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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교재인 짜라투스트라 읽는데에 도움이 되실 수도...안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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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reshair 작성일14-02-09 23:29 조회4,86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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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만에 맞이한 방학(?)에 정신줄 놓고 있다가, 우쒸 벌써 개학이야 하는 와중에 우연히 읽은,
공부에 대한 의욕 게이지를 올려주는(최소한 저한테는), 혹시 곰샘의 친동생이 아닐까 의심되는,
우리 도반님들도 읽으시면 좋겠다 싶은... 신문 기사 2개입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고병권 선생님 인터뷰 (경향 신문, 2014-02-07)
 
내 삶·행동과 일치하는 말이 사회를 중요하게 변화시켜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뉴파워라이터에 선정되고 나서 어느 학자로부터고 선생이 왜 뉴파워라이터냐는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간 지식운동, 사회운동을 활발히 했고 출간한 책도 많으며 인문학계에 존재감도 큰데(new)’라는 수식어로 묶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고 연구원은 연구·생활 공동체 수유너머로 치면 16, 서울사회과학연구소(서사연)까지 거슬러 포함하면 20년을 공부하고 강의한 제도권 밖 지식인의 대명사 같은 존재다. 2001년 첫 단독저서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소명출판)을 시작으로 최근 <“살아가겠다”>(삶창)까지 9권의 책을 냈다. 이달 중 니체에 관한 새 책이 나온다. ‘라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다. 고 연구원을 뉴파워라이터에 추천한 이들은 40대 초반이라는 생물학적 젊음, 철학과 당대 사건을 아우르는 글쓰기와 함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추방된 여러 현장에서 새로운 실천적·급진적 철학을 이끌어내는 사유 방식에서 여전히 신선함을 느낀 듯하다.

고 연구원의 휴대전화는 오래 꺼져 있었다. 지난해 8월 취재차인문학 열풍에 관한 의견을 구했을 때 그는인문학과 지식인을 걱정하는 건 한가해 보인다. 한참 낙담하고 있을, 밀양송전탑에서 농성하는 노인분들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컨텍스트에서 벗어난 텍스트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휴대전화는 인터뷰 섭외 때도 먹통이었지만 e메일은 열려 있었다. 지난 설 연휴 직전 서울 용산 해방촌 수유너머R연구실에서 만난 고 연구원에게뉴파워라이터선정에 이의가 있었다는 말을 꺼냈더니, 그는파워가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닌가요라며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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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살아가겠다”>는 어떤 책인가. 제목에 따옴표를 달았는데.

책에 적은 건 강연이나 인터뷰, 현장 방문 때 들은 말이다. 그래서 따옴표를 쳤다. ‘해고는 살인이다처럼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 갈등 현장 복판에는내지생명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에살려달라고 했는데, 이번 제목은네가 어떻게 하든 나는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이계삼 선생이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별 수 없이 여기 있을 수밖에 없고 단호하게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 혁명은 빠른 걸음, 지름길에 있는 게 아니라 단호한 것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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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대추리 같은 현장에서 사유를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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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현장이며 밀양은 삶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공간이 형성된 곳이다. 사람들이 멀리까지 사유를 밀고 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논밭 보상이 불충분하다는 님비가이 송전탑이 다른 데로 가면 괜찮은가, 핵발전소는 필요한가라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유로 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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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책은 어떤 내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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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는언더그라운드 니체. 그라운드라는 게 토대, 근거인데근거들의 근거 없음의 영역이 있다. 금권정치든, 귀족정이든 각각의 근거나 원리가 있다. 민주주의는 그런 근거의 근거 없음을 드러낼 때 시작된다. 한 예로 리영희 선생은 독재정권의 근거 아래로 뚫고 내려가 근거 없음을 폭로했다. 언더그라운드 개념을 정치체에 적용하면 민주주의를 사유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준 게 니체의 <서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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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가난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비싸게 여기는 것들은 철학자한테 애당초 필요 없는 것들이다. 철학자들은 검소하고 가난하게 보이지만 풍족하게 산다. 삶의 가치를 뒤바뀌어야 한다. 가난은 오래 전부터 고민한 주제다. 개인 경험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세 들어 살 때 열 살 어린 집주인이 어머니한테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남자의 힘, 어머니의 침묵과 무력함이 어디서 왔을까. 그 사람이 천박해 보였고 그 사람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가난은 찢어진 팔꿈치가 아니라 그게 신경 쓰이는 것이다. 재화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갖는 감정이다. 빈곤은 재화의 결핍이고 가난은 고생이라는 뜻이 있다. 빈곤사회학은빈곤을 탈출의 대상으로 여기는데 그러면 사유하지 않게 된다. 가난학을 공부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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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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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부는 자기한테 부딪치거나 맺혀 있거나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요즘은배움 이전의 배움을 많이 생각한다. 어떤 각성의 순간이 있다. 장애인 학교에서 검정고시를 배우던 어느 장애인 여성이 난생 처음 MT라는 걸 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런 각성을 한다. 각성의 순간이 변혁적 사회과학 지식을 배울 때가 아니라 별을 보면서 일어난 거다.(웃음) 사람들이, 사회가집에 처박혀 있으라고 했는데, 그걸 뒤집는 체험을 한 거다. 그러면 이전에 배운 지식과 정보가 새롭게 읽힌다. 수십 년 집에 갇혀 살던 이 여성은 이후 독립해 이동권 투쟁에 열심히 나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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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게 어떤 의미인가. 형식은 신경 쓰나
.

제 삶의 형태가 읽고 쓰고 말하기 밖에 없다. 생계의 의미도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린비)를 쓸 때, 처음에는 논문 형태로 쓰다가 화가 났다. 민주주의를 스타일로도 보여주고 싶었다. 결론 다음에 결론에 반대함이라고도 쓰고 민주주의 창작 동화, 아포리즘도 넣었다. 세상에 없는 책도 인용했다.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데 신경 쓴다. 다만 급진적 형식은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동화를 하나 쓰고 있다. 아들한테 도움 받아서 한 초등학교에서 마음을 주제로 강연한 걸 글로 옮긴 거다. 많은 걸 느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동화작가다. 최고의 경지다. 아이들은 속아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웃음)”
-마무리 말을 한다면.

내가 말 많다는 걸 잘 안다.(웃음) 말을 줄여야 한다. 요즘 말과 삶이 멀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진실한 말이란 걸 좋아하게 됐다. 사실과 일치하는 말이 아니다. 나한테 중요한 건 자기자신과 일치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에 일부 사실이 틀렸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그 대자보가 진심을 담은 말을 한 거다. 자신의 삶과 행동과 일치하는 말이 사회를 중요하게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위 기사를 읽고 나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찾아 본 기사입니다. 며칠 간격이라 생각났나 봅니다. 
 
수많은 저항의 현장에서 철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한겨레 신문, 2014-02-03)
 
어느 날 플라톤이 길거리에서 식사를 위해 직접 샐러드(채소)를 씻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보았다. 디오게네스가 시칠리아의 왕(디오니시우스)에게 어떤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한 일이 있은 뒤였다. 또한 플라톤이 시칠리아 왕을 세 차례나 만나며 시도했던 철학 하는 왕 프로젝트가 무위로 돌아간 맥락에서 디오게네스 학파 쪽에서 빚어낸 것으로 짐작되는 일화다.
플라톤이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왕에게 조금만 더 공손했더라면 너는 샐러드를 직접 씻을 필요가 없었을 거다.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샐러드를 직접 씻는 법을 배운다면 너는 왕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철학자 고병권의 <“살아가겠다”>(삶창 펴냄)는 지금 여기, 삶과 앎의 용기에 관한 책이다. “희망을 내일에 거느니 오늘에 걸고, 희망을 거기에 거느니 여기에 걸겠다”고 그는 쓴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아르(R)의 일원으로서, 장애인들의 공동체 겸 학교 노들야학의 철학교사로 2007년부터 일해왔으며, 노동조합과 한국 곳곳의 시민단체(인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나아가 교도소 재소자에게 철학을 읽어온 그가 책 첫머리에서 고대 그리스의 두 철학자를 언급하는 까닭을 알아내기에 앞서, 그가 체험했던, 자크 랑시에르가 “프롤레타리아의 시간”이라 했던 밤, 노들야학의 밤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 학기 동안 허공에다 혼자 소리를 질러야 할까. 막막했다.’ 고병권은 2010년 봄, 노들야학 중등 과정인 ‘불수레 반’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 <자라투스트라>를 읽던 첫 시간을 이렇게 체험했다. 그 강의를 듣는 10명 남짓 학생은 더러 20대와 30, 절반가량은 40대 중후반. 두셋을 빼고는 말하는 데 어려움이 큰 중증장애인들이었다. 이들은 그의 말을 “성의껏 들어주었”지만, “강의실엔 내 목소리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세번째 시간, “마침내 하나의 불꽃이 일었”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를 읽는 순간이었다. 자라투스트라가 “우리 안에 맹수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할 때였다. “갑자기 학생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젓고 휠체어를 들썩였다. (B)는 급작스레 근육 강직이 일었고, (C)는 자기를 손으로 가리켰으며, (D)는 ‘내가 그렇다’고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 책을 여러 번 읽었고 여기저기서 강의도 많이 했지만, 그 대목,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삼켜버리는 충동·욕망을 맹수에 비유하는 대목을 예전에 그는 정신 중심의 서양철학 전통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대목을 중증장애인들, 누구보다 신체 때문에 차별적 시선을 겪었고 스스로 자기 신체를 ‘경멸’했던 이들 앞에서 읽는 순간, 책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낳고 있었다. “그 순간, … 내 눈엔 학생들 모두가 정글에서 살아온 맹수같이 보였다.
그 순간을 고병권은 ‘책을 읽어주던 남자’란 제목의 글로 기록하고 있거니와, 그 순간은 고병권이 책의 다른 글 ‘밤에 열린 어느 장애인 학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혁명 이전의 혁명’의 순간, 존재의 각성이 불꽃처럼 튀는 순간에 해당할 것이다. “배움 이전의 배움, 운동 이전의 운동이 있는 곳에선 교과서를 읽는 것만으로 변혁의 몸짓이 시작된다.
권력자를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려 했던 플라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속에서 노년의 플라톤은 앎을 이렇게 비유했다. 오랜 사귐과 공동생활을 통해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서 생겨나 스스로를 길러낼 것”이라고.
이 책은 한국 사회 곳곳 ‘불꽃’이 튀는 현장에서 지은이가 행한 강연과 그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 얘기를 모은 글이지만, 한 철학자가 그 ‘길거리’에서 철학 함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치열하게 물으면서, 나아가 책을 읽을 많은 독자에게 앎이란, 삶이란 무엇인지 집요하게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철학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용기라고 말한다. 플라톤과 디오게네스는 공히 철학이란 삶으로 입증되는 것이라 보았다. 철학은 “살아가는 기술”이며, “앎의 대상이라기보다 행함의 지혜, 결국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이며 철학자는 “자기 삶으로 철학을 입증하는 사람이다”.
디오게네스는 “채소를 직접 씻는 법을 배우라”며 왕 권력에 기대어 사회를 바꾸려던 플라톤을 조롱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견유(=키니코스, 개 같은 선비)주의’의 스승이라 불리는 디오게네스는 “만물은 만물 안에 있다”고 했다. 고병권은 그것에서 ‘평등’과 ‘연대’의 원리를 끄집어낸다. 만물은 각자 만물을 품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평등하다. 인간끼리는 물론 그 이외 존재들도 법 없이도, 법 이전에 평등하다. 또한 만물이 만물 안에 있다는 것은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철학의 연대는 이해관계, 사회계약에 우선한다. 그것은 우리 존재 자체가 타인들로, 연대로 이뤄졌다는 깨달음이다. 이는 전태일이 말했던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와 상통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병권은 디오게네스가 채소를 씻던 ‘철학의 장소’에 주목한다. 그 장소는 ‘길’이었다. 길은 ‘공적인 장소’이니 철학은 “공공연함, 기꺼이 발가벗음”이다. 그 길에서 디오게네스는 두려움 없는 개처럼 “(권력자의) 탐욕에 대한 정찰병”이 되어 권력자들을 고발하고 짖고 물어뜯었다.
디오게네스의 ‘공적인 것’의 의미는 여러 세기를 가로질러 이마누엘 칸트의 계몽 정신에서 재발견할 수 있다. 칸트는 계몽을 지성(지식)이 아닌 용기에서 찾았다. 지적으로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성의 사적인 사용)이 아니라, 이성의 공적인 사용으로 보았다. 곧 “학자처럼, 저자처럼” 익명의 사람들에게 자기 의견을 공공연히 드러내 문제를 공적으로 제기하는 용기다. 그것은 “‘감히 알려고 하라!’이다”.
플라톤이 대중(인민)을 양떼로 생각했다면, 디오게네스에게 대중은 사자였다. “목자가 양을 키우는 건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지만, 사자에게 누군가 먹이를 갖다주는 건 사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고병권은 여기서 “철학의 목표와 정치의 목표”가 하나로 겹쳐진다고 말한다. 플라톤 식의 전제주의적 진리에 반대하는 철학적 사명과, 전제주의적 권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사명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기 삶을 잘 가꾸고, 그 속에서 또한 타인에 대한 돌봄을 깨닫는 것, 다시 말해 삶의 연대, 이를 위한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 한다는 것”의 의미라고 그는 말한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고전에 대한 해설서는
기본적으로 해롭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제 생각엔 한번 읽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댓글목록

소민님의 댓글

소민 작성일

앗, 지금 발견! 감사합니다ㅎㅎㅎ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넵, 참고서를 한번 읽어보겠슴다^^

無心이님의 댓글

無心이 작성일

읽어보겠습니다.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