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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성] 나의 부족한 표현력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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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선 작성일21-10-14 22:15 조회1,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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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족한 표현력 들여다보기

 

                                                                                         정명선 (수요대중지성) 

 

  나는 열 권짜리 시리즈를 두 번에 걸쳐 읽기는 생전 처음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읽어 뿌듯한 감정은 잠시고 또 글을 써야 하니 힘들다. 메모해서 덕지덕지 붙여 놓았으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잘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내 실력에 잘 쓸 수 없지 않은가! 그냥 쓰자. 서유기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왜 재미있다고 느껴 쓸까? 유쾌하고 발라한 세 제자와 삼장법사는 석가여래가 계신 서역(천축)으로 가서 경전을 구해오는 여정이다. 경전은 깨달음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가져오는 것이다. 이 여정은 온갖 요괴들과 싸우고 81난을 거치고 14년간에 걸쳐 십만 팔천 리를 걸어서 간다.

 

나도 말 잘하고 싶다

  특히 손오공과 저팔계의 유머와 농담이 웃음을 자아내고 유쾌하고 발랄하다. 서로 헐뜯고 삐지고 다시 뭉쳐서 길을 가는 과정에 농담과 유머가 넘쳐 웃음을 자아낸다. 삼장법사와 세 제자는 물론이고 요괴들조차도 자기를 표현하고 말하는데 뛰어나다. 이 힘들고 어려운 여정에 유머가 가득한 걸 보고 나의 말 없음을 보았다. 나는 말과 글이 아주 빈곤하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말하거나 느낌을 토론할 때도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맴돌 뿐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 질문도 못 하고 침묵으로 일관된 내가 너무 갑갑하다. 말이 없으니 글쓰기도 어렵다. 어떻게 하면 내 의견을 논리적이고 조리 있게 말하며,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둘째형, 그렇게 매달리고도 웃음이 나와요?” “동생, 내가 웃는 이유가 있어.”(.....) “우린 노마님이 올까봐 걱정했지. 그럼 당장 우릴 쪄먹어버릴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알고 보니, 노마님이 온 게 아니라 예전에 말한 그놈이 왔다, 이 말일세.” “옛날에 말한 그놈이라니요?” 그러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어요. “필마온이 왔다네.” (서유기, 오승은 지음,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2004, 4, 106)

 

  저팔계는 요괴에게 붙잡혀 대들보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웃을 수 있다! 죽음이 눈앞인데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저팔계는 덩치가 크고 생긴 것도 우악스러운데 유머가 넘친다. 이 유머와 농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말 못 하는 나를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이 안 나와 질질 짜면서 학교에 갔다. 너무 부끄러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회사부서원 전체가 서울 사람이고 나 혼자 경상도 아가씨였다. 목소리도 크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때부터 말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했다. 요즘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들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야기 도중 끼어드는 타이밍을 못 찾을 때도 있지만, 이 말을 해? 말어? 혼자 생각하다 보면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가 있다. 누군가 음담패설을 하거나 농담을 할 때도 터부시하고 무시해 버린다. 웃자고 하는 농담도 못 받아 주고 그냥 말없이 웃어넘긴다. 이렇다 보니 대화할 때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기운이 감돈다. 요즘 세미나 시간이나 조별토론 시간에도 말 없고 질문도 못 하는 내가 답답하다.

  나는 오행상으로 보면 식상이 없다. 식상은 언어 능력, , 성욕과 식욕 등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나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나를 표현하거나 상대방을 설득하는 재주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갑갑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줘

  손오공 일행이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험준한 산과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는 깊은 계곡을 지날 때다. 계곡 물속에서 소리가 들려 말을 멈추고 섰다. 용이 솟구쳐 나와 물결과 파도를 밀치고 산으로 뛰어올라 삼장법사를 채가려 할 때 손오공이 얼른 사부님을 안아 내리니 용이 백마를 안장과 고삐까지 통째로 먹어치우고 사라졌다. 그놈이 먹었다면 나는 어떻게 간단 말이냐? 아이고! 온통 강과 산인데 어떻게 가겠느냐?”며 삼장법사가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자 손오공이 화를 버럭 내며 벼락같이 고함을 쳤다. 사부님, 그런 머저리 같은 모습 좀 보이지 마세요”, “정말 구제 불능이군요! 구제 불능!” (같은책 2128), 사부에게 하는 말버릇 좀 보소?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제관계라!.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말이다. 버릇도 없고 예의범절도 없다. 하지만 손오공과 저팔계는 사부에게 불평을 거침없이 해댄다. 저팔계와 손오공이 툭하면 싸우고 서로 헐뜯고 욕하며 질투하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부님과 세 제자 간엔 위계나 권위가 없다. ‘내가 스승이다하는 상()도 없다. 그러므로 삼장법사의 찌질한 모습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세미나와 조별토론 시간에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자의식에 꽉 차 있는 나를 보았다. 발제문 쓰기 과제를 하면서 줄거리 요약도 안 되고 질문도 없는 과제를 읽다 보니 내 수준을 알게 되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도반들은 누구도 나의 어리석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자의식으로 몸이 많이 경직되어 있고 무뚝뚝하다. 그러므로 나의 자의식과 집착을 들어내고 비우고 힘을 빼야 말이 터일 것이다. 숨기고 꾸미거나 치장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말과 글로 잘 표현하길 발원하라

  힘을 뺀다는 건 나를 꾸밈없이 노출한다는 것이다. 말재주가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낭송과 필사, 글쓰기를 목표로 정하자. 내가 가진 것을 살피고 들어내며 비우는 마음을 갖자. 우선 버릴 물건이 무엇인지 살피고 물건부터 버려보자. 내가 소유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나의 탐진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농담도 유머도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 통하는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유머가 넘치는 말과 나를 들어내는 글을 써서 나를 잘 표현하길 발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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