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기고] 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순덕(順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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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01 20:02 조회81회 댓글0건본문
[창이지 전유신]
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순덕(順德)
귀향살이 어려움 겪던 아버지
지속적인 노력으로 끝내 결실
아버지는 노후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다. 자식들이 자라면 고향으로 가겠다는 뜻도 오래 품어왔다. 그리고 60대 중반이 되어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루셨다. 낯선 곳이 아닌 고향이었기에 더없이 반가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가신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 농사를 도운 경험이 있어 자신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냉대였다. 고향이지만 아버지는 이미 도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귀촌인 일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만, 그 시간이 또 다른 성장이 되기를 바랐다.
주역에서는 이와 관련한 괘가 있다. 지풍승괘(䷭)의 승(升)은 시작과 확장을 얘기한다. 성장할 때가 된 것이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아버지에게는 농사도 중요했지만,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을 청소하고, 마을 회관에 일이 있을 때마다 나가서 손을 보탰다. 사람을 만나면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어르신 집에 가서 소소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지 살폈다. 그런 아버지의 노력은 꽤나 긴 시간 이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분들이 아버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밭에서 일을 하면 지나가다 작물 심는 방법이나 좋은 모종 구하는 곳을 슬쩍슬쩍 얘기하고 지나가시기도 했다. 어떨 때는 자기 밭에 나는 좋은 모종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농기구까지 빌려 주셨다. 시골로 내려간 지 2년쯤 되었을 무렵, 아버지는 마을 청년회장을 맡게 되었다.
일흔을 앞둔 나이에 맡은 자리였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의 밝은 목소리였다. 그 안에는 이제 자리를 잡았다는 안도와 기쁨이 담겨 있었다. 농사도 익숙해졌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확도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편안해졌다는 사실이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승괘의 대상전에서는 지중생목(地中生木)의 상황을 말한다. 땅속의 나무는 뿌리다. 뿌리를 잘 내리고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상황을 견뎌 나가야 큰 거목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상전에서는 이를 ‘순덕 적소이고대(順德 積小以高大)’라 말했다. 덕에 순응하며 작은 것을 쌓아 마침내 크게 이룬다는 뜻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뿌리를 잘 내리려면, 인내하며 주위의 모든 것과 순조롭게 호응하고 감응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과 처지를 잘 받아들이는 견딤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버지는 그 시간을 노력과 성실함으로 견뎌냈다. 그 시간들이 땅을 뚫고 나아가는 힘을 낼 수 있고,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 적응기는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과정 같았다. 그 삶의 모습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삶의 방향을 배울 수 있었다. 상승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덕을 쌓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자신만의 실력을 다져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거창한 성취보다 묵묵히 뿌리를 내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아버지는 큰 나무다.
/전유신 (인문고전공간 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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