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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화성] 현실을 벗어난 구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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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숙자 작성일21-07-10 00:14 조회1,0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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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벗어난 구원은 없다

 

최숙자(화요 대중지성)


 

 

水火旣濟
      旣濟 亨小 利貞 初吉終亂.
初九, 曳其輪 濡其尾 无咎.
六二, 婦喪其茀 勿逐 七日得.
九三, 高宗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
六四, 繻有衣袽 終日戒.
九五, 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實受其福.
上六, 濡其首 厲.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좀 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그럼 우린 언제 놀아요?” 건괘와 곤괘를 시작으로 열개의 괘를 배우고 주역 강의를 마치던 날이었다. 그날은 주역의 64괘 중 유일하게 모든 효가 제자리에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기제괘를 배운 참이었다. 나는 기제괘에 좀 기대를 했던 거 같다. 다 이룬 때이니만큼 축포라도 쏘아 올리며 마음껏 기뻐하고 편안히 쉬기를. 그때까지 배운 괘들은 지나치게 억누르고, 염려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성취한 때를 나타내는 괘의 효사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제괘의 효사는 긍정적인 표현이 없고 대체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괘사에도 “처음에는 길하지만 결국 어지러워진다(初吉終亂)”며 암울한 전망을 내어놓는다. 특히 육사효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유의녀 종일계(繻有衣袽 終日戒)”라니. 종일 헤진 옷가지를 들고 배에 스며드는 물을 틀어막아야 한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비단옷이 다 헤지도록 종일토록 경계해야 한다. 나의 머릿속에는 비단옷을 다 적시며 종일토록 물이 새는 배 위에서 걸레를 들고 허둥대는 한 여자가 그려졌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모든 것을 다 이룬 기제 때이지 않은가? 천지자연이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물음에 복희씨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나는 건 있지만 글도 쓰셔야 하니 그 의문을 가지고 주역 글쓰기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찾아보니 주역은 기본적으로 우환(憂患)의식에 기반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기제괘 육사 효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 것은 학문적 관심이라기보다는 그 문구가 내 안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올해 막내가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며 27년 동안 전전긍긍하던 육아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졌지만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 한 뒤치다꺼리는 끊임이 없었다. 작년에는 불화하던 부부사이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부부교육을 계기로 이전과는 다르게 나머지 생애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제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우리 부부도 건강하게 활동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유유의녀 종일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곰곰이 생각하면 그 효사는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피해의식과 원망, 그리고 지금은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것이다. 효사는 그 기대를 배반하고 있었다. 결혼과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는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난 이미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나와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내가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하늘이 도왔던지 큰 허물은 없이 자라주었고,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리라. 그리하여 나는 감이당에 와 있다. 그런데 다 성취한 기제(旣濟)의 때에 또 동동거리며 종일토록 경계해야하다니, 급 서운해진 것이다. 그러나 기제괘에 대한 나의 이해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었다.

 

기제괘는 상괘가 물웅덩이이자 위험을 상징하는 감(坎)괘, 하괘는 밝음과 현명함을 상징하는 리(離)괘로 이루어져 있다. 천체에 걸려있어야 할 빛이 아래에 임했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위에 있다. 이는 자신을 비우고 타자를 온전하게 받아들인 모양새다. 그리하여 물과 불은 서로 교류하고 상호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팽팽한 긴장상태와 절제를 요구한다. 위에 머문 물은 언제든 쏟아져 불을 꺼트릴 수 있고, 아래의 불은 맹렬하게 타올라 물을 다 졸여버릴 수도 있다. 상전에도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기제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환난을 미리 대비하고 방비해야 한다(象曰 水在火上 旣濟 君子以思患而豫防)”고 당부한다. 모든 것을 성취해 극한에 이른 상태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하고 삼가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리라. 다시 보니 물이 새는 배위에서 허둥거린다고 생각했던 육사효는 때를 아는 문명한 재상답게 환난을 대비해서 물샐틈없이 방비하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복희씨의 말대로 세상은 해석의 문제다. 고단하다고 생각하면 힘든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불안한 청춘의 강을 건너 안온한 가정에 도달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세찬 물살의 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동안 나의 마음은 피해의식으로 가득했다. 안락한 가정이라는 환상을 부여잡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라는 것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배 위에서 힘겹게 버티긴 하였으나 자신을 비워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를 고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주역을 통해 본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극한에 다다르면 무너지게 마련이도 또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세상 어느 곳도 안온하기만 한 곳은 없다. 강을 건너면 낙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강들이 기다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즐기기보다는 이 일을 통해 얻은 지혜를 갈무리하며 다음을 대비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리고 기제괘 육사효처럼 합당한 일이라면 당당하게 마주하고, 의연하게 감당해야 한다. 순리에 따른다는 것은 굴복이나 희생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정직한 자세로, 합당하게 대처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자신의 본성에 따라 당당하게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실을 벗어난 구원은 없다. 내가 도달한 곳이 어디이든, 과거의 원망과 후회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지금 여기의 순간들을 꽃피울 수 있겠는가? 나를 비우고 천지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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