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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수성]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글쓴이 : 문명 | 작성일 : 20-08-08 19:57
조회 : 239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 나츠메 소세키 마음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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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수요 대중지성)


해변 저 멀리까지 수영을 하고, 때가 되면 어디론가 산책을 다니는 사람.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 나오는 선생님이다. 그의 일상은 편안하고 고요해 보이기 그지없다. 하지만 햇볕에 그을리듯, 그의 내면은 타들어 간다. 그 누구에게도, 아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꽁꽁 간직한 채로. 그는 오로지 한 사람 에게만 그것을 털어놓는다. 그것도 죽기 바로 직전에 남긴 편지를 통해서 말이다. 선생님의 유서를 보면 갑갑하다. 멀리서 보면 하숙집에서 일어나는 세 남녀의 삼각관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시선에서는 엄청난 신경전과 미묘한 마음이 오가는 시공간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말이다. 그는 도대체 왜 그래야만 했을까.

 


세상에 신용할 만한 사람은 없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숙부와의 이야기로 그의 유서를 시작한다. 일찍이 부모님은 여읜 그는 숙부의 보살핌을 받는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토록 칭찬했던 숙부는 이제 그에게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그라는 존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선생님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을 전적으로 숙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보고 돌변한 숙부네의 태도에 선생님의 세계는 손바닥을 뒤집듯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마치 맹인이었던 눈이 순식간에 뜨인 것처럼 말이다. 의심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마침내 숙부가 자신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을 알자 선생님은 인간 불신의 늪에 빠진다.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나츠메 소세키, 마음, 현암사, 83)

 

평범한 사람이 돈을 보고 갑자기 악인이 되는 예로서, 세상에 신용할 만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예로서 나는 증오와 함께 숙부를 생각했던 거야. (나츠메 소세키, 마음, 현암사, 165)

 

  선생님은 숙부네와의 관계를 빠르게 정리하고 고향을 떠난다. 재산을 정리하는 도중 얼마를 손해 보든 상관없다. 다시는 숙부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속지 않겠다고 결심한 선생님. 이제 그의 세상은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하게 된다. 하숙집을 구할 때도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자신을 속이는지 아닌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불신으로 가득 찬 세계는 기이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인 하숙집 아가씨조차도 경계하기 시작하는 순간 교활한 책략가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와 아가씨, 두 사람이 짜고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게 아닐지 생각하면 괴로워서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그가 그려낸 의심의 세계는 그에게는 어느 쪽이나 상상이고 또 어느 쪽이나 진실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가씨에게 고백할 수도 없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남의 손에 놀아나는 것은 무엇보다 부아통이 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가씨 앞에서조차 솔직해질 수 없다. 늘 머릿속에서 상상과 진실을 오갈 뿐이다. 늘 속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슬프게도 나는 애꾸눈이었다네


  이때 선생님이 하숙집에 데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친구 K이다. K는 수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에서 태어나 정신적 향상심을 키우기 위해서 정진했다. 선생님은 그런 K의 수행을 지지하며, 파양을 당해 사정이 딱한 그를 하숙집에 들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K의 신경쇠약은 좋아졌으나 선생님은 점점 예민해져만 갔다. K와 아가씨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선생님 자신의 계산에는 없던 일이었다. 도를 수행하는 ‘K라면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는 마음에서 일부러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가 갑자기 아가씨와의 관계에서 경쟁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K와 선생님의 이해는 충돌한다. 하지만 그를 내쫓을 수는 없다. ? 그렇게 하면 K를 도와주면서 느끼는 자신의 우월함이 없어지기 때문에.

  평소에 뭘 해도 K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은 점점 더 초조해진다.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K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를 데리고 여행을 가서 얘기 좀 할까 싶었지만 대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선생님은 K를 하숙집에서 내보내지도, 그렇다고 아가씨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지도 못한다. 불안이 극에 달하자 선생님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K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나는 먼저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라네라고 말했네. 이는 둘이서 보슈를 여행할 때 K가 나에게 한 말이야. 나는 그가 쓴 대로, 그와 똑같은 어조로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지. 하지만 결코 복수가 아니었어. 복수 이상으로 잔혹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네. 나는 그 한마디로 K 앞에 놓인 사랑의 앞길을 막으려고 한 거였다네. (나츠메 소세키, 마음, 현암사, 239)

 

  상대를 너무 잘 알아서 그럴까. 선생님은 궁지에 몰려 K에게 가장 약점이 되는 말을 던진다. 정신적 향상심을 추구하며 금욕하는 K가 아가씨를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선생님은 복수보다도 더 잔혹한 의미를 담아서 가장 뼈아픈 말을 던진다.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불안으로 가득 찬 그의 세계에서 더 이상 고뇌하는 친구 K는 없었다. 갑자기 친구에서 강도가 된 K. 선생님은 더더욱 K를 옥죈다. ‘늑대가 틈을 보아 양의 목덜미를 덥석 물 듯이’. 선생님은 평소에 K가 했던 주장들을 내세우며 그에게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그만둘 각오가 있는지 몰아세운다. 각오라면 없지 않다는 K의 말이 선생님의 귓가에 맴돈다.

 

그때 내가 만약 그 놀람으로 다시 한번 그가 입에 담은 각오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리저리 공평하게 생각해보았다면 그래도 괜찮았을지 모르지. 슬프게도 나는 애꾸눈이었다네. 나는 그 단어를 그저 K가 아가씨에게 다가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한 거야. (나츠메 소세키, 마음, 현암사, 245-246)

 

  선생님의 세계는 한쪽 눈만 뜬 사람과도 같았다. 아가씨에 대한 독점욕에 불타 다른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 그 각오라는 말은 K가 정진을 포기하고 아가씨에게 가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에 선생님은 재빨리 일을 진행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K보다 먼저, 게다가 K가 모르게, 아주머니에게 아가씨를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결국 아가씨와의 결혼 승낙을 받고야 만다. 그 말을 전해 들은 K는 한밤중에 자살한다.

 


그래도 나는 끝내 나를 잃을 수 없었네


  선생님은 K가 죽은 것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죽은 K와 마주친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그래도 나는 끝내 나를 잃을 수 없었네. 나는 곧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편지를 보았지. 예상대로 나에게 쓴 편지였어. 정신없이 봉투를 뜯었네. 하지만 안에는 내가 예상한 내용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더군. 거기에는 나에게 얼마나 쓰라린 문구가 쓰여 있을까 하고 예상했거든. 그리고 만약 그것이 아주머님이나 아가씨의 눈에 띈다면 경멸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있었네. 나는 잠깐 훑어만 보고 우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물론 세상의 이목이라는 면에서는 다행이었는데, 이 경우에는 세상의 이목이 나에게 굉장히 중대한 사건으로 보였던 거네.) (나츠메 소세키, 마음, 현암사, 255-256)

 

이 순간에도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평판에 몰두한다. 친구의 죽음에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허겁지겁 편지를 들추기에 바쁘다. 나에게 해가 되는 게 없다는 걸 알고 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까지. 이런 선생님의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의 끝을 보여준다. 도대체 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남의 손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인간. 어긋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내비칠 수 없는 인간. 독점욕으로 불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고, 평소 자신이 열등감을 갖고 있던 친구를 도와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인간. 여자를 두고 경쟁자가 된 친구의 약점을 잡아 목덜미를 물어버리는 인간. 하지만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 어느 것 하나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인간의 모습. 나도 내 이해에 따라 세상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었던 적이 있다. 늘 밥 먹는 공간이 어색해지고, 불안과 초조, 변해버린 나 자신의 모습도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찌할 바 몰라 전전긍긍하지만 털어놓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없다.


  선생님은 결혼한 뒤에도 K의 자살에 대하여 아내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선생님에게는 가장 큰 괴로움이 아니었을까. 같이 살을 부대끼는 사람과도 마음이 통할 수 없는 괴로움. 선생님은 아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아내가 생각한 것이라 했지만, 사실 그 스스로 부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미지. 그 탓에 선생님은 죽기 직전까지도 아내에게 말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살아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유서에 담아 에게 보낸다. ‘스스로 심장을 갈라 그 피를우리에게 끼얹고자, 가장 참담했던 순간의 기억을 꺼내 뱉어낸 것이다. 우리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있기를 하는 바람에서.

  인간은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 자본주의와 자유연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돈과 사랑 앞에서 길을 잃고,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상처받고, 상처입힌다밖으로는 자유, 독립, 개인을 외치지만, 결국 속지 않기 위해, 남에게 놀아나지 않기 위해,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그치만 그런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과 거리를 두며 불안과 초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대인들. 소세키는 이미 100년 전,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예민하게 그려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유서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겉으로 평온하지만 내면은 타들어 가는 이들. 지금 우리 앞에 선생님의 유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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