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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화성] 명분의 이면(異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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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랑 작성일20-05-26 21:39 조회1,9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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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의 이면(異面)

 

이향원(화요대중지성)

   

교직에 있는 동안 내내 나는 학내민주화 투쟁을 하며 살았다. 민주화란 무엇인가. 백성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교사나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학교에서는 교장이 왕이었다. 어떤 교장은 수업 시간에 갑자기 들어와 자기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아이들 뛰는 보폭이 틀리다고 군대식으로 얼차려를 시켰다. 또 다른 교장은 종업식 날, 아이들 성적을 반 평균 내어 성적이 높은 반 선생님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학교는 교사나 아이들의 뜻이 전혀 번영되지 않는 교장의 시간과 공간이었다.

 

그러한 교장들의 독선적인 학교운영방식에 맞서 나는 직원회의 석상에서 일어나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으며, 어느 때는 손에 쥐고 있던 유인물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교장은 교장대로 내 말에 꼬투리를 잡아 다른 논리를 만들어 일장 연설을 하고. 그러면 교직원회의는 교장과 나의 싸움판이 되었다. 그러고 나면 학교 분위기는 싸~ 해졌다. 선생님들은 독선적으로 전횡을 일삼는 교장도 싫어했지만, 거기에 거친 방식으로 대항하는 나도 싫어했던 것 같다. 거칠게 활동하는 나 또한, 그들에게는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학내민주화를 위해 일어선다는 그 명분 아래엔 무엇이 있었을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타고난 덕은 명분 때문에 사라지고 분별하는 지식은 다툼 때문에 생겨난다. 즉 명분은 서로 다투는 것이고, 지식은 그것을 위한 무기일 뿐이다. 둘 다 흉기이니 사람이 닦아야 할 것이 아니다."(장자,낭송 장자, 이희경 풀어 읽음, 북드라망, 43) 장자는 스스로 내세우는 명분 때문에 자기 안에 처음부터 타고나 있었던 덕(), 어질고 인자한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가 내세우는 그 명분 때문에 다투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툼에서 이기려고 하니, 자기가 내세운 명분만이 옳다고 하는 이론, 지식을 만들어낼 것이고. 결국 이러한 명분과 지식은 서로 간에 상처를 내는 흉기가 될 것이니, 사람이라면 절대 그것을 구하고, 좇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장자가 말한 대로 나는, 내가 가진 그 알량한 명분과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말로, 시선으로 끊임없이 흉기를 휘두르며 싸워온, 폭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를 자처하는 나나 보수인 교장이나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결국 내 명분의 이면엔 교장과 똑 같은 권력을 누리고 싶은 지배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장자는 또한, 자기 안에 도()를 갖춘 후에야 다른 사람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의 감정 하나 제대로 통제 못하면서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관리자에게 제대로 학교 운영하라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내 소통의 문은 닫혀버리고 말았다. 선생님들에게도 함께 하자고 하며 그들의 의견을 구한 적이 없었다. 늘 그냥 나 혼자 독불장군 격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꼴이다. 진정한 학내민주화를 이루려면 선생님들과 함께 하고, 그들이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했다. 결국 명퇴를 하게 되고, 또 다른 세상 감이당으로 왔다. 그러나 여기, 감이당에 와서도 내 폭력적인 소통 방식은 계속되는 것 같다. 나는 학인들을 위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을 한다지만 상대방은 전투적인 내 방식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여전히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원점에 선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 새로 태어나고 싶다. 장자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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