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화성] 나만의 기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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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크로드 작성일20-05-27 10:57 조회1,915회 댓글0건본문
어려서부터 나는 ‘사회적 잣대’,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에 익숙했다. 집에서는 엄격한 부모님 기준에,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의 기준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남이 좋다는 것, 남이 보기에 번듯한 것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좋다는 것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 괴로워졌다. 내가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면 괴로움이 해결될 것 같아 더 노력했지만, 그 결과 우울증에 눈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감이당에 와서도 이런 패턴은 계속되었다. 이번엔 감이당의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기엔 너무 욕심 많고 모자란 사람인 것 같았다. 거기에 다시 감이당 밖을 나가면, 스펙에도 도움하나 안 되는 공부를 한다며 시간을 버리고 있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공부를 한다면서 그 기준이 나에게 있지 않으니 당연히 불안하고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감이당에서의 첫해는 한껏 어긋나고 힘들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장자를 만났다. 장자 인간세 편에 지리소라는 사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리소는 누가 봐도 기괴하게 생긴 몰골을 가진 꼽추인데 삯바느질과 빨래를 통해 충분히 제 먹을 것을 벌고 열 식구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나라에서 병사를 징집할 때도 걱정 없이 자유로웠고, 병자를 위해 곡식을 나눠줄 때면 곡식에 장작까지 받았다. “이처럼 육체를 잊은 자도 제 몸을 건사하며 천수를 다하는데, 덕을 잊은 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낭송장자』 장자 지음, 이희경 풀어 읽음, 북드라망, 69-70쪽) 사람들의 기준에 지리소는 한껏 못 미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훨씬 당당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남의 기준을 운운하며 못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육체를 잊은 지리소가 이 정도인데 덕을 잊은 자의 경지란 대체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해졌다.
나는 올해 대학원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대학원 공부가 그리 하고 싶은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는 일 없이 있는 것이 남들에게 보이기 민망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인정하긴 싫지만 또 얼렁뚱땅 나의 기준을 적당히 남의 기준에 맞춰 한 선택이었다. 이번에 장자를 읽으며 나의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일 보다 지금처럼 공부하며 내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지리소 처럼 남들의 기준을 넘어 자유롭고 호방하게, 어떠한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 40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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