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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화성] 생명이 살아있는 문명의 보고서 『관자』
 글쓴이 : 수달 | 작성일 : 20-07-15 12:18
조회 : 234  


생명이 살아있는 문명의 보고서 『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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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화요 대중지성)

 

  사기 열전 중 하거서라는 편이 있다. 주로 수해 방지 치수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모아 따로 정리한 글이다. 둑이 터져 천자가 시를 지어 탄식한 일화나 점을 치는 장면, 사마천이 직접 수해 복구 작업에 참여한 일화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중 위나라의 정국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된다.

  위나라는 진나라의 확장을 염려하여 정국을 간첩으로 보낸다. 정국은 지금으로 치면 수자원관리공사 책임연구원 정도의 물 관리 전문가이다. 정국은 진나라가 수리 사업에 골몰하게 해서 국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정국의 수리사업으로 관중분지 1천여 평야가 옥토로 변했다. 이로 말미암아 위나라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진나라는 오히려 더욱 부강해졌다. 즉 진나라는 정국의 수리사업 덕분에 근본적으로 나라를 더욱 튼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의 힘의 토대는 칼과 창 이전에 치수, 물의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물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원천이며, 농업의 기반이자 부국강병의 핵심이었다. 부국강병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관자는 백성의 삶의 안정과 이익을 우선으로 삼았다. 고대 국가는 농업이 기반 산업이었고 농사를 좌우했던 것은 홍수와 가뭄이었다. 농민들의 삶을 절대적으로 좌우했던 홍수와 가뭄의 피해로부터 어떻게 하면 지켜낼 수 있을지 철저히 궁리하였을 것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의 물에 대한 생각과 옛 사람의 물에 대한 사유는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을까? 춘추시대 사람들은 물에 관한 어떤 시선을 품고 어떻게 물과 관계하고 있었을까? 관자엔 놀랍게도 물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기묘한 생명체의 시공간,


  39편 수지 편은 물의 근원에 대한 장이다. 부국강병을 논하는 책 관자에 이런 챕터가 들어 있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물은 만물의 본원이며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의 원질이라 한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태어나며 물은 생명을 주관한다. 그래서 물은 신령하고 존귀하다. 그런데 물은 물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인이 생각하는 물은 물과 함께 살아가며 물과 분리할 수 없는 생명체들을 포괄하는 더 큰 범주였다. 물 속 깊이 잠길 수 있어서 없앨 수 없는 것이 거북과 용이고, 이것은 조짐을 나타내고 어느 때든 변화하기에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드러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여 물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물은 거칠고 정미한 기운이 모여 사람과 옥을 만들고 더불어 거기엔 거북과 용이 산다. 물과 사람과 옥과 거북과 용이 함께 사유된다. 그런데 여기에 또 놀랍게도 물의 요정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기도 하는 것은 귀와 강기를 낳는다. 늪의 물이 마른지 수백 년이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물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곳에서 강기가 생긴다. 이것은 물이 마른 지 오래된 늪의 정령이다. 개울의 물이 마른 지 오래된 곳에서는 귀가 생긴다. 이것은 개울의 물이 마른 곳의 정령이다. (관자, 김필수 외 옮김, 소나무, 444, 중략)


  강기와 귀는 사라진 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정령이다. 지금은 말라 버렸지만 수 백 년 전에 있었던 물을 상기할 만큼 물은 지금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했던 것 같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강기와 귀. 고대인의 눈에는 노란 옷을 입은 말을 탄 작은 아이 같은 강기와 몸이 둘로 쪼개진 뱀 같은 귀가 실제로 보였을 것 같다. 이름을 부르면 얼른 달려와 보고하고 물고기를 잡아주는 순한 어떤 존재. 이들의 존재는 물이 사라지고 없어진 상태 또한 물의 일부로 보는 시선을 말해준다. 또한 물에 대한 사유가 그 기원과 역사에 관한 시간성도 포괄됨을 보여 준다. 생명의 근원인 물 자체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물과 사람과 옥과 거북과 용과 더불어 물의 시간인 강기와 귀까지, 이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이 물과 함께 사유된다.

  또한 그들에게 물은 군주이자 동시에 백성이었다. 깊고 마르지 않는 물은 밝고 지혜로운 군주를 상징했다. 고인 물을 터 이끌고 못물을 이용하고, 맴도는 얕은 물을 트고, 막힌 것을 소통시키고, 나루와 다리를 신중히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같은 책, 128) 군주의 덕의 흥성함 중 하나였다. 또한 그들에게 물은 백성이었다. 군주의 존재 기반,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군주가 아니었고, 그들의 마음을 얻었을 때만이 비로소 군주였다. 교룡은 물에 있는 벌레 가운데 신비한 동물이다. 교룡은 물을 얻어야 신령한 권위가 서고, 군주는 백성을 얻어야 권위가 선다.’(같은 책, 608)라고 하였다.

  물은 사람과 옥을 낳고 거북과 용과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귀와 강기의 시간을 사유하게 하고 군주이자 백성인,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시공간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 없지만 있는 그 너머를 동시에 사유하는 것, 관계 지어진 것들 속에서 관계를 사유하는 것, 머나먼 기원의 시간까지 포괄하여 사유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자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체험하는 이들의 시선은 지금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자연과 한 몸 된 존재, 인간


  이렇게 물을 다양한 생명체들의 시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자연과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 또한 다르게 펼쳐지게 한다. 이는 환공과 관자가 치수사업을 논하는 제 57편 탁지에 잘 드러난다.(같은 책, 569~571)

  백성에게 해로운 피해 중 물의 피해가 가장 심대하다고 하자 환공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다. 관자는 먼저 물의 성질과 특성을 논하며 수해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방비하는 대책을 자세히 답한다. 사계절의 때를 살펴 날씨와 조화롭게 공사를 실시하고 농부의 활동에 최대한 피해가 적도록 사업을 조절했다. 한 가구 식솔 단위까지 할 일을 꼼꼼히 챙기고 지나치게 부과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겨울철에 복구 장비를 갖춰 놓아 언제든 대비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고, 제방 위에 버드나무를 심어 단단히 해 백성의 삶이 기름지도록 마음을 쓰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치수사업에 포함되었다. 백성들의 일상적 삶과 나라의 치수사업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수해가 나기 전에 미리 방비할 준비를 때에 맞춰 해 놓고, 수해가 났을 때 재빨리 복구할 수 있도록 관리가 수시로 순찰하여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치수사업의 성패는 사계절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같은 리듬으로 농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율해 나가는 것에 달려 있었다.

  이렇게 수해 대비책을 논하는 관자의 답변은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몸이 되어 함께 서로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해의 재난을 막고 농사의 이익을 늘리는 인간의 인위가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지 않고 함께 간다. 이럴 때 물은 두려운 재앙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르는 풍요로움의 원천이 되었다. 그 때의 군주는 가장 훌륭한 방비를 이룬 성군이 되고 백성의 배에는 기름이 흘렀다. 나라와 군주와 백성의 이익과 자연의 풍요로움이 하나로 일치되고, 국가와 군주와 농부와 어린아이와 들판의 곡식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다르지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물이란 무엇인가?

 

  웅덩이에 고인 물을 터서 양쪽 큰 대로 사이의 지역으로 직통하게 하니, 양쪽 집과 술집의 하수가 흘러들어 큰 새가 날아들고, 물총새와 제비 같은 조그만 새들이 모여들어 저녁에는 술을 마시며 새들을 감상하는, 이것이 물 위의 즐거움입니다. 상인들은 재물을 축적하여 팔 때는 값을 따지지 않고, 살 때는 물건을 취하려고만 하고, 시장에 팔 때는 반값으로 파니, 점포에 벌여놓고 큰 새만 잡으려고 합니다. 청년들과 소년들은 탄약과 탄환을 가지고 물 위에서 노닐며 물총새나 제비 같은 조그만 새들을 잡으려고 늦게까지 시간을 보냅니다. (같은 책, 835)

 

  이 문장은 관자를 통틀어 한 컷의 사진처럼 제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포착되었다. 양쪽의 물을 터서 물을 소통시키니 새들이 날아들고, 이를 잡으려는 아이들도 몰려들고 상인들은 이때다 하고 한 몫 보려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풍경 한 토막. 저녁 무렵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평화로운 일상을 감상하는 즐거움. 이 소박하고 즐거운 장면은 몇 년 전 우리의 물에 대한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녹조류로 얼룩지고 고기들의 씨가 말라 죽음의 강이 되어 어부들이 떠나가는 우리네 제방 사업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풍경이다. 인간의 인위가 자연의 생명을 앗아갈 때 인간의 생명도 위협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다. 자연을 다양한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공간으로 상상하는 일,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하는 일을 배운다면 우리의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내 주변의 생명과 나의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관자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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