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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목요대중지성] 열반, 노쇠와 죽음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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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7-15 17:05 조회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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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노쇠와 죽음의 소멸

박 윤 정(감이당)

존자 깝빠는 붓다에게 묻는다.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있는 자들에게 섬, 즉 피난처에 대해서 말씀해달라고. 그러자 붓다는 이렇게 답하신다.

‘[세존] “깝빠여, 거센 흐름이 크나큰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바다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있는 자들에게 깝빠여, 나는 그대에게 섬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어떠한 것도 없고 집착 없는 것, 이것이 다름 아닌 피난처입니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나는 부릅니다. 그것이 노쇠와 죽음의 소멸인 것입 니다.’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1.학인 깝빠의 질문의 경>, 864쪽)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있는 자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요양원 면회실에서 느리게 손 을 흔들며 희미하게 웃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지금, 말 그대로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힘겹게 하루하루를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 엄마의 알츠하이머 진단이 내려졌을 때, 나와 여동생은 너무도 기가 막힌 이 말에 하늘이 무너졌다. 마음을 다잡고 엄마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병세의 악화를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요양원 입원을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완강히 버티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급기야 내가 팬데믹을 뚫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요양원에 입원하는 날, 유난히 총총한 정신으로 집안 이곳저곳을 만져보는 그 모습에 나와 여동생은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다 늙고 죽는 거야, 이것도 우리 삶의 일부야, 받아들여야 해’라고 스스로 말을 건넸지만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노쇠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부쩍 내 안에 깊이 파고들어 단단히 또아리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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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이번에는 내가 갑자기 쓰러져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생겼다.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때는 생사를 오가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조절이 되지 않는 극심한 통증 속에 급하게 수술실로 옮겨지는 동안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근데 내가 없으면 엄마는, 동생은, 남편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다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주렁주렁 주사 줄을 매단 채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삶과 죽음이 백지 한 장 차이라더니, 정말이네’. 죽음이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손님 같은 것이니 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는 지금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실까?, 그리고 나는?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노쇠와 죽음으로부터의 피난처, 열반

이런 상황 속에서 전혀 의도치 않게 초기 불교의 붓다의 말씀을 만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읽는 책마다 모든 말씀이 다 예사롭지 않았지만 유난히 늙음과 죽음에 관한 부분만 나오면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없었다. 요즘 고민 중인 내용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늙음과 죽음에 대해 거의 전복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음과 죽음, 언제나 싫고 무섭고 피할 수 없는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밀려드는 무력감이 너무나 무겁기만 한데, 붓다는 이러한 노쇠와 죽음에도 소멸이 있고 그것이 바로 ‘열반’이라고 하신다. ‘어떠한 것도 없이 집착 없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피난처’라고 하신다. 즉,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진정 無로 돌릴 수 있을 때 거센 흐름, 윤회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소멸하게 되는 진정한 열반으로 갈 수 있으며 그럴 때 바로 노쇠와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몇 번을 읽어봐도 어렵고 또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모든 집착을 다 버리고 나 자신조차도 버려야 노쇠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면, 나는 확실히 진정한 자유로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막막하고 힘겨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towfiqu-barbhuiya-oZuBNC-6E2s-unsplash이 막막하고 힘겨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열반으로 가는 길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말로는 ‘다 내려놓자’라고 하면서도 결국 엄마의 병과 나의 상황을 끝까지 인정하기 싫어서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다 끌어안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의 노쇠와 죽음에 대해서조차 철저히 내 욕심과 집착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엄마가 떠난 뒤에 남아있는 나와 여동생이 겪게 될 고통이 너무 아파서 더 열심히 붙들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의 엄청난 이기심과 집착하는 마음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픈 엄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나 자신이 었다.

나는 한결같이 내 뒤에 서 있는 든든한 엄마의 모습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늘 생동감 넘치고 활기찬 나의 모습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현실에 직면하자 어찌할 바를 몰라 무엇이라도 붙잡으려 허둥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이 잠시 스쳐가는 것일 뿐 영원히 내 것인 것은 어떠한 것도 없다면, 그래서 딱히 잃어버릴 것도 없다면, 결국 무엇인가에 집착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쩌면 엄마는 이 기막힌 이치를 이미 꿰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그렇게 신통한 말씀을 몇 마디씩 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출국 날짜를 확정 짓던 날, 웬일인지 정신이 맑아진 엄마가 물으셨다 “너는 별일 없지야? 그라믄 되았다” 그래, 엄마 말이 맞다. 몇 번이나 엄마의 상태에 따라 출국 날짜를 바꾸면서 부대끼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엄마는 이미 온 힘을 다해 한 평생을 살아 내셨으니, 나도 별일 없이 나의 몫을 해내야 한다. 내가 이미 지나간 것들과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은 바로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지 못해서가 아닐까. 순간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고 가다 보면 그 욕심과 집착이 진정 부질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붓다께서 말씀하신 열반이 누구에게는 갑자기 천둥번개처럼 큰 울림으로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를 어긋나지 않게 살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느 날, 더 이상 늙음과 죽음이 무섭지 않고 이를 평온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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