유일하게 수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착하게 군 것이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안티고네가 주어진 운명 속으로 뛰어드는 힘에 있다. 안티고네는 모두가 기피하는 운명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한다. 그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공주에서 방랑자로, 다시 반역자 혹은 애도자로! 
  
오이디푸스, 프로메테우스, 안티고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느 지점에서 영웅의 면모를 발견한 걸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힘든 도전과 그 과정에서 겪는 시련이 영웅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시련이 곧 영웅을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통을 적극적으로 겪었다는 것에 있다. 니체가 말하는 약함의 염세주의자들이 고통을 제대로 겪을 수 있을까? 학문과 지식에 기대거나,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꾸며 이 세상을 견디거나, 주어진 운명에 일희일비할 것이다. 하지만 강함의 염세주의자들은 생의 충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 에너지를 쏟는 대상이 ‘좋은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들조차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불행을 겪은 오이디푸스는 ‘방랑자’라는 포지션으로 다시 살아간다.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간을 쪼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제우스와 타협하지 않는다. 안티고네에게는 어떤 불행도, 어떤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 
  
de5.jpg


'운명에는 얼굴이 없다'(『니체, 그의 삶과 철학』, 42쪽). 그렇다. 운명에는 선악이, 행 ‧ 불행이 따로 없다. 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왕이 되었을 때,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된다. 인간이 프로메테우스가 준 불 덕분에 문명함을 얻게 되었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간을 쪼이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행 ‧ 불행은 동시적이고, 그래서 누구의 행복, 누구의 불행으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 운명 앞에서 어떻게 ‘행위’하느냐에 따라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일 뿐. 운명에 결연히 맞서며 행위하는 자들이 곧 영웅이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자, 프로메테우스는 초월적 정의를 실현한 자, 안티고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영웅이 된다.  
  

6. 모든 삶을 사랑한다

영웅의 조건은 무엇인가. 다가온 운명에 시비와 분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곧 어떤 운명이 와도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야 정해진 운명에 상상력을 더할 수 있게 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경험하게 되면, 주체가 해체되면서 ‘생명에의 의지’라고 하는 힘만이 넘실댄다고 했다. 인간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고,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넘실대는 그 힘에 우리는 자꾸 이름을 부여했고, 엄숙함을 선사했다. 지식과 학문으로 부여한 가치(정의, 이성, 발전 등)를 실현하게 했고,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이름(부모, 회사원, 서민 등)으로 살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소진되어가던 힘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름으로 회복된다. 규정된 가치, 부여된 이름이 파괴되면서 ‘힘에의 의지’만이 넘실되는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제 가장 귀한 점토이자 가장 값진 대리석인 인간이 반죽되고 조각된다’(61쪽)고. 이제 비로소 그 힘을 창조적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높은 이오니아식 주랑 밑을 거닐면서, 순수하고 고상하게 그어진 지평선을 바라보고, 빛나는 대리석에 비춰지는 자신의 성스럽게 변용된 모습을 옆에 두고, 조화롭게 울리는 목소리와 율동적인 몸짓으로 걸어 다니면서 그는 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아름다움의 물결을 보면서 아폴론에게 손을 들어 올리며 부르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책, 292쪽)


『비극의 탄생』 마지막 부분이다. 이오니아식 주랑이라는 공간이 펼쳐진다. 왜일까?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폴론적인 것’과 쌍을 이룬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부되어 있다(47쪽)’고 한 것처럼, 파괴가 되었으면 생성이, 혼돈이 있으면 질서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오니아 양식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겪음으로써 창조됐다. 
  
이오니아 양식은 도리스 족의 침입으로 펠로폰네소스에서 소아시아 연안과 에게해의 여러 섬에 쫓겨 간 이오니아 인들에 의하여 전개된 양식이다. 남성적이고 직선적이고 중후한 도리스적 사고보다 여성적이고 경쾌하고 우아한 이오니아식 사고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때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이 다가왔을 때,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폭력을 폭력으로, 미움을 미움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경직된 사고를 경쾌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도리스 족의 침입을 이겨낸 것이다. 자신들에게 다가온 운명을 비관하고, 침략은 나쁜 것이라고 분노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시비와 분별을 버리고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면 어떤 운명이, 어떤 삶이 와도 새로운 운명을, 새로운 삶을 창안해낼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