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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4강 걸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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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우 작성일15-11-11 16:08 조회4,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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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송 시간은 고 혜경샘이 풍병에 베이스로 쓰는 '오약순기산'을 설명해주셨다.

풍기내동으로 인한 풍을 치료하는 약한 약이다. 예방과 지속적인 치료에 좋다. 방제는 오약을 군약으로 마황, 길경, 천궁,백지,백강잠을 신약, 좌약을 건강, 사약은 감초이다.

오랜 만에 곰샘의 걸리버 여행기 강의를 들었다.

수업 처음에  출석 학인 전원이 낭송을 하였는데, 빈약한 내용과 낭송하는 목소리 기운 부족으로  곰샘께 야단맞았다. 그래서 수업 처음의 내용은 '우리가 능동적인 신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부하는 것은 신체적 역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기쁨은 신체적 역량을 증가시키고 슬픔은 감소시킨다. 어제보다 나은 것을 했다고 생각하면 신체적 역량이 증가한다. 계속 사라지는 것이 있으니 가만히 있으면 역량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모든 사물은 무질서를 향해 흐트러지게 되어있다. 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늘도 내가 무언가를 했다고 느껴야 역량이 증가한다고 느낀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신나고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느낀다. 아니며 수동적이고 부정적으로 된다. 삶은 중립상태로 스탠바이하지 않는다. 수동 속도보다 능동의 속도가 더 나아야 한다. 어제보다 속도가 떨어지면 권태가 쌓인다. 수동 화 되는 것이다. 반복은 위험하다. 무력하고 힘이 없어진다. 공부는 조금 더 나아져야 한다. 어제와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등급이 떨어지는 것이다. 역량이 증가하면 말과 행동, 글의 역량도 증가한다. 만약 음악이나 무술을 한다면 예전에 안 보이는 것이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사람으로 공부를 하면 역량이 증가하면 말이 달라진다. 말의 강약 조절이 가능해진다. 앞에 있는 청중에 따라 말하는 tone이 달라진다. 강의를 할 때는 앞의 청중의 reaction에 따라 강의하는 사람의 말이 바뀐다. 이때 말하는 것은 reaction을 보면서 하는 것이다. 소통의 능력이 늘거나 줄거나 하게 된다. 집에서 하는 독백과는 다르다. 말하면서 어디를 조절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마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계속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내가 청중들을 보고 가진 선입견이 틀렸다는 것도 강의를 끝내고 직접 그들을 만나보면 알 게 된다. 불평스러운 얼굴을 하고 강의를 듣고는 감동의 감사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앞에서는 너무나 환호하고 뒤에서는 욕을 한다.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생애 처음 강의하는 마음으로 하게 된다. 강의가 힘은 많이 들고 매끄럽지는 않지만 반복하지는 않는다. 말하는 것을 계속 연습하여야 한다. 강의 하는 순간 청중들과는 어긋남이 매번 있고 이것이 공부이다. 매번 새롭게 힘을 투여해야 한다. 그래서 초발심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 말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강의이다. 글은 생각하는 데로 표현하는 것이다. 생각이 변화할 수 있는가? 그러면 신체의 근육과 에너지가 변화한다. 그때 기쁨이 생겨난다. 그때 편안하다. ‘내가 이만큼 소통했어.’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공부를 통해 역량이 증가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 꽉 막힌 느낌이다. 말이 길을 잃었다. 이것은 슬픔이고 수동이다. 말에 대한 소통을 연습하는 사람이 클럽에 가기는 힘들다. 이미 신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게 감이당 공부이다. 그래서 소리와 전달력이 달라져야 한다. 이번 시간 낭송은 반복에 들어 간 것이다. 그러면 학교 공부와 차이가 없다. 이렇게 되는 힘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reset하여 초심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모하는 것보다 생성하는 힘이 커져야 한다. 역량이 커지면 기쁨도 커진다. 글쓰기도 무게 중심을 실어내는 것을 터득하여야 한다. 지식이나 스펙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관계를 생성해야 한다. 말의 길과 글쓰기의 글이 달라져서 사람들과 소통한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면서 말을 전달한다. 배우면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연마된다. 명상보다 더 심한 수행이다.

이제 걸리버를 따라 여행을 떠나 본다.

여행을 떠날까?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신체의 역량이 변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신체가 수동 화된다. 신체적 역량이 떨어지면 두려움이 커진다. 신에게 의지하여 강력하게 믿게 되면 공포를 더 느끼게 된다. 극도의 두려움은 극도의 교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종교에 빠져서 피동적으로 변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집을 나와 고향을 떠나 길 위에 나선다. 그러면서 미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조나단 스위퍼트는 성공회 사제이다. 결혼과 연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20살 아래 여자에게 구애를 받았고 인기가 많았다. 입이 살아 있어서, 유머와 독설이 있어서 그렇다. 유머, 즉 비트는 힘이 없으면 설교가 된다. 그는 독설을 타고난 아일랜드인이다. 말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구설 때문에 싸운다. 싸움은 힘 자체가 아니고 말에 붙은 오해와 갈등이다. 결국 말로 풀어야 한다. 관계를 맺을 때 말이 중요하다. 1980년대에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철학이 멋있어 보여서 누구나 했다. 대성학원 출신이라면서 헤겔과 쇼펜하우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때는 대성학원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다. 2000년대는 말을 안 하는 신체가 되었다. 이제는 검열을 하지 않는 시대인데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연애도 삭막해져서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다.

조나단 스위퍼트가 살던 시대에는 대영제국이 전 세계를 식민지하면서 여행이 보편화되었다. 여행이 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조나단 스위퍼트는 직접 여행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가 여행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당시 인간을 에세이로 조롱하면 속 시원하게 못한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 판타지의 세계를 가지고 온다. 여기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real하게 한다. 소인국에서는 정치가가 지위에 오르려면 줄타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빗대어 하는 말을 실제로 삼았다. 대단한 독설의 상상력이다. 여야가 싸우니 두개골을 쪼개어 반씩 합한다. 당시 권력과 정치에 대한 조롱과 독설이 거인국과 소인국에서 마음껏 펼쳐졌다. 여기서 멈추면 정치풍자극으로 끝난다.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이 보인다. 소인국에 가니 본인이 거인처럼 된다. 인간이 신을 대하는 태도가 보인다. 인간이 신을 설정하고 원하는 욕망을 달성하려고 한다. 왜소하면 항상 어두에 자를 붙인다. 허장성세가 붙은 것은 자신이 없다는 것도 된다. 소인국은 작지만 나약하지도 않고 탐욕스럽다. 약한 여자, 많이 우는 여자를 믿지 마라. 자기 욕망을 그렇게 표현하여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싸움의 원인이 구두 굽의 높이, 달걀을 어느 쪽으로 깨는지의 방법차이 등이다. 사실 싸움의 원인을 잘 모른다. 지금의 종교 전쟁도 보라, 왜 싸우는지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그냥 총 들고 싸우고 싶다. 비겁, 비견과 겁재가 싸우는 것이 제일 무섭다. 인간은 평화를 원하지 않고 싸우기 위해 싸운다. 야후의 독설에서 이 점이 드러난다. 먹을 것이 충분해도 더 싸워서 빼앗아 먹는다. 정년퇴직하면 그 1.2억으로 평생을 소박하게 살면 되지 않은가? 기어코 치킨 집을 해서 배팅해서 말아 먹는다. 야후들이 하는 것과 똑같다. house poor라고 하지만 그 집을 팔아 살면 되지, 10억을 깔고 앉아 있는가? 안정을 제일 싫어한다. 깨박 치는 쪽으로 그것을 쓴다. 야후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궁정에 불이 나서 소변으로 꺼 주니 나중에는 왕후가 화를 내면서 걸리버를 모함한다. 처음에는 거인이라 무서워하다가 알게 되니 자기가 지배하려 한다. 소인국에서 최고의 슈퍼맨이 되었는데 더 고달프고 자유롭지 않다.

거인국에서는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 귀여움을 받는 것은 끔찍하다.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저주이다. 무명이었다가 갑자기 주목받으면 연예인들이 반드시 우울증을 앓는다. 계속 칭찬받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왕비, 예쁜 시녀들을 클로즙해 보면 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점도 크고 피부도 더럽다. 여성에 대한 심리가 하락한다. 걸리버도 거인국에서 영국의 역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는데 시선을 바꾸어보면 잔혹하고 말종인 역사였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요사이 달라지는 것은 IT산업의 부자들이다. 기부도 잘 하고 부를 잘 나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연봉12억을 받는 이사가 일반 직원들이 연봉 4000만원으로 힘겹게 사는 것을 알고 자신의 연봉을 6억으로 낮추고 일반 직원들을 연봉 8000만원으로 인상시켰다. 그래서 이 회사가 주목받았다. 회사를 생각하는데 이윤만 생각하면 사람인가? 중산층, 맹수도 이런 생각을 안 한다. 내 것을 왜 나누나? 본성이 단단히 틀어져 있다.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소유가 소용이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말의 나라에서 흐이넘은 인간에게는 없는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원하는 덕성을 가지고 있다. ‘소유집착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관계 맺는 것이 다르다. 성욕이 콘트롤된다. 집착을 연애와 화폐에 적용하면 무조건 소유하고 증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통찰해야 한다. 죽음은 생의 또 다른 관계가 흘러가는 것이다. 지금 죽음이 슬픈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젊은이가 갑자기 죽으면 생의 흐름이 갑자기 끊기니 슬프다. 살아서 그가 잘 먹고 살았을 것이라고 투사한다. 누려야 할 것을 빼앗긴 것처럼 통탄해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자연의 흐름에서 죽음을 돌파해야 한다. 소유는 어차피 다 흘러가는 것이다.

기억이나 정서가 과거 그대로인가? 10년 전 수유너머를 처음 했던 혜화동에 갔다. 전혀 과거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나는 다른 신체로 바뀐 것이다. 환기되려면 그때와 연장되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추억은 욕망이 구조가 안 바뀌어야 그 장소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공부를 하면 감각 구조가 바뀐다. 그때 나는 소멸된 것이다. 인간이 새롭게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사는 것이다. 놓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한다. 이런 고매한 덕성으로 산다면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탐욕의 극치는 죽어서 극락가고, 죽어서도 신선이 되겠다는 욕망이다. 일상에서도 죽음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계속 있지만 우리는 놓치고 오히려 여기에다 망상만 자꾸 덧붙인다. 우리가 밤에 잠을 자는 것도 죽는 것이다. 내가 잠들면 죽는 것이다. 아침에 깨면 다시 다 모아서 를 만든다. 나로 구성되어 깨워준다. 태어나는 것도 너야!’하고 밀어 내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자연은 생의 리듬에서 매일 나에게 가르쳐 주지만 우리는 이것을 모르는 척 한다. 자본이 커지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게 한다.

조너던은 성교회사제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을 전혀 다르게 말한다. 80세 이후에는 언어도 없고 구걸하며 비참하게 사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홀로그램으로 말한다. 정보를 모으는 개념으로 가능한 생각이다.

인간의 욕망을 야후에 빗대어 신랄하게 비난하고 흐이넘을 도인의 경지로 얘기한다. 야후는 동서고금을 통 털어 성욕과 탐욕이 지칠 줄 모른다. 우울증의 치료는 중노동이다. 기혈 순환이 되면 울화병이 사라진다.

라퓨타는 기하학과 음악으로 철학과 놀이를 하는데 형상이 눈이 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는 위로 올라붙는다. 때리기 꾼이 때려야 사색을 멈춘다. 스마트 폰에 빠진 현대인의 신체와 비슷하다. 과학적인 것이 인간의 삶과 상관없는 것을 연구함을 풍자한다. 기술 문명이 고도화되면 신체성이 떨어지고 희한한 방식으로 소통 없는 삶이 구성된다. 수상 부인은 최고의 지위를 가진 남편, 아름다움, 아이들, 성 모두를 가졌지만 권태로워서 인간 세계로 도망친다. 늙고 못생기고 포악한 남편 밑에서 맞으면서 빨래를 해주고 산다. 수상이 찾아서 데리고 와서 용서 해 주지만 다시 패물을 들고 도망쳐서 영영 사라져버린다. 모든 것을 갖추면 반복 밖에 없다. 내가 새로 일군 것이 없고 남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빨래하면서 관계 맺는 역동성이 좋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야후는 생명이 가지는 속성이다. 끊임없이 나의 신체적 능동성이 증가해야지만 살아 있다고 느낀다. 노인은 줄이고 줄여서 수렴해야 한다. 정신이 더 맑아져야 한다. 소유나 성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은 지혜는 늘어나지 않고 몸만 건강해지는 노인이 많아 문제이다.

걸리버 여행에서는 신체가 바뀐 것이 중요하다.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길 위에 나서라. 여행하고 사유하라. 지금 우리는 말도 제대로 못하니 생각하여 글 쓰는 것이 잘 될 리가 없다. 앞으로는 말하는 훈련을 가혹하게 할 것이다. 낭송20분하고 토론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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