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민낯을 마주한 것은 며칠 뒤였다. 위층에 사는 아기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남편과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묶음으로 안 판대? 기저귀 버려야 하니까 그냥 낱개로라도 사와” 그 순간 종량제 봉투 속에 담긴 쓰레기보다 못한 내 욕심을 보았다. 부끄러운 뒷모습조차 감출 길 없이 먼저 내려야 하는 아래층 사는 처지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저들의 몫을 내가 내 것으로 만들었구나. 내가 미리 끌어온 이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생필품의 결핍이 되었구나. 내가 뭔 짓을 한 것인가. 코로나 시기 감기약 품절사태를 겪으면서 사재기를 비판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앞에서는 나는 참으로 무력한 존재였다.
주역의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는 네 개의 양효가 중심에 과도하게 모여 있고 위와 아래를 받치는 음효가 약한 구조이다. 왕부지는 이 괘를 두고 기초와 마감이 부실한 상태에서 중심만 비대해진 형상은 결국 제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고 했다.(『주역내전 2』,학고방, 711쪽)
나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는 ‘인간다움’의 토대는 부실한 채 나만 잘살면 된다는 탐욕의 중심만 비대해져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 상태, 이것이 바로 내가 처한 대과(지나침)의 상태였다.
이 괘에서 구이(九二), 구오(九五)효가 중심을 잡고 있는 것처럼 나도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전쟁의 고통과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최소한 다른 사람의 몫까지 끌어와 내 것으로 만드는 탐욕은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이것은 나에게 분명한 ‘중심’이었다. 그러나 구삼(九三)과 구사(九四)에 해당하는 ‘이기적 욕망’이 과도하게 부풀어 올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많이 소유하려는 평소의 습관, 내 돈이 큰 수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이익만을 좇는 삶의 태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욕망만 비대해지고 인간으로서의 기초와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다. 이런 삶 위에서는 용마루가 휘어질 수밖에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