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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학기 3주차 수업(이옥의 글쓰기) 후기(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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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 작성일14-03-06 01:31 조회3,597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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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채운 지음, 북드라망)
 
미세한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로 시작된 곰샘의 강의. 무한하고도 무한한 미세한 것들, 미세먼지들...사물들의 세계. 이것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는가. 직접적으로 작동하는가. 무와 유의 세계, 무형의 세계와 유형의 세계에서. 비어있는 무의 세계가 유의 세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우리는 그걸 다 알 수가 없다. 능력 밖이다. 다만 사물들 안에도 , 영적인 무엇이 있어 시공과 에너지파와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우리에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그것들은 그들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전해준다.
 
이옥의 글도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뒤늦게. 일종의 미세먼지처럼. 미세한 것의 자기동력으로 여기까지 흘러 우리에게 온 것이다.
 
이옥의 불운이 이옥을 이옥이게 했다 : 18세기 성리학적 지반이 흔들리고 있을 때 정조는 불안했다. 그는 호학군주. 문체의 느낌을 아는왕이었다. 때마침 천주교 문제의 예공도 막는 효과가 있는 문체반정. 패사소품체, 여기에 이옥이 딱 걸려들었다. 그는 빽도 뭣도 없는, 이미 오래전 광해군의 등장과 더불어 사라진, 분류자체가 의미가 없는, 소북파라는, 중앙정계에 아예 뭐가 없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다. 아무런 정치적 부담 없이 죄를 물을 수 있었다.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그러나 이옥의 글은 계속되었다. 주구장창 썼다. 핑계 김에 더 지독하게 썼다. 더 자기의 스타일로. 그가 과거에 붙어 나갔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천지만물이 나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한다 : 이옥의 글은 전혀 사대부답지 않다. 조선시대 이런 저자가 있다는 게 놀랍고 희한하다. 미세한 거, 자잘구레한 거, 남녀 간의 절절한 이야기,...“왜 넌 이런 이언같은 걸 자꾸 짓는거냐. 나로 하여금 짓게 하는 자가 짓는거다....천지만물이 그것이다.” 당대의 어떤 문장이나 철학에 꿀리지 않는 파격적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천지만물이 그의 몸을 빌어 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옥의 신체는 열려있다. 천지만물과 생생하게 교감한다. 글에 취하고 글로 토한다. 이 사람의 생리작용이다.
 
천지만물의 차이와 다양함이 글을 짓게 한다 : 만물은 하나도 동일한 게 없고 동일한 순간이 없다. 이걸 드러내는 거, 이옥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그는 만물의 차이와 낱낱의 개별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사물 하나하나의 묘사를 그렇게 지독하게 하고 있는 것.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의 글쓰기는 변화무쌍한 유동성 안에 들어가는 거다.
 
중요한 건 정감의 진실성, 생동하는 현장이다 : 이걸 중시한 건 연암그룹도 마찬가지다.
애초 성리학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제거한다가 기본 구도다. 이때 인욕은 탐,,치다. 이건 진실한 게 아니고 극복해야하는 거. 대개 인생을 헤매게 하고 미혹되게 하는 거다. 이 지당한 말씀이 몇백년을 지나다보니 교리가 돼버렸다. , , 치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정감적 활동을 억압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절이나 절개, 효 같은 덕목들이 감정의 진정성은 잃어버리고 지켜야한다는 명령만 남은 거. 성리학 자체가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작동하는 방식이 틀렸던 것이다. , , 치를 극복해서 내가 더 자유인이 되는 것이 모든 학문과 수행의 목표인데, 거꾸로 그건 없어지고 억압과 규율만 남아 버렸다. 이것과 맞서기 위해 현장의 생생함을 드러내고 살아있는 감정의 진실함을 중시하는 것, 이것이 18세기와 연동되어 있는 흐름이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한 사람은 정말 드물다. 거의 이옥이 유일하다.
 
곰샘은 이렇게 마무리 하신다. 아주 파격적인 철학과 글쓰기로 자기 삶은, 이옥 자신은 인생에 어떤 결핍 같은 건 없었을 것이라고. 자기 글쓰기가 있었기에. 우리가 보면 이런 걸 왜 몰랐을까 주목을 왜 안 받을까 안타깝지만, 이옥에게 글쓰기는 어떤 댓가나 보상이 필요없는 살아있음의 증거였다고.

이옥을 읽으며, 강의를 들으며 자꾸 연암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연암이란 존재가 너무 빛나서였을까. 그 빛에 가려져 이옥을 이옥으로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이옥에게 미안했다.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으로 삶의 출구를 찾아간 이옥. 그냥 그것뿐이었다고. 오로지 쓰는 것, 멈추지 않고 쓰는 것, 그냥 쓰는 것, 그것 밖에 없었다고 이옥이 말한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고.  
댓글목록

unOc님의 댓글

unOc 작성일

살포시 "좋아요"를 누르고 싶습니다.
저의 필기는 흩어진 조각 같아서 다시 읽기 싫은데 혜안쌤의 후기는 한편의 에세이 같아 읽기 좋아요.

첫마음님의 댓글

첫마음 작성일

샘 모습처럼 단정하게 정리 잘 하셨네요. 탐진치를 극복해서 자유인이 된다~~~  이런 날이 올까요?  하여간 같이 가보아야 겠지요^^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도영님의 댓글

도영 작성일

'글쓰기가 댓가나 보상이 필요없는 살아있음의 증거' 저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능!! ^^ 친절한 후기 잘 봤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