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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목요대중지성] 나의 음악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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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덕영 작성일22-12-23 14:31 조회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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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음악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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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뭐길래

  감이당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음악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음악, 특히 노래를 떼놓고는 내 삶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무슨 음악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음악을 하고 싶은 건지 그만하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보컬 선생님으로 레슨을 하고 밴드 활동을 하고 유람선에서 밤낮으로 연주를 하면서도 ‘내가 음악을 계속하는 게 맞나? 내가 이걸 좋아하긴 하나?’ 하는 의문들이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음악을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을 하며 얻었던 병증들을 생각해 본다. 불면증, 우울증, 조울증, 자해, 대인기피증, 알코올중독, 치아 문제, 식이장애, 공황, 청각과민, 돌발성 난청, 이명, 무기력 등등!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자해를 시작한 것도 중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서였으니 음악과 나의 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어쩌다 음악과 내가 이런 기구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음악과 병의 관계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이하 『몸자마우』)를 읽던 중 오장육부와 감정에 관한 구절을 만났다. ‘갑자기 기뻐하면 심이 흔들려 혈을 만들지 못한다. 갑자기 성내면 간이 상한다. 걱정과 근심은 폐와 연결된다. 생각이 많은 것은 비위와 연결된다. 두려움과 공포는 신장의 기운과 연결된다.’ 요즘 대중음악들을 살펴보면 보통 다 앞의 감정들을 다룬다. 노랫말들로 예를 들어 보자. ‘오늘은 기분이 좋아(기쁨), 날 떠난 너를 ㅇㅇ할거야(성냄), 나는 아픔 속에 살아가(걱정과 근심),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비위),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두려움, 공포)’.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가창력과 스킬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전공생으로 노래를 연습할 때 노련해지기 전까지는 한 가지 곡에 푹 빠져서 그 곡의 주인공이 되어 부르는 연습을 필수로 한다. 가수의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내 몸으로 빨아들이는 작업이다. 슬픈 발라드 곡을 연습하면 그 곡 연습이 끝나는 날까지 시련당한 사람처럼 살게 된다. 멀쩡히 연애를 잘하다가도 감정이 시련당한 무드에 빠져있으니 상대가 불만이 생긴다. 실제로 시련을 당한다. 노래를 완성한다(?). 쓰다 보니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는데 진짜로 그랬었다. 더군다나 공연을 하게 된다면 기승전결에 맞춰 여러 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 감정들을 짧은 시간 동안, 그야말로 ‘갑자기’ 모두 횡단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무대 위에서의 긴장감, 큰 음악 소리, 사람들의 환호까지 합쳐지면 오장육부는 긴 시간 동안 쓸 기력을 몇 시간 만에 다 소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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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병이 따르는 듯하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감정 조절이 잘 안되기 시작하고 몸이 아파졌던 것이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느껴진다. 매번 오장육부를 종횡무진 하며 들쑤셔놓는데 성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감정을 적절히 조율하는 작업이 아니라, 과도하게 몰입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는데 일상에서의 감정 조절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몸이 어느 순간부터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않고 싶어 했던 것은 타당한 일이었다. 살기위해서 멈출 수밖에!

 

게송을 만나다

  내가 도대체 음악을 한다고 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며 한탄하던 중 이 구절을 만났다. ‘자신의 소리와 교감하는 최고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낭송하는 것이다. 고전에 담긴 문장은 율려 자체가 신체적 감응력을 높여 준다. (중략) 소리 내어 읊게 되면 그 지혜가 율려를 타고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게 된다.’(『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09쪽). 책에 의하면 지혜를 읊으면 지혜가, 슬픔을 읊으면 슬픔이 내 몸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신체’란 동의보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꿈에서 똥까지 속해있다. 그러니 신체적 감응이란 오장육부와 외형뿐만이 아닌 형태가 없는 모든 것들까지도 함께 감응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소리 내어 읊느냐에 따라 내 신체의 환경과 그에 따른 마음장까지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역으로 내 몸과 마음 상태를 보면 지금까지 어떤 노래를 주로 해왔는지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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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송으로 부처님의 지혜에 접속하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는 『숫타니파타』 등의 불교경전들도 게송으로 노래에 속하지만, 내가 불러온 노래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몸자마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처님의 이 진리는 그 파동만으로 사람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중략) 이게 바로 진리의 파동에 담긴 자비의 에너지인 것입니다.’(『몸자마우』, 412쪽)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리는 부처님을 실제로 만나지 않고도 그 진리와 자비의 에너지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게송을 자주 낭송하면 몸이 차분해지고, 일상이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 게송은 부처님의 지혜가 모두 담긴 노래이다. 그러니 몸을 해치지 않는 음악이 무언지 알고 싶다면 그 답을 게송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건강하게 음악하기 (feat.자리이타)

  부처님과 파동으로써 만날 수 있듯이, 어릴 적 음악을 들을 때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나와 함께 있지 않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내가 음악을 참 좋아하게 된 이유였다. 그런데 이 얘기는 나의 음악에 접속하는 이도 그만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에 묘한 부담감 같은 것이 스물 스물 피어난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나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처님의 게송에 비춰 보자면, 결국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인 듯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죠? 자기도 좋고 세상에도 이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겠죠.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리이타(自利利他), 곧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윤리입니다.’(『몸자마우』, 333쪽)책에서는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사람인가? ‘네!’라고 힘차게 대답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왠지 공부를 더 이어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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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벗과 함께 가는 길

  2020년도에 달라이라마님이 앨범을 내셨다. 처음에는 음반제작을 거절하셨지만, “내 인생의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음악은 내가 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인터넷기사 발췌)며 나중에는 긍정의 마음을 비치셨다고 한다. 음악의 내용은 지혜, 치유, 용기 등의 주제를 다룬 진언과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음악도 들어보면 몸이 차분해진다. 결국, 건강하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음악이 우선시 되지 않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라이라마님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기’ 위하여 음악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으셨다. 부처님도 ‘다른 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깨달은 후에도 몇 십년동안 진리의 말을 설파하다 가셨다. 그러므로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만이 다른 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건강하고 복된 삶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음악 또한 그 길을 함께하는 좋은 벗으로 자리하기를 바라본다. 그러니 이제 몸과 마음을 열고 ‘자리이타’를 탐구하기 위하여 다음 여정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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