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 '물질과 기억'강독 후기_3회차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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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 '물질과 기억'강독 후기_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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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긴 작성일22-02-28 20:38 조회2,152회 댓글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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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낭패다. 

10시 10분 전에 착석하여 줌을 켰으나 계정이 엉키면서 제 시간 출석도, 초반 강의도 놓쳐버렸다. 항상 시간을 빠듯하게 몰아쓰는 습관에 결국 이렇게 한번 값을 치르는구나... 비록 화면 밖이지만 새삼 민망하고 부끄럽다. 

 

일단 세팅을 다시 하고 이미 시작된 강의에 얼른 귀를 기울인다. 우선 강독에 앞서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정리문을 살펴본다. 첫 강독의 즐거움과 어려움이 모두 묻어나오는 꼼꼼하고 세심한 정리다. 책의 본문과 선생님(이하 정군)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한 단락 한 단락 정성스럽게 다져 넣었다. 이 정도로 하려면 얼마나 그 시간에 집중을 하고 정리에 시간을 쏟아야 하나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정군은 놀랍게도 이에 태클을 건다. 텍스트와 강의에 너무 밀착하지 말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쓰라는 것이다. 내용을 모두 담을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을 통과한 부분에 집중하여 자신의 관점, 자신의 문장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단다. 엇, 그러면 정리가 아니라 일종의 에세이가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런 의문을 다 해소하지 못한채 강독에 들어갔다. 어제 읽으면서 곳곳에 쳐둔 물음표가 걸린다. 여전히 너무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 그들의 이론들과 개념들이 재차 나를 멈추게 하지만, 여러번의 읽기와 다함께 곱씹는 시간, 정군의 도움으로 어찌 어찌 넘어간다. 이해하면 이해하는대로 미진하면 미진한 대로 전진할 수 있는 무모함을 장착하고서.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어젯밤까지만 해도 도저히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부분의 물음표들이 하나 둘씩 지워져간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마치 외계어처럼 막막했던 텍스트가 어느 새 내게 좁은 진입로를 터주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텍스트와 세미나가 내 신경에 전달하는 진동과 그를 받아들이는 내 몸의 새로운 리듬, 그리고 그 사이로 삽입되는 새로운 감각 (이것이 정념?). 이 내밀하고 섬세한 차이를 느끼는 일이 바로 공부가 아닐까. 앞선 정군의 조언도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만족감보다 접속의 강렬함에 방점을 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베르그손은 탐구의 길잡이로, 행위를 향해 있는 정신적 기능들의 실용적 성격, 그리고 거짓된 문제를 창조하는 행동의 습관들을 지적한다. 정신과 행동의 이토록 통합적인 사고방식이라니. 생각보다 그의 이론은 사변적이기보다 실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간의 철학자라고도 불리우는데, 향후의 내용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우리의 고정된 사유방식을 '시간'이라는 렌즈를 통해 밝혀줄 모양이다. 부디 그를 통한 철학적 깨달음이 항상 시간에 붙잡혀 허둥거리는 내 둔감한 일상에까지 닿아주기를.


댓글목록

박운섭님의 댓글

박운섭 작성일

철학 용어의 바다를 솜씨 있게 헤엄치는 문학적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혼란스러워도 언젠가 다른 질서가 만들어지겠지요? 믿어봅니다.

강적님의 댓글

강적 작성일

저도 이해를 못해 책에 물음표를 해두었던 것을 선생님 설명을 듣고, 혹은 그후 다시 읽으면서 "앗!" 하고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어 물음표를 지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경험을 매주, 매일 느껴야할 텐데 말이지요~그런데 한편으로는 설명을 듣고 다시 읽으면서 또 새로운 물음표가 생기기도 하니 물음표의 숫자는 제자리걸음이기도 해요ㅠㅠ

지현님의 댓글

지현 작성일

후기 감사합니다. 그저 베르그송과 익숙해지고 친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ㅎㅎ

목도리님의 댓글

목도리 작성일

모긴샘,안녕하이소, 닉넴이 촥촥달라 붙네요,  ㅋㄷㅋㄷ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상황을 그대로 잘닮아 내서생동감나게 이해하고 소화하겠습니다, 양,소,말,등등  다수체험하신 느낌입니다, 일성의 잠재된 고수가 아닌가 싶군요, 자연과 교감할수있는
스킬이야 말로  피포가 원하는 유연한바디로 향하는 최적화된길이 아닐까 싶습니다,AM

남궁진님의 댓글

남궁진 작성일

줌에서도, 이렇게 리얼하게 현장을 표현할 수 있다니,,,,, 현장 수업에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한 묘사에 감탄합니다. 사변으로 올라가 거짓된 문제를 창조하는 행동의 습관, 저도 이 표현에 눈이 갔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면이님의 댓글

면이 작성일

'막막했던 텍스트가 내게 진입로를 터주고 있는 느낌'
완전 동감됩니다. 저도 목인샘처럼 강독이 주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강독 참 매격적인 공부 방법인것 같아요
이끌어 주시는 정군샘과
이렇게 정리로 나누어주시는 학인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엔젤님의 댓글

엔젤 작성일

목인샘 후기 읽으며 제 뇌는 여전히 더듬더듬...
베르그손의 난해한 단어들이 제겐 더 문제 인듯해요
무모함을 장착하고 저도 전진 입니다
수고하셨어요 ^^

한스님의 댓글

한스 작성일

ㅎㅎ '시간'의 사유.. 그게 바로 베르그송이 기존의 철학자들과 다른 점인 듯합니다..
목인샘도 우리도 조금씩 '시간'에 다가가고 있는 중..

권영필님의 댓글

권영필 작성일

정군샘이 첫 시간에 난해한 철학서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어휘들을 가지고 놀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 생가 나네요.  목인샘은 벌써 그렇게 실행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사유과정이 있엇겠지요. 수고했습니다~~

이형은님의 댓글

이형은 작성일

목인샘 글을 읽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지난 일요일로 돌아간 듯 강의 내용이 다시 생생히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이것이 현재가 과거를 재구성한다는 걸까요?!! 미진하면 미진한대로 전진하는 무모함을 장착하겠다는 구절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진!

들판님의 댓글

들판 작성일

당황했을 샘의 모습이 선하네요.참고로 전 미리 줌 켜놓고 다른 일보다 시간돼서 들어옵니다. 목인샘의 글을 읽으니 묘사가 너무 좋아 눈앞에 장면들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진동, 리듬, 감각 등 공부한 단어들의 활용까지..저도 강독을 통해 물음표가 지워져 나가는 기쁨을 느낍니다. 후기 올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