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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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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 작성일14-10-02 14:25 조회3,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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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방학 즐기고들 계신가요.^^ 아까운 한 주간의 짧은 방학도 중반을 넘었네요. 매 학기 거쳐야만 하는 글쓰기라는 통과의례의 장, 지난 3학기는 밴드글쓰기라는 미션으로 우리에게 시련을 주었지요. 우린 시련을 겪은 만큼 성숙했을까...후기를 정리하다보니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되네요. 우리에게 익숙한 곰추장님이 아닌, 외부에서 오신 문추장님의 주재아래 진행된 새로웠던 통과의례의 현장, 좀 길더라도 다시 반추하며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1. 박테리아가 준 선물 (김일명, 오선진, 이현화, 이현주)

- 밴드모임을 충실히 하고 과학과 증여론을 횡단하려고 하는 건 좋았다. 그러다보니 아는 걸 다 쓰려하고 논리적 비약이 생겼다. 글은 논리적인 구조로 써야한다

- 제목이 박테리아가 증여본능을 줬다는 취지 같은데, 언제 어떻게 증여본능을 줬다는 걸 써 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박테리아에게 뭘 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냥 벤치마킹한 것으로 넘어갔다. 결론부분과도 논리적으로 연결했어야 한다.

- 영혼으로 시작했는데 영혼이 해결이 안 된 채 논리 없이 해소시켜 버렸다. 그 다음부터 생명을 계속 쓴다. 영혼을 생명으로 해소시키려면 생명에 대한 재정의가 있어야 한다.

- ‘개체는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 거라면 그로부터 생명이란 뭔가가 나와야 한다.

- 주제를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로 잡고 증여나 박테리아 활동을 통해 다시 정의해 보겠다 하고 구성했으면 더 좋은 글이 나왔을 것이다.

 

2. (), 이런 거였어? (김정미, 오창희, 이은옥)

- 깨달음은 직관적으로도, 문장 한 구절로도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깨달음이 아무리 커도 내 서사를 순서대로 써서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글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이다.

-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이 발생하는 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본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결하고 살면 가장 좋은 것이다. 나쁜 게 아니다. 이게 왜 문제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층위가 있는 거다. 누군가는 바로 해결하려하고 누군가는 억압당한다. 사회학적 문제인데,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대로 용인할 수 없으니까 계보학적으로 들어가서 원래 성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가버렸다. 마지막에 쓴 결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 인간의 성은 미생물 수준의 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결론은 성이 뭔가에 대한 대답인데, 성과 관련된 다양한 인간의 문제들을 생물학적으로 원래 이런 거였다 하면 해결될까. 그럴러면 훨씬 더 많은 촘촘한 논증이 필요한데 다 생략했다.

- 내용을 훨씬 더 압축했어야 한다. 너무 무겁게 7쪽까지 갔다. 차라리 소품식으로, 여기 각 케이스들처럼 다양한 사회적 현상 건드리면서 우리 그러면 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 있는 거 아냐?’ 하고 가볍게 나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3. ()스러운 삶, 스스로 치료하는 삶 (박영혜, 양석준, 장예진)

- 처음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다. 잘나가다 용두사미가 되었다. 마지막 결론이 내가 스스로 치료하는 삶이 성스러운 삶이 되어버렸다. 성과 속의 논지에서 보면 매우 벗어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러면 훨씬 더 촘촘한 논증이 필요하다,

- 두 번째 절이 아주 좋았다. 아플 때에 낭송함으로써 성스러움, 우주적 비의와 접속하여 시공간을 재생하는 내용이다. 나의 몸을 병리적으로 세포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시공간 자체를 재생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더 밀고 나갔어야 했다. 그게 무엇인가로. 여기서 왜 멈추었나. 그 이유가 중요하다.

- 이반 일리히도 70년대까지만 해도 의료독점이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80-90년대 넘어가면서 이제는 셀프케어가 문제라고 얘기한다. 셀프케어가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은 다 셀프케어다. 훨씬 돈도 더 많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 글에서 나와 남, 내부적 외부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이 작동되고 있다. 이 글의 모티브를 갖고 이 이분법을 깨는 방식으로 병과 치료를 생각하고, 일리히 논리나 임상의학의 탄생같은 책을 공부하면서 시공간을 재생한다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글을 밀고 나가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4. 자유를 향한 한걸음 (홍세미, 장이아, 고은주)

- 진부하지 않으려면 다 아는 얘기도 다른 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얘기해야 더 깊게 새삼 깨닫게 된다. 똑같은 얘기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공부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얘기해야 한다.

-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인 자유나를 비운다는 문제를 장자와 바렐라를 통해서 하고 싶어 했는데 설득력 있게 녹여지지 않아서 그렇다. 이걸 인지’, 즉 지()의 문제로 풀었어야 한다. ‘안다는 것으로.

- 자유가 있어서 한걸음 나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건지, 바로 한걸음을 떼는 게 자유라는 건지 헷갈린다. 비슷한 것 같아도 아니다. ‘인지문제로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어야 한다,

- 장자에게도 심()은 버려야할 심지(心知)’. ‘분별지. 바렐라가 말하는 표상지. 우리가 안다라는 건 다 표상지다. 그 점에서 장자와 바렐라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보통 공부하거나 안다는 게 표상지를 얻는 건데 이 표상지에서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자유라는 건 표상지를 넘어가는 문젠데, 오히려 이렇게 썼으면 훨씬 글이 명쾌했을 것이다. 그러면 질문도 애매해지지 않았을 거다.

- 각자가 자유롭지 못한 표상들이 있다. 그걸 넘어야 자유다. 그게 매일 일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거다, 나를 재생산 시키는 거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정의고 대의고 살아가는 힘이다. 내가 살아가는 힘과 나의 자유를 막는 건 나뉘어있지 않다. 나를 밀고 온 힘이 또한 내가 넘어야 할 문턱이다. 그래서 자유를 향하는 게 어렵다. 그렇게 문제를 밀고 나가야 한다.

- 텍스트에 더 가까이 가면서 자유문제를 더 섬세하게 정의를 하면 좋았을 것이다. 여기서 더 공부하면서 시작하시라.


다음 조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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