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의 글쓰기 테제들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일성.png

벤야민의 글쓰기 테제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약선생 작성일12-05-10 10:50 조회3,728회 댓글3건

본문


제가 자주가는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벤야민의 글쓰기에 대한 포스트(http://blog.igreenbee.net/bord/6871803086)가 있어서, 우리 감성학인들에게도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이걸 블로그에 옮겨 적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뭐라 하진 않으실테지?) 출처는 [일방통행로](조형준 옮김, 새물결, 2007)에 실린 단편들입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감성에서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많아 지다 보니, 느낌이 아주 달라지더군요.


 


----------------------------------


 


중국 도자기 공예품


... 걸어가느냐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위를 날아가느냐에 따라 시골 길이 발휘하는 힘은 전혀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텍스트도 그것을 읽느냐 아니면 베껴 쓰느냐에 따라 발휘하는 힘이 전혀 다르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직 길들이 풍경 속을 뚫고 나가는 모습만을 볼 뿐으로 그의 눈에 길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펼쳐진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길의 지배력을 알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쭉 펼쳐져 있는 평야에 불과한 지형들로부터 마치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지휘관의 호령처럼 원경들, 전망대, 숲 속의 공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펼쳐진 멋진 조망을 불러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껴 쓴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게 호령할 수 있는 반면, 단순한 독자는 [텍스트에 의해 열린] 자기 내면의 새로운 광경들, 계속 다시 빽빽해지는 내면의 원시림들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결코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하늘을 떠돌며 자아의 움직임에 따르지만 베껴 적는 사람은 그러한 움직임에 호령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서적 필사 전통은 문예 문화에 있어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보증이었으며, 사본은 중국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계단 주의!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Komponieren. '작곡하는‘이라는 듯도 갖고 있다―옮긴이)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맞추는 직물적(참고로 ’텍스트(text)'는 원래 ‘직물’을 의미했다옮긴이) 단계.


 



벽보 부착 금지!


 


작가의 기술에 관한 13개의 테제


 


1. 뭔가 큰 작품을 쓰려는 사람은 여유를 가질 것. 일정한 분량을 마친 후에는 글쓰기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허용할 것.


 


2. 원한다면 지금까지 쓴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좋지만 아직 진행 중인 글은 다른 사람에게 읽어 들려주지는 말 것. 그것을 통해 얻게 될 모든 종류의 만족감은 너의 템포를 늦출 것이다. 이 [식이] 요법을 따른다면 자기 글을 보여주고 싶은 점증하는 욕망은 결국 완성을 위한 모터가 될 것이다.


 


3. 작업 환경에서 일상생활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피하도록 노력할 것. 맥 빠진 소음을 동반한 어중간한 고요함은 [오히려] 품위를 떨어뜨릴 뿐이다. 그에 반해 연습곡이나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동반되는 경우 그것은 뚜렷하게 지각할 수 있는 밤의 적막만큼이나 글쓰기에 중요할 수 있다. 한밤의 적막이 내면의 귀를 날카롭게 한다면 전자는 글 쓰는 방법의 시금석이 된다. 그것이 아주 풍요로워지면 어떤 기괴한 소음조차도 안 묻혀버리게 된다.


 


4. 아무것이나 집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피할 것. 특정한 종이, 특정한 펜, 특정한 잉크를 까다로울 정도로 고수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용구를 풍부하게 갖추어놓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5.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incognito) 지나가도록 하지 말 것. 메모장에 노트를 할 때는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부를 기록할 때처럼 엄격하게 할 것.


 


6 너의 펜이 떠오르는 착상에 대해 까다롭게 굴도록 할 것. 그러면 펜은 자석과 같은 힘으로 그것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데 있어 신중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그것은 한껏 펼쳐진 채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말[이야기]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문자[글쓰기]는 생각을 지배한다.


 


7. 더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말 것. 어떤 일정(식사 시간, 선약)을 지켜야 하거나 아니면 작품을 끝마쳤을 때만 중단하는 것이 문학적 명예의 준칙이다.


 


8. 더이상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동안 쓴 것을 깨끗이 정서할 것. 그러는 동안에 직관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9. Nulla dies sine linea[단 한 줄이라도 글을 쓰지 않고 보내는 날이 없도록 할 것](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대 플리니우스, 23~79년)가 <<자연지>> XXXV에서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에 대해 서술한 말에서 유래하는 성구옮긴이) - 하물며 몇 주일씩이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10. 저녁부터 꼬박 다음 날이 밝아올 때까지 매달려보지 않은 어떤 글도 완벽하다고 간주하지 말 것.


 


11. 작품의 결말은 평상시에 일하던 방에서 쓰지 말 것. 거기서는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12. 집필의 단계들 생각, 문체, 집필, 정서淨書라는 고정행위에서는 이미 주의력이 글자의 아름다움으로만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정서의 의미이다. 생각은 영감을 죽이고 문체는 생각을 속박하며 집필은 문체에 보수를 지불한다.


 


13. 작품은 구상의 데스마스크이다.

댓글목록

류시성님의 댓글

류시성 작성일

<p><img src="files/attach/images/55588/727/298/a16c0fefac235666072a8920210571b5.jpg" alt="images.jpg" width="259" height="194" editor_component="image_link" /></p><p><br /></p><p>오~~~~~~~~~~~~~~~~~~~~~~~~~~~</p><p>벤야민!! 내게 좌절과 환희를 동시에 선사했던!!</p><p>저도 중국공예품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ㅋㅋ</p><p>벤야민의 유머가 너무 좋아요~~</p><p>그래서 저도 한구절 남기고 갈께용^^</p><p><br /></p><p>돌아오너라! 모든 걸 용서하마!</p><p>-벤야민</p><p><br /></p><p>철봉에서 대회전을 하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소년 시절에는 스스로가 회전식 추첨기를 돌리는데, 그곳으로부터 빠르든 늦든 대박이 터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15살 때 알고 있던, 아니면 하고 있던 것만이 이후 어느 날 우리의 매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즉 부모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한 나이 때에는 48시간만 방치되어도 그것으로부터 삶의 행복의 결정이 알칼리 용액 속에서처럼 형성된다.</p><p><br /></p><p>청비탐 아이들도 48시간을 방치해서 청비탕(청소년 비전탕아들)로 만들어야할까봐요 ㅋㅋ</p>

선민님의 댓글

선민 작성일

<p>이렇게 정진하겠다, 정진하잔 말이지요? </p>
<p>자극이 되는데요...!</p>

산수유님의 댓글

산수유 작성일

<p>짤이 너무 혐오스럽다람쥐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