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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도 흘렀는데 100일을 참지 못하고 어찌 인생을 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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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극락거사 작성일26-06-27 14:53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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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동물 같은 인간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답시고 교육자 행사를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선무당처럼 보일 뿐이다. 아니 난전에서 진흙탕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인간들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인가? 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교육의 위압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애꿎은 학부모와 아이들만 고생이다. 요즘 학부모와 학생들만 문제시하는데, 일부의 예외적인 존재들을 일반화하거나 극단화하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교사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20대의 반면교사는 60대에도 반면교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반면교사가 반면교장이 되는 경우이다. 자기 성찰과 자기 성장의 가능성이 가장 낮은 집단 중에 하나가 교사 집단이다. 똥은 썩기라도 하는데, 방사능 폐기물일까?

물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만 탓할 일인지 돌아봐야 한다. 훌륭한 교사들이 얼마나 될까? 학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꿈도 꾸지 않더라도 세월이 이 정도 흘렀으면 학교도 변해야 하는데, 체벌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려는 학교도 없지 않다. 학교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부당하게 교권을 침해하는 학부모들은 제재를 가해야 하지만, 그나마 학부모들이 문제 제기를 해서 이나마 바뀐 것이고, 학교와 교사의 부당한 권위는 앞으로도 계속 무너져야 한다. 학부모나 외부의 부당한 개입은 교육을 붕괴시키지만 민주적 개입은 교육을 굳건히 일으켜 세운다.

교권의 붕괴를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겁한 태도다. 교사를 다음의 집단과 동급의 대상으로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기자가 기레기가 되고 검사가 검새가 된 이유를 교육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니 오히려 부당한 권위가 붕괴되는 현상은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주변에 존경할 만한 교사들이 그렇게 많던가? 그리고 인공 지능 시대에 입시 교육으로 무슨 사람을 키우겠다는 것인가? 이런 식의 교육이라면 인공 지능이 교사인 것이지 과거처럼 권위만 앞세워 학부모와 학생 위에 올라서려는 시대착오적인 교사들을 무슨 의미로 존중해야 하나? 여전히 자기 감정대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하고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교사의 수준이 그 나라 교육의 수준이다. 이들도 역시 일부였으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헛된 이상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 깊은 바닥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통찰력의 깊이도 다르다. 경험의 폭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맺은 인간관계에서 즐거운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다. 끝물인 지금 직장에서는 심지어 불행한 경험을 하고 있다. 물론 더 심한 곳에 비하면 양호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직장은 우정을 맺는 곳이 아니기에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오히려 값진 경험인지 모른다. 돈 받고 인간 공부를 했으니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에 대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외에 특별히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없지만 오히려 원치 않는 인간관계 속에서 적지 않은 모욕을 감내하며 다른 인간들과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니 값진 경험이라면 값진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면 내 업보가 크긴 크다고 볼 수밖에...

집 근처에 박물관이 있는데, 야외 화단에 지역에서 발굴한 고려 시대 불상이 놓여 있다. 목이 잘려 나간 불상에 화강암인지 목을 새로 조각해서 붙여 놓았는데, 목은 20년 정도 됐지만 몸은 1000년도 넘었다. 3개월 후면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할 예정인데, 이제 100일 정도 지나면 사실상 퇴사 준비를 해야 한다. 원하는 바로만 된다면 난 이제 영원히 백수로 살 수도 있다. 10년만 일찍 이런 기회가 왔다면 좀 더 자신 있게 어떤 특별한 인생들을 꿈꿀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이제 자신감으로 살 시간은 아니다. 새로 나아갈 세계가 있다면 새롭게 시작해 볼 생각이지만, 짐을 싸야 할 것들은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인생의 시간이다. 받아들여야 할 인생이고, 이만한 것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000년을 산 불상도 있는데, 고작 100일을 못 참으면 한심한 인간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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