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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후기(독송&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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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無心이 작성일14-11-28 02:22 조회3,2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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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송/ 이현진쌤


이번 주에는

사암침 중에서 심포 정격과 승격, 삼초 정격과 승격을 공부했습니다.

음경과 양경의 보사가 자꾸만 헷갈려서 독송 수업 중에는

여기저기서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놓는 것이 보의 방향이고 사의 방향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지요.

*기말 종합 시험은 12경맥의 정격과 승격의 혈자리를 모두 외워서 쓰고,

정격의 혈자리를 그림에 직접 표시하는 것입니다.

 

3. 글쓰기/ 약쌤 자기 배려의 인문학강민혁, 북드라망

 

선생님은 수업 첫머리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책이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고.

그래서 완독을 하신 분들이 많이 없으시다고.....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측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직접 읽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책 여기저기를 함께 읽으면서 설명들을 해 주셨습니다.

크게 자기배려의 철학에 대하여, 그리고 루쉰에 대해서 함께 읽고 공부했습니다.

여기서는 자기배려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좀 어려웠습니다.

 

약쌤이 자기배려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배려를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앎들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떤 의견(doxa)들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진리가 아닌 이런 의견들을 폐기하기 위해서 정화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정화작업을 위해 그가 사용한 것이 대화술입니다.

그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도 이 논박을 통해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하는 걸

깨닫도록 하기 위해 델포이 신전에 적힌 문구를 갖다 쓴 것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논박을 즐기다가 법정에 서게 됩니다.

소크라테는 법정에서 최후 변론을 하게 되고, 거기에 자기배려의 철학이 나옵니다.

그가 말하는 자기배려란 어떤 것일까요?

 

그의 변론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신이 최대한 훌륭하고 지혜로워지도록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쓰기에 앞서 자신의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먼저 마음을 쓰지 않도록하라는 것입니다.

육체, 지위, 명예, 재산 등에 마음을 쓰기에 앞서

자기 자신 자체에 대해 마음을 쓸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것이 죽음을 불러오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었답니다.

그런데 죽음을 무릅쓰는 것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게 될 수 있을까요?

약선생님은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당장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사는 것, 지금의 습관, 생활 방식을 바꾸기 위해 넘어야하는 경계들,

이것은 어쩌면 매번 만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늘 어렵습니다.

어떤 고전에서도 부딪치게 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언설들. 어렵습니다.

아직도 저는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ㅜㅜ.

어쨌든 결국 자기배려는 지금의 나를 넘어서도록 힘쓰는 것이라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자기배려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지금의 나를 바로 알아야 나를 넘어설 수 있을 테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글도 쓰고 발표하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과정들을 겪어내는 것이겠지요.

약선생님도 이 길을 가고 계시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여정을 한 권 책으로 엮어내신 것일 테고요.

 

여기까지 쓰다 보니 갑자기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그날 수업 시간에 우리들의 궁금증들을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이 없었다는 게.

선생님께 공부는 어떤 식으로 자기배려가 되었는지, 그리고 되고 있는지 등등.

 

어쨌든 이어서 자기배려와 우정에 대해서 함께 책을 읽었는데요.

감이당에서 자주 듣는 말이 밥과 우정과 공부인데요.

아마도 우리는 이 우정이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도 각자 다른 우정을 생각했을 듯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언제든지 나를 도와주는 친구, 아니면 어려울 때 언제든지

내가 도와주고 싶은 친구에게 갖는 감정이나 행위들을 생각했을 법합니다.

그런데 키케로의 정의는 참으로 제 생각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자연과 우주 속의 만물은 정지해 있는 것이든 움직이는 것이든

우정에 의해 결합되고 불화에 의해 분해된다

약선생님은 여기에 이런 해석을 덧붙이셨습니다.

키케로에게 우정은 긍정적 감응이고, 만남을 통해 서로의 힘을 증가시키는 관계라고.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우정의 힘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본성이 된다고.

우정 없이는 우주 만물도 없다고. 결국 우정이란 공생의 힘이라고.

갑자기 린 마굴리스의 <<마이크로코스모스>>가 생각이 납니다.

그렇다면 생물 진화의 역사는 우정의 역사가 되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우정이란 우리에게 필수부가결한 생존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음 시간에는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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