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5주차 2교시 후기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일성.png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5주차 2교시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구본숙 작성일22-06-03 17:35 조회463회 댓글3건

본문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5주차 2교시 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2학기 강독을 시작하고 5주차 수업이다. 수업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꼼꼼하게 수업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번에 후기를 쓴 부분은 신기하게도 지난 학기에 내가 글쓰기 주제를 핵심적으로 다루었던 부분이다. 이런 것이 동시성인가??^^ 에세이를 쓰며 특히 오늘 강독한 부분의 지각과 정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주에도 다른 강독 시간처럼 샘들의 다양한 생각과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지각과 정념 부분이 헷갈려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는데 정군샘께서는 나누어지지 않는 걸 지금 필요에 의해서 나눠서 설명하다 보니 어려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질문이 계속 이어진 듯 하다. 나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베르그손이 지각과 정념을 정리한 부분인<진실을 말하자면 정념은 지각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진료가 아니다. 정념은 오히려 지각에 섞이는 불순물일 뿐이다. p104> 라는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정군쌤께서 강조하셨듯이 지각이 먼저 일어나고 지각에 정념이 끼어든다는 말이다.

 

  ‘이 이미지에서 정념, 즉 이 이미지의 자신에 대한 현실적 노력이 산출된다.’는 무슨 말인가요? 고지영샘께서 물었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군샘께서는 고통의 예를 들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설명하셨다. 베르그손이 고통으로 정념을 설명한 부분을 찾아보니 <상해 당한 요소들이 사태를 제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노력, 즉 감각 신경 위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운동적 경향 p100>이라고 되어 있다.

 

  나의 정념들은 무수하다. 고통이 아니라 다른 무수한 정념 중 하나로 현실적 노력이 산출된다.’는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나는 고양이를 지금은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밤이면 반짝이는 눈동자로 소리도 없이 스물스물 다니며 사람을 놀래키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그때 당시 고양이에 대한 나의 지각과 정념의 과정을 살펴보자. 조용한 밤에 우유를 사려고 편의점을 가다가 갑자기 뛰어든 동네 고양이가 내 앞에 있다. 나는 고양이를 보고 눈을 통해 그 이미지를 반사하며 고양이가 거기에 있음을 지각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양이라는 이미지는 내 신체라는 이미지를 통해 연장되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연장된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내 안에서가 아니라 그것들 안에서 지각되듯이 나의 정념적 상태들은 그것들이 산출되는 곳에서, 즉 내 신체의 정해진 한 지점에서 느껴진다. p103> 외부(그것들이 산출되는 곳)에 있는 고양이라는 이미지의 지각이 신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내 안으로 연장되어 신체의 어느 지점에서 불쑥 끼어들어 고양이에 대한 정념이 발생한다. 이때 신체를 통해 지각된 고양이라는 이미지는 변형을 일으키며 대상과 상관없는 나만의 무서운 고양이라는 정념(감정)이 생겨난다. <정념의 작용은 우주와 우주의 역사에 진정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덧붙이는 것이다. p39> 신체라는 이미지로부터 발생하는 정념을 통해 새로운 어떤 것이 생겨난다는 말이 연결된다.

 

  나와 마주친 고양이도 아마 나라는 이미지를 지각할 것이다. 어떻게 지각할지는 알 수 없으나 베르그손의 입장에서 보면 추측은 가능하다. 고양이가 나를 지각하는 과정은 정념이 끼어들지 않는 이상 내가 지각하는 방식과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손은 지각과 정념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지각으로부터 연장되어 발생 된 고양이라는 정념까지는 정도의 차이만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꼭 고양이를 만나지 않고 지각하지 않아도 불쑥 고양이라는 정념을 발생시킨다. 이런 지점이 지각과 정념이 본성의 차이를 말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각은 이미지들에 가능적 행동의 경향성이다. 이는 작용, 반작용 운동의 연장선이다. 그럼 왜 작용 반작용이라는 운동성이 생겨났을까? 아메바 같은 단세포들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즉 생명을 유지하기 이런 작용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여기서 고양이에 대한 나의 정념은 어떤 현실적 노력이 산출되었는가? 고통이 <상해 당한 요소들이 사태를 제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노력>처럼 고양이에 대한 정념은 내가 생명체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세포 하나, 하나의 이미지들이 작용, 반작용의 운동성에 대한 노력을 시작으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즉 고통이 발생하는 작동방법과 같은 것은 아닐까? 정리하면 고양이에 대한 나의 정념은 작용, 반작용의 운동성의 연장선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시작 된 것이 아닐까?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강독하면서 읽었던 부분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글의 맥락이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계속 읽다 보면 숨은 그림찾기처럼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강독을 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해보고 읽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보고 읽은 것을 또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강독을 통해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진도가 너무 느려서 정군샘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강독을 통해 철학하는 일요일이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다.

댓글목록

남궁진님의 댓글

남궁진 작성일

강독 정리문 같은 후기문입니다. 저는 정념과 지각이 본성의 차이에 대한 본숙샘 설명도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정념은 나의 내부에서 외부의 자극이나 대상 없이도 불쑥불쑥 생겨나기도 하는  감정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지점이 그러했어요, 본숙샘 잘 읽었어요^^

강적님의 댓글

강적 작성일

지각, 감각, 정념 부분을 선생님 후기 덕분에 좀 더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또 읽고 생각하다보면 다시 헷갈려지겠지요~ㅠㅠ 그런데 지각되지 않을 때도 불쑥불쑥 발생하는 것이 정념이고  이것이 지각과 정념의 본성의 차이라고 설명하신 부분은 좀 더 설명이 듣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는 지각은 외부 대상에, 정념은 신체 내부로부터 발생하기에 본성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구본숙님의 댓글

구본숙 작성일

세미나 후기를 썼어야하는데 착각하고 강독시간 후반부를 후기로 썼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