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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vs 연암] 연암의 자기 보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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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솔방울 작성일15-07-01 09:21 조회7,9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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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자기 보존 노력
 

                                     박영혜(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3학년 1학기 『연암집』을 함께 읽고 발제와 토론을 하며 그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나온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연암은 꼼꼼하다’와 그의 남다른 관찰력에 대한 감탄이었다. 연암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따라 하기는커녕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꼼꼼함의 지존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일명 ‘연암 체질론’이었다. 모든 것을 사진 찍어놓은 듯이 기억하는 그의 탁월한 기억력과 사물에 대한 정밀한 묘사는 읽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고 기가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 새로운 시각으로 기존의 관점을 뒤엎는 논리로 꽉 짜 맞춰 빈틈이 없는 냉철한 분석과 마음을 확 잡아 끌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능력까지.

연암은 분명 남달랐다. 『열하일기』에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기억력과 묘사력에 이미 압도당한 바 있지만 『연암집』의 짧은 편지글이나 제문도 그에 못지않게 강렬하고 치밀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한 학기 내내 연암의 체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암은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후천적으로 갈고닦는다 한들 분명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의 남다름을 넘어서기는 참으로 어려운 법인데 심지어 타고났으면서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경계하며 남다르게 벼린다면 그것은 속된 말로 ‘게임 끝’이다. 웬만해서는 이런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연암은 그런 사람으로,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궁금해졌다. 탁월한 관찰력과 기억력에 묘사력과 논리성까지, 문장을 쓰는데 ‘타고났다’고 여겨지는 그의 몸은 과연 어떠했는지가. 그의 흡인력 강한 문장의 뿌리와 그의 신체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가 말이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 중 하나가 ‘신체성’의 중요함이었다. 몸과 일상, 몸과 사유가 따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신체성이 관계성까지 규정한다. 몸의 문제는 일상을 유연하게 흘러가게 할 수도, 반대로 브레이크가 걸리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뿐만 아니라 사유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만약 몸이 아프면 그 아픈 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재구성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간단한 도구의 재배치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의식주 등 모든 것이 바뀐다. 사유 방식에 변화가 오고 관계 맺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 기존의 것을 고집한다면, 고수하려 해도 그럴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중삼중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연암보다 105년 앞서 살았던 스피노자 역시 정신과 신체에 대해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체” (『에티카』, 제2부, 정리 13, 113쪽, B. 스피노자 지음 ·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라며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정신과 신체는 각각의 독립된 실체라고 주장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맞서 스피노자는 이 같은 심신평행론을 주장하며 정신과 신체는 하나의 통일체의 두 가지 표현으로 정신의 대상은 존재하고 있는 신체이며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리 불가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정신 작용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글쓰기와 신체의 상관성. 이 글은 연암의 몸과 그의 글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로 이를 시발점으로 연암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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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아팠다

연암 하면 떠오르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대부분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문학론을 첫 번째로 지목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벗들과의 우정과 가난 정도일까. 그런데 강렬하고 치밀한 그의 글 뒤에 아픈 연암이 있었다. 하여 나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에 그가 앓았던 병(病)을 추가하고 싶다. 연암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심병’이 발병해 평생 그 병과 고락을 같이했다.

 
“지원이 젊었을 때 심병(心病)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온 세상 부인들이 첫아이를 낳으면서 너무도 지쳐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만일 잠결에라도 젖이 아이의 입을 눌러대면 어찌할 것인가 걱정이 되어 밤중에 일어나 방황하며 몸 둘 곳을 몰라 했었지요.” (『연암집』 상권, ‘삼종질(三從姪) 종악(宗岳)이 정승에 제수됨을 축하하고 이어 시노(寺奴) 문제를 논한 편지’, 157쪽, 박지원 지음, 신호열 · 김명호 옮김, 돌베개)
 

맨 처음 『연암집』을 읽었을 때 이 문장을 보고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아하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명명백백 연암 박지원은 남자다. 웃는 아이 어를 줄은 알아도 아이가 울면 어찌할 바를 몰라 이내 처(妻)를 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안고 있던 아이를 넘기는 것이 내가 보아온 남자들이다. 자식 얻는 것에 대한 부담과 기쁨은 알지언정 아이 기르는 것에 대해, 더더군다나 ‘잠결에라도 젖이 아이의 입을 눌러대면 어찌할 것인가’ 걱정하는 것은 보통 남자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연암은 아니었다. 그것도 세상 사는 이치에 통하고 자식 길러서 출가시켜 늘그막에 측은지심이 커져 그런 것도 아니고 혈기왕성한 젊었을 때 말이다. 심지어 그는 ‘걱정이 되어 밤중에 일어나 방황하며 몸 둘 곳을 몰라 했다’며 스스로 이러한 행동이 ‘심병’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건 심병의 병변으로 표현되는 근심으로 분명 병증이다. 물론 연암은 병증이라고는 해도 하늘이 무너진다든가 땅이 꺼진다든가 혹은 귀신이 보인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걱정이 지나치면 과대망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매사 이런 식이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 무심하게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마음이 쓰이고, 생각이 걸리기 시작한다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로 인해 본인은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디가 아프면 맨 처음에는 병명을 알고자 한다. 병명을 알아야 그에 따른 처방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약제든 침이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그래도 병에 차도가 없거나 혹은 심해지기라도 하면 정상적인 방법은 제쳐둔 채 다른 데로 눈을 돌린다. 심하면 굿을 한다거나 용한 데를 찾아 점을 본다든가 하는 사술에 빠져들기도 한다. 연암도 맨 처음에는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병명을 알고, 약제를 쓰고, 침을 맞고… 하지만 그의 말대로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가면서’ 그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계유·갑술년간, 내 나이 17,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彝器, 골동품)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더더욱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연암집』 하권, 「민옹전(閔翁傳)」, 166쪽,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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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암의 말대로 위의 방법은 실패했다. ‘집에 있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서화를 그리고 옛 칼이나 골동품에 취미를 붙여도, 손님을 ‘불러들여’ 허허 농담이나 옛이야기를 들어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고 병에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효과를 본 것이 있었으니 이 대목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바다. 남들과는 전혀 다른 연암다운 방법이었다. 바로 이야깃거리를 듣고 모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재로 글을 지은 것이다. 처음 연암은 이야깃거리를 채집하기 위해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윤생(尹生)과 신생(申生)에게 일반 백성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물었다고 한다.
 
“내 나이 열여덟 살 적에 몹시 병을 앓아서, 늘 밤이면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을 불러놓고 여염(閭閻)에서 일어난 얘깃거리 될 만한 일들을 묻곤 하였다.” (『연암집』 하권, 「광문자전(廣文者傳)」, 180~181쪽, 같은 책)



연암은 박씨 물고 온 제비처럼 윤생이나 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그중에서도 「민옹전」은 ‘마음을 가라앉히려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던’ 때 어떤 이로부터 민옹을 소개받으면서 시작된 민옹과의 인연에 대한 기록이자 본인의 지병인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한 일종의 치료기라고도 할 수 있다. 「민옹전」에는 그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민옹이 처음 연암을 만났을 때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연암은 그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그런데 민옹은 정화 스님이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불면증을 병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연암이 그 같은 병을 앓는 것을 ‘축하’하며 그의 병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정의한다.
 
“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으니 재산이 남아돌 게고,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서 사는 것이니 남보다 갑절 사는 턱이 아닌가.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갑절 살면 오복(五福) 중에 수(壽)와 부(富) 두 가지는 이미 갖춘 셈이지.” (『연암집』 하권, 「민옹전(閔翁傳)」, 167쪽,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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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전복이다. 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고통과 정면 대결해야 하지만 스스로 정면 대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비틀어 보거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는 것도 방법이다. 밥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는 심신미약 상태인 연암에게 만약 민옹이 밥과 잠 자체는 기본 중에 기본으로 생명 유지에 필수인 만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원론적인 말만 했다면 과연 그 조언이 조언으로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민옹은 이를 간파하고 연암에게 정면 너머 이면의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 스피노자식으로 말한다면 민옹은 연암에게 “역량의 감소와 약화를 나타내는 정서”에 휘둘려 힘을 빼기보다는 “어떻게 역량의 증대와 강화를 표현하는 정서로 전환할 것인가” (『에티카』, 채운샘 4월 18일 강의안), 진정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병을 바라보는 시각과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옹은 연암 스스로 자신의 타고난 생명력을 발현해 더 이상 연암이 병에 매몰되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민옹의 이 말을 들은 연암의 속마음은 어떠했을지. 아마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듯 가슴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음은 물론이다. 신체 역량과 정신 역량은 비례한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연암은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다. 이후 민옹도 죽고 연암의 나이 스물한 살 되던 가을에 그의 병도 다시 도졌지만 민옹을 만나기 전과 후,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연암의 시각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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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오로지 쓸지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암은 69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나아졌다 재발했다를 반복하며 불면증과 우울증을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한 듯하다. 이 병은 마치 연암과 함께 태어나 함께 졸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특히 그의 친한 벗 이사춘이 『명기집략』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참수당하는 변을 당하자 연암은 큰 충격을 받았다. 『명기집략』은 청나라 강희 때 남양지부를 지낸 주린이 편찬한 책으로 조선 태조의 세계(世系)를 왜곡, 모독한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이사춘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책장사로부터 그 책을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가 문제가 되어 급기야는 목숨을 잃는 일로 번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연암은 “사람들과 다시 교제하고 싶지 않아 경하(慶賀)건 조위(弔慰)건 모두 폐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록 실성하거나 멍청한 사람으로 지목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을” (『연암집』 중권, ‘이몽직(李夢直)에 대한 애사(哀辭)’, 251쪽, 같은 책) 정도로 실의에 빠져 세상을 등지고 칩거하기도 했다.

게다가 연암은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망양(亡陽, 식은땀을 많이 흘려 몸 안의 양기가 없어지면서 오한이 나고 손발이 차지며 심한 허탈 상태에 빠지는 병)으로 고생을 하거나, 산송(山訟) 문제로 화병을 앓기도 하고, 종국에는 중풍으로 인한 마비 증세가 오면서 붓과 벼루를 가까이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마는 완벽한 그의 글과는 다르게 그의 몸은 늘 그를 마음 편하게 놓아주지 않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연암의 병은 재발과 호전, 호전과 재발 그 사이를 오가며 그의 몸과 마음을 압박했던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오히려 그의 정신은 늘 예민하게 깨어 있었으며, 그것이 그의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양쪽 귀밑머리에 하마 대여섯 가닥의 흰머리”가 생기자 “시(詩)의 재료를 얻었다고 스스로 기뻐” (『연암집』 중권, ‘금학동 별장에 조졸하게 모인 기록’, 72쪽, 같은 책)하는 식으로 말이다. 신체 역량이 떨어질 때 연암은 글쓰기로 자신의 저하된 신체 역량을 끌어올리고 스스로 추슬러 다시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얻었다. 연암은 신체의 한계에 갇히지도 정신의 무력감에 매몰되지도 않고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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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어떠한 덕도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보다 먼저 생각될 수는 없다”며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사물의 본질 자체” (『에티카』, 제4부, 정리 22, 252쪽, 같은 책)라고 했다. 자신의 존재 속에 계속 머무르려는 노력이 없다면 사물은 존재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연암 역시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유한한 양태의 진정한 본질인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 (『에티카』, 제3부, 정리 6, 168쪽, 같은 책)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 할 때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면서 자기를 보존하기만 하면 되지만 알다시피 하늘 아래 어떤 것도 단독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관계 속에 얽히고설켜 있다. 때문에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코나투스에는 반드시 상호작용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연암 역시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그 상호작용의 결과로 글을 썼다.

연암이 쓴 제문이나 묘지명이 비록 고인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고인의 치적뿐만 아니라 성정까지 오롯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애달픈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네 살짜리 어린 자식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에서 그 자식을 밀쳐버리고 엉겁결에 목 놓아 한참 울었다는 스스로의 고백에서처럼 연암은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리고 감정 이입을 잘했으며 자신의 감정 또한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화나면 화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복받치면 복받치는 대로, 그대로 적나라하게 에두르지 않았다. 거칠 것도,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는 글쓰기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관계 속에서 상대의 정서를 액면 그대로 읽어 덧칠하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정서를, 본질을 왜곡하지 않았다. 그에게 글쓰기가 스피노자가 말한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코나투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연암과 글쓰기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듯 그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살라는 존재적 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 코나투스, 즉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존 능력을 높여가는 능동적 변용이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아팠다. 그리고 아픈 가운데 글을 썼다. 그 정점에서 탄생한 것이 기억력과 묘사력, 그리고 체력에서 가히 초인 수준을 보여준 『열하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비단 연행을 다녀온 그 기간뿐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연암이 얼마나 기를 쓰며 살았는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그것만은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몸이 아팠지만 그 아픈 것 덕분에 그의 글이 빛날 수 있었다고 하면 전제 자체가 모순일 수 있으나 그의 타고난 재능에 가려져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며 일상을,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려 했는지는 가늠해야 할 것 같다. 병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욕망의 회로를 바꾸는 기회로 삼은 것은 진정 연암의 코나투스였다고 생각된다. 욕망에 사로잡히지도 그 욕망을 내팽개쳐버리지도 않고 오히려 “욕망이 작용하는 방식, 정서가 전개되는 규칙을 이해하고 욕망을 능동적으로 발현” (『에티카』, 채운샘 4월 18일 강의안)함으로써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게 존재를 보존한 연암의 결단. 저마다 능력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능력만큼 변용하고, 그 능력만큼 코나투스를 실현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연암은 글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려 했고 그 글로써 자신의 코나투스를 완성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쓴 글처럼 그 자신의 삶도 명민하고 주도적으로 살았다. 새삼 병(病) 한가운데서 그 병과 함께 희로애락한 연암의 전 생애가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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