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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2주차 장자_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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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이에 작성일14-07-31 06:24 조회2,90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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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 달며 살기

강의 첫머리에서 지난 시간에 이어 장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실 때 길샘은 장자가 토를 달면서 그저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장자는 관계 속에서 본성을 발휘하면서 남의 본성을 인정하는 삶이 가능할까를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길을 잃은 세상에서 세상 속에서 살 되 존재들에게 요구하는 규칙들을 깨면서 그저 가난하게 살아갔던 것. 기존에 좋다고 하는 삶에 대해 제동을 가하는 방식으로, 토를 달면서, 기존의 가치를 부정해 가면서 살았다. 세상과 불화하지만 자신의 본성과 조화롭고자 했던 장자였다. 

 

- 변화는 심장을 바꾸는 것과 같은 비약

본격적으로 장자의 소요유로 들어가기 전 길샘이 들려주신 이야기 하나.

상식을 깨기 위해서는 상식을 따르는 이야기로는 안 된다하시며 [요재지이]에 실린 주이단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주이단은 서생이었는데 아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담대한 면이 있어 유판관이라는 시황(염라대왕?)과 술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유판관의 대답은 심장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구멍이 막혀서 심장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옛이야기가 그러하듯 여차저차의 상황을 거쳐 바뀐 심장을 가질 수 있게 된 주이단은 잘 살았단다. 결국 핵심은 글을 잘 쓰려면 심장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즉 전혀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사는 것 같은 커다란 변화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생은 글렀어~라며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멀고 허황한 이야기로 읽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 한 걸음에 가는 것은 백수건달일 뿐이라는 푸시킨의 말씀을 다시 인용하시며 백걸음을 끊임없이 가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니 곤과 붕의 이야기가 새롭게 펼쳐졌다.


- 우물 안에 갇히지 말고, 다른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존재로 화하기

곤이 사는 곳은 심연.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바닥, 한계에 갇혀있는 존재이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헤엄을 치고 있다. 그러다 심연에 존재하던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로 변신하게 된다. 물론 그 존재가 되어서도 날개짓을 하면서 바람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계속 모으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딛고 갈 수 있다. 존재는 노력하다 어느 순간 변한다.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는 질적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된다는 것은 존재가 바뀌는 것이고 심장이 바뀌는 만큼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 자유는 한 걸음 나오는 것에서

붕이 구만리 창천에서 멈추어서서 지상을 내려다보니 지상이 아득하고 푸르렀다. 하지만 지상에서 하늘을 볼 때도 그러했는데 막상 창천에 올라와 내려다보니 다르지 않았다. 아득하고 푸른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창천의 초월한 삶과 지상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변화는 자리바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의 변화이고, 어디에서든 자유는 스스로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구성할 수 있는 세계가 생기게 된다.

소요유는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인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무용하다 하지만 나에게 유용한 무엇인가를 발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유용하다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그런지 다시 물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새롭게 내가 세운 윤리에서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해 보는 것,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것이 소요유이다.


- 늘 변하는 존재

이처럼 유가의 성인을 몰아낸 자리에 장자의 새로운 인간 지인, 신인, 성인이 등장하게 된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 그리고 내세울만한 내가 없음을 알기에 늘 변화하는 존재이다. 이는 수업 앞부분에서 말씀하셨던 제행무상에 대한 이해와도 연결되었다. 부처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을 이야기 하셨는데 거기에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한다.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장자를 읽고 나니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셨다고 하셨다. 고정되어 있지 않아 허무한 것이 아니라 매번 변화하기에 그 순간 자체가 나이고, 매순간 삶으로,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 내가 되는 것이기에 매 순간 노력하게 되더라는 말씀이었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깜깜하다. 하지만 심장을 구해다 바꿔줄 유판관을 친구로 못 삼았으니 지금은 셀프구원(?)을 하는 수 밖에 없는듯하다. 글쓰기를 해보면 갑자기 짜짠~ 하고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은데 절대 안된다는 걸,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ㅜㅜ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거기서 애를 쓰는 수 밖에 없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갈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여유나 노닐기는 다른 세상의 일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쓸모를 삶에서 찾아보고 있는 지금이 즐거운 걸 보면 나름의 노닐기는 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댓글목록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장자와 만나는 시간, 재미 있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영신샘~ 장자 발제하고 후기 쓰고 장자에 성큼 다가간 느낌일 것 같아요. 뭔 소린지 알던 모르던 요즘 장자 수업, 참 재밌습니당.ㅎㅎ 잘 읽었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