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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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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 작성일14-10-02 14:39 조회3,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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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주복을 벗고 자유로 (추경미, 김재영, 권순정)

(여기에서 문탁샘은 우리 모두에게 참고 있었던 듯, 좀 격하게 말을 쏟아내셨어요.--;;)

- 2학년 4분기 에세이 금지어를 말해주겠다. 자의식, 백수, 자유(도 넣을까 싶다).

- 이렇게 글쓰면 절대 글이 늘지 않는다. 이쯤 되니까 명료하게 보인다. 주제도 그렇고 논지 전개하기 위해 동원한 개념들이 너무 상투적이다. 왜 상투적인가. 내용이 아니라 레토릭(사전:수사학,수사법)들이 다 똑같다. 다 거대한 틀 안에 있는 것 같다. 정말 자의식이 살면서 그렇게 고통스런 문제인가. 정말 자유를 절실히 원하나 묻고 싶다.

- 질문을 계속 이렇게 던지기 때문에 맨날 똑같은 답인 거다, 전체적으로 순환론에 빠진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자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에 집착하나. 관심이 자기 밖에 없나. 이상한 느낌 같은 게 있다, 맨날 자기는 어떤 우주복을 입고 있나, 나는 어떤 문제인가...그렇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깊어지지도 않는다. 차이, 마주침, 자기긍정... 다 합해도 다섯 단어도 안된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 어떻게 이렇게 주제가 다양하지 않을 수 있나. 어떻게 두 팀 건너 한 팀씩 백수이야기가 나오나. 정말 백수인 분? 묻고 싶다. 진짜 백수가 즐겁나? 여러분은 고미숙의 백수담론에 도전해야 한다. 나 백수 그렇게 안 즐겁거든! 이렇게 돼야 수렴이 될 텐데, 어떻게 그렇게 똑 같이 쓰나.

- 왜 그러냐면 책을 열심히 안 읽어서 그렇다. 바렐라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발제의 개념이다. 여러분은 발제의 개념을 궁구하지 않는다. 어떻게 앙꼬를 다 빼놓고 아는 얘기를 쓰고 있나.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정말 텍스트를 열심히 읽었나. 텍스트에서 하는 얘기를 정말 이해하고자 노력했나. 계속해서 텍스트와 안 마주친다는 것이다. 아는 것만 쓴다.

- 여기 있는 팀들은 전부 다 자의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집단표상에 갇혀있다. 어떻게 관심이 자기 밖에 없나. 그게 너무 이상하다. 이렇게 하면 절대 공부 안는다. 그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개별적인 코멘트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전체가 다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감이당이 아닌 문탁에서 온 저 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6. 죽음, 삶의 조각 (안민정, 정정랑, 공지원, 이소민)

- 주제가 무엇인가. 잘 죽자인가, 잘 살자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인가. 논지가 굉장히 불분명하다.

- 죽음에 대한 지금 우리의 태도가 보편적인 게 아니라면 그것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연결되어야 한다.

-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들도, 고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논리로만 전개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문장이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성을 가진 사람은 논지를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써야 한다. 그건 사전 지식과 아무 상관없다.

- 밴드글쓰기가 왜 안 되나? 글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게 주제가 되어야 한다. 서툴러도 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확실하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한 가지라도 배웠으면 한 가지 깨달음을 갖고 자기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 화두를 가지고 밴드글쓰기 할 때 토론하면서 그걸 해결해 나가는 주제로 만들어 가야한다.

- 이건 그냥 죽음이라는 주제로 글을 만든 거다. 죽음 가까이 갔던 한 분 빼고는 각자가 죽음에 대해 절실한 게 없다. 절실하지 않으면서 글을 만든다. 조립하고 있다. 그래서 글이 이렇게 느슨한 거 아닌가. 텍스트하고의 만남이 없다.

 

7.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김창숙, 신영미, 이선희)

- 아이디어만 가지고 나누어서 글을 썼다. 여기 글 속의 셋은 다 다른 라는 걸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적인 글쓰기다. 그런 조가 많다. 밴드글쓰기가 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각자가 나누어서 맡아 쓰고 글쓰기 조립공장 라인에서 붙였다. 그렇게 쓴 팀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썼기 때문에 계속 논지가 서걱거리는 거다.

-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미생물에서 배우자는 건지, 미생물이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 마지막결론에서 우리 자체가 미생물이 쌓아올린 존재라는 얘기는 진화와 관련된 것으로 층위가 완전히 다른 얘기를 이렇게 조립해버렸다. 중간중간 에피소드가 재밌기도 하고 마이크로코스모스를 잘 정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 글 전체의 논지는 포커스가 없는 것과 같다. 이 팀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팀들이 논지가 약하다. 주제가 뭔지 뚜렷하지 않다.

 

8. 통과의례로서의 글쓰기 (안혜숙, 김양희, 강지윤)

- 일단 글이 잘 읽히고 구조와 논지가 진행이 된다. 각 절이 다른 얘기를 하면서 통과의례의 글쓰기를 하는 거로 모아진다. 구조는 잘 짜여진 편이다.

- 그런데, 질문자의 지적처럼 글쓰기가 왜 꼭 통과의례가 되어야 하나, 근대인이 잃어버린 우주적 비전과 접속할 수 있는 건 과연 글쓰기 밖에 없는 건가라는 면에서 이 팀의 절실함이 안 느껴진다. 글에 충분히 표현이 안됐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매번 글쓰기의 마디들이 통과의례의 마디다 이런 식의 정의도 가능하다. 뒷부분은 글쓰기의 통과의례를 얘기했고, 앞부분은 우주적 비의와 접속하는 걸 통과의례로 얘기했는데, 충분한 논증 없이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근거가 좀 약하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 도식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일단 형식적으로는 논지가 헷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썼는지 보이니까 진짜 저 팀이 저렇게 생각하나 의심하게 된다. 여기서 든 정화(淨化)의 예가 그렇다. 진짜 글감옥이란 게 있는데, 꼼짝 못하고 어느 순간에 집중한다라는 게 엘리아데가 얘기하는 정화와 연결되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밀고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공부의 코스와 엘리아데가 얘기하는 정화 다음의 고통과 연결시켰다. 그러다보니 이 팀이 정말 통과의례를 겪었나. 듣는 청중으로 하여금 의문이 들게 하는 거다.

- 솜씨가 내용에 대한 어떤 절박한 깨달음보다 더 앞선 케이스다. 뭔가 꽝 때리는 걸 못 받는다. 글 쓸 때 사유의 속도보다 손가락의 속도가 먼저 나가는 걸 주의해야 한다.

  

전체 총평 : 글쓰기로 오히려 자기를 강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삶의 화두가 있는가

정말 왜 쓰려하나. 공부란 무엇인가. 글을 왜 쓰나. 고민을 더 해야 할 듯하다. 글은 정말 자기가 쓰고자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있는가? 그건 삶의 화두의 문제다. 그게 없으면 어떤 스승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글쓰기 주제는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화두다. 뭘 해결하고 싶은가. 공통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긴 한데, 전체적으로 자기한테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끊임없이 자기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야 한다 하면서 감이당에서 반복하고 있는거 아닌가. 그냥 다른 거랑 만나면 되는데. 이런 식의 주제와 글쓰기가 자기를 떠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자기를 강화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삶의 화두는 자기가 가꾸고자 하는 삶의 현장이 있는가이다. 삶의 현장이 없으면 공부해도 질문이 나아가지 않는다. 분명히 내가 넘어갔는데, 넘어간 걸 펼치고자 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겼을 때 화두가 되는 것이다. 그게 공부거리가 되는 거다. 질문이 나아가지 않는 건 질문을 나아가게 할 만한 삶의 현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두가 없으면, 절실한 문제가 없으면 절대로 글도 절실하게 나오지 않는다, 글을 절대로 잘 쓸 수 없다. 글이 치열하지 않으면 삶이 치열하지 않은 것이다. 글과 삶은 같이 간다. 

 

내 삶의 현장을 창안해 내는 것, 이건 혼자되는 건 아니다. 감이당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되는가. 여기가 삶의 현장이 안 되면 여기서 아무런 질문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이당에 모여서 같이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이라 생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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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쓰기위해 다시 도반들의 에세이를 들여다보고 코멘트들을 듣다보니 새로운 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남의 글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질문이나 코멘트들이 아~ 이래서 그랬구나 깨닫게 되기도 했구요. 또 문탁샘의 코멘트를 글로 옮기다보니 들을 때보다 훨씬 쎈~~ 느낌이었단 걸 빠뜨릴 수 없네요. 글의 주제와 논지의 진행과 구성에 대해서, 글과 텍스트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에 대해서 칼날처럼 찌르는 말들이 새삼 가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강학원에 후기를 쓰는 자만이 챙겨갈 것이다.’라는 저주(!)가 있다는군요.후기를 쓰고 보니 그 저주가 축복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ㅎㅎ 모두 남은 방학 에너지 충전 잘 하시고, 개강 날 뽀송뽀송한 얼굴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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