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6주 글쓰기 수업 (서유기) 후기입니다.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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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6주 글쓰기 수업 (서유기)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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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얼음마녀 작성일14-06-09 11:52 조회3,10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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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서유기를 읽고 수업을 받았습니다. 

조별 암송 후 저도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이야기로 수업이 시작되었구요.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면 왜 안되는 건지, 왜 계속해서 공부하고 수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해주셨어요. ㅎ~



질문> 10권에서 예물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부처님이 혼내지 않은 이유가 뭘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거지.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빚이고 살아가면서 더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막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버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금으로 만든 바리까지 모두 다 버리도록 했다고 볼 수 있다. 뇌음사 가기 전에 몸을 벗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최소한의 탐진치까지 벗어나야 부처가 된다. 삼장법사는 열 세상을 거치면서 원양을 보존한 훌륭한 인물이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도 81난을 겪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은 81난의 제곱은 겪어야 할지 몰라.

요괴와 보살의 세계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우마와의 아들 홍해아는 선재동자가 되었다. 이를 두고 우마왕, 나찰녀는 손오공을 원망한다. 가족주의가 드러난다.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 욕망을 채워주어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절에 다니면서도 자식이 출가하겠다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부모 마음이 바로 이런 거다.

손오공은 도교의 세계에서 수련을 많이 한 존재다. 하늘의 온갖 신들도 대적할 수 없다. 그래서 무자성, 무아의 존재인 석가여래만이 손오공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수련을 해서 엄청난 능력을 이뤘는데 그 능력 안에서 스스로 멈춰선 존재가 바로 요괴다.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춰선 존재가 추구하는 것이 권력과 재물을 쌓는 것이다. 동네 조폭 수준이던 손오공도 수렴동을 발견한 뒤에 왕이 되어 군사훈련을 시키고 더 나아가 저승과 하늘나라까지 발칵 뒤집어 놓는다. 손오공은 진심의 상태를 보여주는데 진심은 분노이고 지배욕, 권력욕으로 드러난다.

사오정은 능력도 제일 모자라고 존재감이 미미하다. 전체적으로 모호한 상태, 자신의 상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치심인데, 사오정이 그 상태를 보여준다.

저팔계는 식욕과 성욕으로 드러나는 탐심, 욕망을 너무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단순히 많이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식욕에서 성욕이 나오는데 성욕에 걸리면 헤어나지를 못한다. 식상(번식력)을 누르는 힘이 인성이다. 재성이 발동하면 인성을 극하기 때문에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없다. 길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관음보살이 여러 보살들과 시험하는 과정에서 저팔계의 행동이 전형적인 성욕항진상태를 보여준다. 눈을 가린채 밤새도록 세 딸들을 쫒아다니는데, 성욕에 휘둘리는 사람의 맹목을 보여준다. 그런 끝에 속옷차림으로 매달려서 지독한 망신살을 당하는 것이다. 여행 초반에 된통 혼난 후 저팔계는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 쏠리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유혹하는 요괴들도 하나같이 저팔계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여성도 매혹시킬 수 없는 신체가 저팔계의 축복이다.

무엇이 요괴인가? 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요괴가 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요괴들은 크게 두 종류다. 음의 태과(여성요괴), 양의 태과(남성요괴). 음 태과인 여성요괴는 대단한 능력과 미모를 갖고 있지만 남성에게 의존하는 하위주체다. 독립적이고 건강한 여성성을 갖는 관음보살과 대비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호의는 ‘끝없이 유혹해서 번식하겠다’는 욕망의 발로인 것이다. 양 태과인 남성요괴들은 엄청난 군사력과 파괴력을 갖고 있는데, ‘제국을 무한히 증식하겠다’는 욕망이 그들을 추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뇌음사로 가는 마지막 장애가 의미심장하다. 만명의 스님에게 공양하겠다고 서원한 부자가 더 있으라고 붙잡는다. 이게 요괴보다 더 무섭다. 호의라고 하지만 자기집착이다. 공양을 통해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고 호의 안에 이미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왜 삼장법사와 함께 뇌음사로 갈 생각을 못할까? 자기가 깨달음의 길로 갈 생각이 없고 있는 자리에서 복을 받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요괴가 아닌데도 지독한 고난을 겪게 한다.

부처님이 있는 뇌음사는 있으면서도 없는 곳이다. 부처님이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마음이 가 닿아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매번 자기 마음을 닦는 수행의 과정이 필요하다. 도력이 높은 삼장법사와 그 아해들은 요괴가 없으면 부처님을 못 만난다. 마음의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게 하려고 요괴들이 만나지는 거다. 갈수록 요괴들은 막강해져 손오공 혼자서 감당이 안된다. 이 과정에서 탐진치로 향하는 몸의 힘을 빼는 것이다. 손오공 같은 존재는 힘을 빼서 정신을 빼놔야 살생을 안한다. 잡념이 빠지면서 단순해지는 것이 집중력이다. 몸을 내버려두면 탐진치가 자란다. 그래서 몸을 쓰는 것이 공부다.

마음하고 세상이 같이 간다. 주객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일체유심조라는 것이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서 마음만 다르게 먹었다고 주장하는 미친 증세가 아니다. 세월호 사태만 봐도 그렇다. 해경도 언딘도 청해진 해운도 ‘사람을 구한다’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사고가 났을 때 해운사는 보험금 때문에 과적 기록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경과 언딘은 침몰선을 인양하러 갔다. 그들 마음에는 이미 구할 수 없다고 결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바로 옆에서 구해달라는 사람들이 안 보인 것이다. 이게 마음이 세상을 만드는 거다. 소시오패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시공간을 보고 있지 않는 거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마음의 위도와 경도만큼 세상을 보고 있다. 내가 만드는 세상을 내가 살아가는 셈이다. 이것이 양경쌍조. 서로 비추어 내며 내가 세상을 만들고 세상이 나를 만드는 원리다.

결국 이것이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살아갈 세상을 내 힘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수행이다. 안 그러면 탐진치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태우며 살게 될 뿐이다. 요괴가 가지는 정착민적인 욕망은 공부하지 않는 모습과 겹쳐진다. 길 위에서 구도하는 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서유기 안에는 다양한 선분들이 내재되어 있다. 의미심장한 대사들과 유머러스한 표현들이 구도가 얼마나 유쾌하면서도 존재를 고양시켜주는 지를 알려주는 걸작이다. 그러니 서유기 안에 있는 다양한 보물들을 각자 잘 찾아보도록!    

댓글목록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요괴와 보살의  한 끗차가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알았슴다. 마녀와 요괴는 뭐가 다를까요?ㅋ

얼음마녀님의 댓글

얼음마녀 댓글의 댓글 작성일

마녀는 무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속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쓴 <마녀>를 보시면 이해하시기 쉬우실 꺼예요. (강학원 공플 서가에 꽂혀 있던 걸 본 기억이 나요.ㅎ~) 마녀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요괴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아마도 마녀는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생각해 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