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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휘어진 용마루와 종량제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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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6-28 10:27 조회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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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용마루와 종량제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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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아 (토요 감이당 주역스쿨)

 

겨울이 끝나갈 무렵 들려 온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 소식은 먼 나라의 비극만은 아니었다. 강대국(미국)이 자기 나라의 이익과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부린 과도한 욕심은 세계 경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휘어진 용마루’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전쟁의 여파는 고환율과 고물가라는 파도가 되어 일상을 덮쳐왔다. 요동치는 주식시장의 숫자에 밤잠을 설치는 건 가족을 포함한 나도 다를 바 없었다. 전쟁 무기가 초등학교에 떨어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이 스러진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에 대한 애도나 안타까움보다 물가를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고통 받는 생명에게 마땅히 느껴야 할 최소한의 연민조차 실시간으로 변하는 주식 숫자와 기름값 걱정에 밀려나 있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인간다움’이라는 기초는 부실해진 채 ‘불안’이라는 무게가 중심에 과하게 쏠려버렸다. 내 안의 ‘심리적 용마루’가 서서히 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듯한 서늘한 자책감이 들면서 뭐가 문제지? 하는 질문이 일어났다.

중동 분쟁으로 인해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비닐원료인 폴리에틸렌 가격이 급등할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냉큼 종량제 봉투를 사기 위해 동네 마트와 편의점을 돌았다. 아직 구매제한을 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여유롭게 몇 묶음 살 수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나를 움직였다. 사재기를 한 순간, 이미 내 안의 욕망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택풍대과(澤風大過)의 형국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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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민낯을 마주한 것은 며칠 뒤였다. 위층에 사는 아기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남편과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묶음으로 안 판대? 기저귀 버려야 하니까 그냥 낱개로라도 사와” 그 순간 종량제 봉투 속에 담긴 쓰레기보다 못한 내 욕심을 보았다. 부끄러운 뒷모습조차 감출 길 없이 먼저 내려야 하는 아래층 사는 처지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저들의 몫을 내가 내 것으로 만들었구나. 내가 미리 끌어온 이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생필품의 결핍이 되었구나. 내가 뭔 짓을 한 것인가. 코로나 시기 감기약 품절사태를 겪으면서 사재기를 비판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앞에서는 나는 참으로 무력한 존재였다.

주역의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는 네 개의 양효가 중심에 과도하게 모여 있고 위와 아래를 받치는 음효가 약한 구조이다. 왕부지는 이 괘를 두고 기초와 마감이 부실한 상태에서 중심만 비대해진 형상은 결국 제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고 했다.(주역내전 2』,학고방, 711쪽)

나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는 ‘인간다움’의 토대는 부실한 채 나만 잘살면 된다는 탐욕의 중심만 비대해져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 상태, 이것이 바로 내가 처한 대과(지나침)의 상태였다.

이 괘에서 구이(九二), 구오(九五)효가 중심을 잡고 있는 것처럼 나도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전쟁의 고통과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최소한 다른 사람의 몫까지 끌어와 내 것으로 만드는 탐욕은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이것은 나에게 분명한 ‘중심’이었다. 그러나 구삼(九三)과 구사(九四)에 해당하는 ‘이기적 욕망’이 과도하게 부풀어 올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많이 소유하려는 평소의 습관, 내 돈이 큰 수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이익만을 좇는 삶의 태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욕망만 비대해지고 인간으로서의 기초와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다. 이런 삶 위에서는 용마루가 휘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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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소유하려는 평소의 습관, 내 돈이 큰 수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이익만을 좇는 삶의 태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욕망만 비대해지고 인간으로서의 기초와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다. 이런 삶 위에서는 용마루가 휘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대과 괘의 괘사는(棟撓 利有攸往 亨, 대과 동뇨 이유유왕 형) ‘용마루가 휘어짐이니, 나아가야 이롭고 형통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有攸往(유유왕), ‘나아감’을 이미 과도하게 모인 것을 다른 자리로 옮기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본다. 중심에 몰린 것을 위태로운 자리로 흘려보내는 것, 강대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더라도 나부터라도 나만을 향했던 발걸음을 멈추는 것, 그것이 휘어진 용마루를 다시 받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몫을 남겨두는 일, 그리고 내 안의 과잉을 덜어내어 나누는 일은 내가 옳다고 믿는 ‘인간다움’이고 나아가야 할 ‘인간의 길’ 이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탐욕의 무게에 용마루가 다시 휘어지지 않도록, 옳다고 믿는 내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는 것. 이것이 내가 대과의 때를 살아가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인 걸 알겠다. 종량제 봉투 한 장을 아껴 쓰는 검소함 속에 전쟁터의 아이들을 향한 기도를 담아본다.

몇 년 전 요맘때, 위층에 사는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시골에서 쑥떡을 해 와서 우리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다. 아기들이 뛰는 소음을 양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엊그제 나도 쑥 색깔이 짙은 절편을 두 팩 샀다. 종량제 한 묶음 위에 절편을 올려놓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배꼽 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 위로 뉴스 속 먼지 더미에서 스러져간 아이들의 잔상이 겹쳐졌다. 내가 지키려 했던 비닐봉지 몇 묶음이 그 아이들의 생명보다 무거웠을리 없다는 자책이 울컥 올라왔다. “귀한 것을 나눠 주셔서 감사하다”며 봉투 값을 주겠다고 했지만 대신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내려왔다. 받아준 것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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