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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화성] 명예(자부심)의 올바른 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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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숙자 작성일21-12-24 23:35 조회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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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자부심)의 올바른 용법


 

  “자유”라는 단어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았다. 생각하면 나는 대부분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고 싶었던 거 같다. 어린 시절에는 좁다란 강원도 시골 촌구석에서 떠나고 싶었고, 부모를 떠나 도시에서 생활할 때도 막연하게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또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진정한 안식처가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결혼생활에서 가장 강렬하게 떠나고 싶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과 현실은 매번 나를 배반하고 옥죄고 짓누르는 그 무엇이었다.  


        오뎅 국물과 도다리 쑥국


  나는 가끔씩 남편에게 미움을 넘어서는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내가 그를 비난하고 싶을 때 꺼내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오뎅 국물과 도다리 쑥국 그리고 술이다. 오뎅 국물 에피소드는 첫아이를 임신 중이던 내가 사다달라고 부탁한 것을 그가 거절한 사건이다. 우리는 재래시장 골목에 살았고 30미터만 걸어가면 살 수 있었다. 그는 씻었다며 나가기 싫다고 말했고 두어 번 더 부탁을 했지만 미동도 없었다. 시계는 저녁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도다리 쑥국은 불과 4,5년 전 이야기다. 친구부부와 남해안 섬 산행을 갔다가 도다리쑥국을 먹자는 내 요구를 무시한 사건이다. 쑥들이 돋아나는 봄날이었고, 식당마다 도다리쑥국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나는 봄바람을 맞으며 등산한 터라 담백하고 뜨끈할 걸로 예상되는 그 국물이 몹시도 먹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남편은 난전 포장마차에서 멍게와 해삼을 곁들인 소주를 먹는 것으로 하산후의 행로를 마음속으로 정해둔 터였다. 그날 섬을 나오는 배에서 허기진 배를 잡고 다행히 따듯했던 선실의 온돌바닥에 시린 등을 대고 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다.

  술에 관해서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 첫 기억은 시어머니의 회갑잔치에서였다. 우이동에 가든을 빌린 그날 남편은 춤추는 어머님 친구 분들 사이를 소주병과 안주를 들고 누비며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가든 마당에 큰대자로 누워버렸다. 한 잔을 드리면 한 잔을 받아 마셔야 하니 금방 취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술에 취해 많은 친척들과 손님들 앞에서 쓰러지는 사태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남편이 걱정되기보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당시 나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고달픈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린다는 개념이 없었고, 자신이 30년간 살던 방식에 당연히 내가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할머니에게는 재롱둥이 손주며느리가 될 것을, 딸이 없는 시부모님에게는 애교 많은 딸 노릇을, 친척들에게는 싹싹한 조카며느리가 될 것을 지시(제안?)했다. 나는 나의 취향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그가 이상하고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그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친정에서도 조부모님이 계셨고, 어머니는 대가족의 맏며느리 역할을 당연하게 수행했었다. 나는 그 당연한 일들이 왜 나에게는 이리도 힘든지 그저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했다. 

  

        지독한 예속


  나는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한 그를 미워하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꽤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내 삶과 그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이 되자고 수없이 결심했지만 매번 같은 지점에서 폭발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틈틈이 공부하고, 책을 읽고, 책과 관련한 활동을 했는데, 아는 것이 많아져도 왜 일상이 변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먼저 우리가 그동안 자라온 환경의 차이를 통해 다름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나는 일찍부터 독립해서 살았고, 그는 결혼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했던 것, 나의 아버지는 술, 담배를 안 하셨다는 것, 그는 두 형제 중 막내였기에 자신의 고집대로 할 수 있었던 반면 나는 일곱 형제 중 다섯째였기에 고집 부린다고 될 일이 없었다는 것 등이다. 

  종종 좋은 글귀들을 싱크대에 붙여놓고 외우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대사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랑했던 가족에 대한 말이다. 이 글귀를 외우며 나는 나의 사랑 없음을 스스로 질책했다.

  또 오랫동안 붙어있었던 메모는 김상봉의 『호모 에티쿠스』의 일부다. “참으로 선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선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희망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런 비극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문장은 남편으로 대표되는 세상을 악의 축으로, 나를 선한 희생자로 설정하고 무조건적인 인내와 헌신을 통해 오히려 승리자가 되자는 교묘한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제자리에서 맴돌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워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 왜 결실을 거두지 못했는지 스피노자는 명쾌하게 말한다. “어떤 정념 또는 정서의 힘은 이 정서가 인간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을 정도로 인간의 다른 행동 또는 역량을 압도할 수 있다.”(4부, 정리6) 분노의 정서는 결혼 초에 형성되어 이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연결되고, 강화되어 나름의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서는, 억제되는 그 정서와 상반되고 더 강한 정서가 아니고서는 억제될 수도 제거될 수도 없다.”(4부, 정리7) 내 공부가 더 큰 정서로 변환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또 스피노자는 역량의 확대를 위해 기쁨의 정서를 강조하는데, 나의 노력들은 대부분 슬픈 정서였으므로 오히려 역량의 감소를 초래하는 일이었다. 

  나는 꾸준하게도 오뎅 국물과 도다리쑥국 일화를 그가 얼마나 배려가 없고 이기적인지, 내가 그에게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를 증명하는 이야기로 썼다. 생각하면 그 음식들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면 스스로 사서 먹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생각하면 내가 요구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나는 결혼했으므로 당연하게 그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의 방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것은 아마도 미디어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표상을 나의 기질대로 구성하여 만들어진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나는 행복했을까? 이토록 심한 갈등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행복이 그의 태도에 달려있는 한 정념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정서 또는 의견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과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자의 사람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행위를 수행하는데 반해, 후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욕망에만 따르며, 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그리고 이 때문에 그가 가장 욕망하게 되는 행위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는 전자를 노예라고, 후자는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4부, 정리 66, 주석)


나는 오직 정서와 의견에 휘둘리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독한 예속이었다. 


        욕망이 향하는 두 가지 길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며,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를 원할 때 모든 사람은 서로에 장애물이 되고, 모든 사람이 모두에게 칭찬받거나 사랑받으려고 함에 따라 그들은 서로 미워하게 된다”(3부, 정리31, 주석)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외부원인에 계속해서 영향 받는 존재이며, 우리의 관념은 이미 타인의 욕망에 감염된 것이다. 

  나의 분노 속에 감추어진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듭된 사건들로 내가 훼손당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명예 즉 자부심이었다. 오뎅국물 사건도 일차적으로는 상호성에 기반 해 내가 준만큼의 사랑을 돌려받기를 바라는 욕구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랑받는 아내가 되지 못했다는 수치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술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남편은 몇 년에 한 번씩 경찰이나 응급실에서 연락이 와서 나를 망연자실하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의 안위도 안위지만 만약에 그렇게 죽는다면 아이들에게 얼마나 명예롭지 못한 일인가를 생각했다. 

  스피노자는“자부심에 대한 과도한 욕망”(3부, 부록, 44)을 ‘암비치오’라 부른다. 암비치오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인정욕망이다.  


인간 본성은 각자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에 따라 살아가기를 욕구하게끔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 바 있다.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사람에게서 이러한 욕구는 분명 암비치오라고 불리는 수동이며 자만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이성의 명령 아래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것은 도의심이라고 불리는 능동 또는 덕이다. 같은 방식으로 모든 욕구 또는 욕망은 부적합한 관념에서 생겨나는 한 수동일 뿐이다. 그리고 동일한 욕망들이 적합한 관념들에 의해 촉발되거나 산출될 경우에는 덕들로 간주된다. (5부, 정리4, 주석)


  위의 글에서처럼 인간본성은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으면 암비치오가 된다. 이는 수동이며, 자만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만’은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높게 여기는 것”(3부, 부록 28)으로 “자기애의 한 결과 또는 한 특성”(3부, 부록28, 해명)이다. 이런 성향은 어린 시절에 내 자부심을 충족시켜 줄만한 성공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강원도 벽촌에서 일곱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삶을 감당하시느라 바빴고 나는 아파도 보채지 않는 순한 아이였다. 나는 운동신경은 젬병이었고, 공부도 전교 일등 하는 언니에게 항상 가려져 있었으며, 방치된 부비동염으로 누런 코를 줄줄 흘리는 주근깨투성이에 말라깽이였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공상으로 충족시키기도 했는데 ‘원래는 고귀한 핏줄인데 여기에 맡겨졌으며 언젠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후에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도시아이들에게 기죽어 지냈고, 집안 사정도 성적도 어느 것 하나 받혀주지 않으니 대학진학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그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사랑과 관심에 목말랐던 아이는 명예(자부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나는 누가 뭐래도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결기 같은 것이 있었고 그것은 나를 버티어 내는 힘이었다. 

  지금생각하면 나의 삶에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덕적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도의심과 다른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삶을 살고자하는 수동의 암비치오라는 두 갈래의 욕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었던 거 같다. 고등학교 1학년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최소한 부모님께 누를 끼치는 딸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착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분들이므로 나로 인해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감격에 겨워 온천지만물에게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은 나도 모르게 저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작은 허물이 세상을 돌고 돌아 이 아이에게 어떤 해악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기반 했던 거 같지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것도 찬사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 마음은 오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자연의 이치, 신의 섭리에 대한 외경심이 가까운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스피노자는 나를 존속하려는 욕망 즉 코나투스를 실현하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고 말한다. 이성의 명령에 따라 적합한 관념들에 의해 생겨날 때 그것은 능동이며 덕(德)이다. 이 길은 정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확대해 나가는 자 곧 현자의 길이다. 또 다른 길은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 부적합한 관념들에서 생겨나는 맹목적인 충동에 시달리는 삶이 있다. 이 길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끄달리며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다가 존재하기를 멈추는 무지자의 길이다. 나는 이 두 갈래의 길에서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작동한 원심력의 정체


  아마도 나는 결혼과 함께 내가 갈망해마지 않았으나 아무도 주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 모든 사랑과 관심을 이제야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졌던 거 같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보자면 이 생각은 황당무계할 정도로 부당했다. 남편도 단편적이고 잘려나간 인식으로 자신의 기질에 따라 살려고 했던 한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빌려간 적도 없는 빚을 갚으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사채업자와 같았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아귀처럼 허기를 채우려 했던 것이다. 이 과도한 욕망은 나를 분노에 찬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왕궁을 떠난 심정을 이해했다. 나를 가두고 옥죄고 짓누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로서 나는 내 삶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한 떠나고만 싶었던 원심력의 정체를 이제야 알았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고만 싶었던 나의 심리상태는 자부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형성한 구심력을 스스로 견디지 못한 파괴적 충동이었다. 이는 모든 것을 흩어지게 하고 싶다는 죽음충동과 다르지 않았다. 스피노자도 “명예(자부심)의 올바른 용법”(5부, 정리10, 주석)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를 성취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한 나머지 공허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조건이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며 이로 인하여 언제든지 과도할 수 있는 정서들에 대한 치유법으로 “참된 인식”(5부, 정리4, 주석) 이라는 정신의 역량을 강조한다. 음식물이 우리의 신체와 만나 잘 소화되면 신체를 지속하는 에너지가 되듯이, 외부와의 만남으로 겪게 되는 자극을 받아들여 잘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나의 역량이 될 것이다. 그 부딪침이 나에게 상흔을 남길지라도 이를 극복하면 더 큰 역량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나에게 우연인 듯 찾아오는 필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유용하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처들은 삶을 예술로 만드는 통로가 될 것이므로. 

  나는 오랫동안 혼란스럽고, 잘려나가고 혼동된 정념에 사로잡혀 생명력을 고갈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정서를 인식하고 이성의 인도에 따라 이해하려는 능동성을 발휘하여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외부의 자극에 휩쓸려 가는 무능력한 삶에서 벗어나 본성의 필연성에 따르는 삶만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길이다. 어딘가에 천국와 평안이 따로 존재한다는 환상을 몰아내지 않는 한 ‘지복’에 이르는 길은 묘연하다. 그것들을 지금 여기 내가 맺는 관계들 속에서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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