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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성] 현실적 자아와 욕망하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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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춘삼 작성일21-12-26 13:40 조회1,0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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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자아와 욕망하는 자아


신해선 (수성 대중지성)

 

  ‘눈 뜬 채 꿈꾼 남자의 이야기는 우연히 칼리프를 만나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된 아부 하산의 이야기이다. 천일야화에는 소원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가 되거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아부 하산의 경우에는 단 하루만 칼리프가 되어동네 모스크를 관리하는 이맘과 고문인 영감탱이 넷을 혼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원이 정말 이루어졌다. 정확히 단 하루만! 하지만 칼리프로 살았던 그 하루가 너무도 강렬했던 탓일까? 그는 30년 넘게 살아온 아부 하산의 정체성을 부정하고는 자신은 칼리프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를 말리는 어머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패륜을 저지르고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욕망으로 인해 폭주해버린 아부 하산을 보면서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에게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또한 스스로를 외면하고 부정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자기 존재의 부정

 

  아부 하산은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엄한 부친으로 인해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부친이 죽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자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한다. 그는 재산의 반을 현금으로 바꾼 후 비슷한 친구들을 불러 모와 쾌락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1년 만에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는 친구들에게도 버림받는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난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우정이 만들어 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난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했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가난하고 초라하다는 자기 비하와 함께 인간에 대한 불신에 휩싸여 결국 대인기피증에 빠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인으로 변장한 칼리프를 만나 저녁식사를 대접하게 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칼리프가 소원을 묻자, ‘단 하루만이라도 칼리프가 되어자신의 일도 아닌 일에 간섭하면서 사람들 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있는 이맘과 4명의 늙은이를 혼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낀 칼리프는 아주 특별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 몰래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칼리프가 된 아부 하산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이내 곧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칼리프로써의 권력과 환락을 마음껏 즐긴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강렬했던 하루가 지나고 다시 아부 하산의 모습으로 깨어난다. 그러나 칼리프가 되는 것은 순순히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극렬히 거부한다.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모친에게 자신은 아부 아산이 아니라며 극도의 광기에 휩싸인 채 폭력을 휘두른다. 마귀할멈 같으니! 난 그대의 아들이 아니고, 그대는 내 모친이 아니야!”라며 어느새 말투까지 바뀐 그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너무도 짧았던 찰나의 황홀함은 욕망에 대한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집착을 낳고야 말았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려다 보니 자아불일치가 발생한 것이 원인입니다.대인기피증 진단을 내리며 한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남편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내 주위 사람들은 능력있다고 부러워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결혼할 땐 시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셨다. 시댁 친척들에게는 동갑이라고 속였고 남편 친구들에게는 2살 연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 나는 나이에 대해서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불필요하게 예민해졌다. 4년 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아이엄마모임에서 혼자 뛰쳐나왔다. 결혼도 늦고 아이도 늦게 낳다보니 나는 그들보다 7~8살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동등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 혼자 언니가 되어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모임이 부담스러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나이 보다는 수다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과 회사생활로 바빴기에 모임에 충실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부족했던 나는 나만 다르다는 생각에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동안 나는 나이를 속이고, 나이로 인해 위축되면서 매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사회통념과 무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아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던 것이다.

 

존재의 가치

 

  아부 하산은 천성적으로 쾌활한 성품을 타고 났으며 재치와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칼리프가 그의 소원을 들어 준 이유도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감동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 하는 것은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칼리프가 되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시중드는 아가씨들과 함께한 식사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부 하산은 시녀들을 옆에 앉히고 같이 식사를 하며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긴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녀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들이 알려 준 이름 역시 첫 번째 객실 아가씨들의 그것처럼 모두가 각 아가씨를 구별 짓는 영혼과 정신의 특징을 의미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앉아 있는 <마음의 사슬>에게는 무화과 하나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나를 사랑하시거든 이것을 좀 드시오! 그리고 그대를 보게 된 이후 나를 묶고 있는 이 사슬을 좀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시길!(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열린책들, 41,314~1,315)

 

  아부 하산은 최고의 권력과 만인의 존경을 받는 칼리프가 된다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할 필요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대인기피증에 빠지는 일도 정신병원에 갇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칼리프는 재치있는 말과 유쾌한 농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그의 가치를 알아차렸고 결국 아주 특별한 장난이 끝난 후에 그를 늘 곁에 두고는 여흥이 있을 때마다 불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혼 후 얼마 뒤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무 어린애 같은 자신의 아들에게 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승낙하셨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 결정권을 가진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댁 친척 어르신들도 나를 든든해하신다. 이렇게 보니 내가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니었다보다.

  감이당은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내가 누구인지 별 상관이 없는 곳이다. 나 자신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나에게 이러한 환경은 무한한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대중지성 1년의 과정이 끝나면 대부분 각자의 길로 헤어져야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며 지금 옆에 있는 시절인연이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도반들은 어떠한 조건 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응원해 준다. 우리는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서로를 통해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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