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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_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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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ng 작성일21-09-09 08:08 조회4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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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아니 무엇이 나인가? 무수히 많은 개체들의 다양체이며 집단적 배치물이고 전체인 동시에 타자의 일부분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수업 내용 Q&A>

질문1 스피노자의 종교와 철학, 영성:

-> 자연을 신으로 보았던 스피노자의 자연주의 사상은 자연의 원리를 통해서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알고서 얼마나 경건하게 삶을 사는가가 중요하다.

질문2 언어가 잉여를 통해 작용하는 것:

-> 언어는 행동을 유발하는 명령어로 언표와 행위의 잉여이다. 특정한 사회적 장 안에서 특정한 맥락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언어는 항상 외적인 요소가 규정한다.

질문3 ‘되기고원에서 회상적 언어형식:

-> ‘탈주체주의 철학에서 몸(신체,관념)은 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타자들과의 마주침과 기억을 내포하는 것이다.

 

10장 되기 (p481~) 어느 스피노자주의자의 회상

- 본질을 묻는 물음을 바꾸어 발생(생성)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왜냐면 하나의 개체(주체)는 무한히 변화하는 연속체인 우주 속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구현된 잠정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몸은 무수히 많은 Body들로 구성된 합성체이며, 모든 신체는 어떤 것의 전체인 동시에 다른 것의 부분이다. 인간과 동물, 식물, 미생물, 광물, 바이러스 등 작은 미물 하나도 서로 관계를 맺고 교란시키며 합성되는 가운데 동시에 해체를 계속하고 있다.

- 어떤 조건에서 어떤 메카니즘으로 이런 상태가 되고 감정이 드는지에 대해 사고할 수 있어야만 그 삶이 고착되지 않는다. 우리는 애초에 규정성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외부와의 마주침의 과정에서 규정성은 계속 변한다. 그러므로 모든 개체(주체)변용태이며 이것이 바로 되기(becoming)’이다. ‘되기는 상징도 비유도 아니며 실제적 관계성이다.

- 모든 힘들이 타자와 맺는 관계의 변환이며 실제로 신체의 변용을 느낀다. 신체가 모든 신체와 마주치는 그 판이 현실이고 삶이며 고른판이고 다양체인 자연이다.

- 모든 관계가 나를 변화할 수 있게 하고 나의 역량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실험해보고 실천하고 노력해야 한다. 나쁜 마주침은 나를 한곳에 고착시키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용되어 지금까지 되어보지 못한 새로운 내가 되는 것. 신체와 정신의 역량이 커질수록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 어떻게 최대한 좋은 마주침이 될 것인가? 어떻게 좋은 마주침이 발생할 확률을 높이도록 환경(사회)을 구성할 것인가?

1) 소극적 차원의 '되기': 우리가 존재가 아니라 변이(=되기)’였다

2) 적극적 차원의 '되기': 우리가 겪는 마주침을 통해서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변용될 것인가 (윤리적 차원)

 

- 스피노자: 모든 것의 연결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만물의 근거는 자연이며, 이것은 초월적이고 알 수 없는 형태로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존재의 지평에서 우리 자신을 통해 이미 반영되고 있다. 오직 운동과 정지, 느림과 빠름 관계, 연결 관계에 의해서만 서로 구별된다.

- 들뢰즈: ‘되기란 어떤 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용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 부처: 자기가 고수하는 정체성이 없으며, 무엇을 만나도 그것으로 변용될 수 있다. 어떻게 나 자신에서 벗어나서 무아의 경지에 이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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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우주-자연의 한 절단면에서 나의 신체는 오늘도 끊임없이 타자들을 만나 합성되고 변용되어 어떤 새로운 나를 다시 만들어 갈 것인가. 컴퓨터의 매트릭스처럼 코드의 연속된 질서 속에서 결국 해체조차도 그 질서의 한 부분이 될 그런 삶이 아직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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