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자전거가 트이는 때가 각자 다르듯, ‘영성’이 트이는 데에 필요한 시간 또한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에 올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일생을 다해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윤회’라는 장치는 오히려 희망처럼 다가온다. 유효기간을 과감히 없애버린 것이니. 생각해 보면, ‘기다림’ 없는 ‘만남’이 존재할 수 없듯, ‘윤회’ 없는 ‘해탈’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까짓거, 내일이든, 다음 달이든, 다음 해이든, 다음 생이든, 그래도 안 되면, 그 다음 생이든… 될 때까지 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 더이상,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해하며 ‘지금’을 낭비하지 말자. 중요한 건, 얼마나 노력했느냐, 얼마나 재능이 있느냐 따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 그거 하나면 충분할지도.
시간은 결코 돌지 않는다. (지금 나에겐 ‘윤회’마저 직선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차이’ 없는 ‘반복’은 세상에 없다. 그러니 해보는 수밖에. 가보는 수밖에. 먼저 깨달은 누군가들의 지혜를 핸들 삼아, 지금 이 순간순간을 페달 삼아, 아슬아슬, 휘청휘청, 넘어지고, 자빠져도, ‘담담히’ 그리고 ‘기꺼이’ 가자. ‘영성’이라는’자전거 타기’가 어느 순간 ‘툭~’하고 트일 때까지…
혹독한 고행의 끝,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은 고타마의 머릿속은 생각보다 심플했을지 모른다. ‘다음엔…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