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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비조 3주차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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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다래 작성일17-03-08 06:57 조회2,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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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인문학
- 1장과 2장 (3장이 문탁샘께서 생각하는 핵심이라고 합니다. 다음주 후기를 기대하시길.. )-
 저항의 인문학의 부제는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인데요. 이 비판의 대결지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네요.
 인문주의 즉 휴머니즘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간, 이성을 중시한 어찌보면 촌스러운 담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게 2차 세계대전을 거쳐오면서 인간의 존재와 중요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인문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사이주체이기 때문일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푸코와 반푸코적 성향을 띄어서 그것이 한계인지 독특한 지점인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현재 자기계발의 시대는 끝나고, 인문학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인문학이 위기였지만, 아카데미 바깥에서는 수유너머 등을 통해 대중지성이 활발합니다. 여기서 잠깐!!! 에세이 팁을 가르쳐주셨는데요.
 1. 책을 읽을때는 감상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2. 리뷰나 질문을 정식화 해야합니다.
 3. 저자의 독해인지 나만의 독해인지 토론(문맥, 맥락 읽기)을 해봐야 에세이를 쓸수 있는 글감이 나옵니다.
 4. 그리하여 글쓰기의 조각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짧더라도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글을 쓰기를 조언하셨습니다.
 

 저항의 인문학에서는 세속성과 실천 인문학을 중시합니다. 이는 초월성과 강단인문학 그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초월성은 세익스피어등 일반인과 다른 초월적 텍스트로 추앙받고, 읽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타자이며, 동양의 본질은 없다고 합니다. (1.야만,미개 2.원색,생명력 3.여성 4.흑인)


 저자 사이드의 인문학은 인간이 만든 것을 다루는 것입니다.
 저자 사이드가 영향을 받은 비코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것 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비코를 역사학자라고도 합니다. 사이드의 인문주의도 ‘인간이 만든것으로서의 인간의 언어로 된 역사’ 입니다.
 비코는 내가 만들어서 알수 있기때문에 사람마다 다르고, 그 시작은 다양성과 혼중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원, 본질, 근본이 아닙니다. 이를 나누고 있는것이 아니라 발생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텍스트가 가지는 혼종적 특성은 인간정신의 엑기스를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방법론(문학비평)을 만들어냄. 택스트 자체의 비평은 거의 인간 승리로 갈수 밖에 없으며, 서구, 백인 정신만 살아남게 됩니다.
 강단인문주의는 남성과 백인을 엘리트로 봅니다. 철회와 배제를 통해 근본, 기원을 탐구합니다. 그리하여 보편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비코의 철학을 이어받은 사이드는 인문주의는 세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개방성, 민주성, 다층적, 혼종적이며 모노(혼자)는 아닙니다. 감이당에서 금요일마다 하고 있는 수업(고전평론가되기)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비평이라는 것에 대해 ‘명석, 판명하며 객관적 사실, 인식 방법론’이라고 데카르트가 말했고, ‘순수이성이 할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 제한하는것’이라고 칸트가 얘기했다면 ‘인문주의는 인간이 만들어온 구성을 다루는 것’이여야한다고 사이드가 말했습니다. 언어로된 역사적 구성물을 읽는 것으로 세계를 인식합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도 공부란 세계인식(고전)이고, 자기인식(성찰)이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을 만든것만을 인식합니다. 언어로된 인간의 산출물을 읽어내는 것이 비평물이라고 합니다.
 세계를 읽는 것은 비평이라는 행위인데요. 비평은 강단인문학에서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혈통을 찾아가는 비평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것이 비평인 것입니다. 세속적인것은 비긴, 시작의 다층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적 독해는 세속적 독해이며, 사이드에게 인문주의는 비평(크리티시즘)입니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는 초월성과 환원적인 독해와는 대척점에 있습니다. 천만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영화를 인문주의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원래의 것을 확인하고, 우리편, 내편을 가르며, 사유하지 않습니다. 다층적으로 읽는 것은 어렵습니다.
 긴장과 모순속에서 해체나 배제, 초월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돌파해야 현실에서 다르게 사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문학자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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