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후기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일성.png

노자 <도덕경>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스 작성일22-07-18 08:27 조회1,761회 댓글11건

본문

노자사상은 원래 통치학이었다

 

  드디어 3학기 시작하는 날이다. 나는 오랜만에 감이당에 나갔다. 매번 줌으로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일성 멤버들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남산 자락의 나무들은 짙은 초록색이다. 감이당은 느낌이 친숙하다. 여자들이 친정에 가는 기분이 아마 이런 기분일지도 모른다. 다들 정말 반갑게 맞아 준다. 남궁샘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생일이라며 커피 등 음료를 마음대로 마시란다. 아마 자기가 일성 멤버들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마침 생일이라는 걸 빙자해서 그런 것 같다. 다들 서로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어 한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내밀한 사연을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를 공부와 수련을 위해 귀중한 일요일을 바친다. 배우면서 이야기하니 친숙할 뿐 아니라 만남이 성숙해진다. 지난달 고미숙선생님이 낸 청년붓다책에서 우정에 관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붓다의 공동체는 우정의 모임이었다. 나도 생각이 그렇다. 사랑보다는 우정이다. 좋았다 싫었다 하는 사랑은 인제 그만. 앞으로 우정이다.

 

  오늘부터 노자가 시작되었다. 사실 노자와 도덕경에 관해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다. 나도 도덕경을 차근차근 읽어보지 못했다. 노자의 도덕경은 총 81장으로 되어 있다. 왜 하필 81장일까? 지산샘은 이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은 81개의 난관을 지나간다. 똑같이 81. 이게 우연일까? 사실 불교라는 이질적인 사상이 중국에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불교의 사상은 도교의 와 연결점이 있다. 아무튼, 도덕경이 하필 81장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닌 듯하다.

 

노자사상은 통치학이었다

 

  지산샘은 노자의 사상은 원래 통치학이라고 말한다. 나는 노자의 도덕경을 세상일이 힘들 때, 마음을 비우기 위한 지혜서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즉 단순히 개인의 수행이나 마음가짐이 아니다, 더구나 노자 사상하면 왠지 속세를 떠난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게 아니라는 거다.

 

  지산샘은 우선 도덕경이 쓰여진 시기가 춘추시대라는 것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다르다. 그 차이가 무얼까? 춘추시대에는 천하통일이란 생각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춘추시대는 여러 국가가 도시국가들의 형태를 띠면서, 서로 경쟁은 하지만 서로를 멸망시키려고 까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조화를 이루며 살려고 했다.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한 듯하다. 아무튼, 춘추시대의 두 가지 키워드는 조화경쟁이다. 이때는 인재가 중요한 시기다. 경쟁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나라를 발전시킬 사상적 토대와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도 중국이 부러운 딱 하나가 있다면 춘추전국시대의 그 많은 사상의 홍수. 어떻게 그 몇백 년 시기에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사유들이 다 나올 수 있었을까. 사상들이 봇물 터지는 시기다. 공자, 노자, 순자, 맹자, 묵자, 한비자 등등. 사실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사유영역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듯하다.

 

  한편 전국시대는 다르다. ‘조화가 아니다. 그때는 서로 완전히 정복하려는 약육강식의 시대다. 그리하여 최후의 강자가 천하통일을 이루려는 시대다. 그럼으로써 소위 평화를 이루려는 시대. 그러다 보니 세상은 점점 삭막해진다. ‘천하통일을 이룬다는 멋져 보이는 꿈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고 파괴한다. 이러한 시기에 여러 사상가는 어떻게 같이 질서를 유지하며 잘 살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또한 전국시대의 경쟁은 군사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누가 원래 중국의 뿌리에 가까운가에 대한 경쟁이다. 거기서 등장하는 게황제(黃帝)‘. ’황제는 황하문명의 시조라는 의미다. 노자의 사상은 전국시대에 와서 황제개념이 합쳐져서 황로(黃老)사상으로 발전한다. 황로학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실제로 황로사상은 한나라 시대에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 중 하나인문경지치(文景之治)의 배경이 되었다. 도가적 통치술이 빛을 발한 시기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베르그송의 '지속'

 

  도가도비상도는 도덕경의 가장 핵심적인 개넘일 것이다. 노자는 도를 도라 말하면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도(常道)’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개념이나 존재를 서술하고 남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면 언어 자체를 존재로 착각하게 된다. ‘강아지라는 말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개별적인 강아지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노자가 경고하는 것은 위와 같은 언어와 존재에 대한 견해다.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는 곧 존재가 아니라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결코 존재를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구체적인 존재, 변화하는 존재, 지속 중에 있는 존재를 담을 수 없다. 언어의 한계다.

 

  나는 지난 학기에 공부했던 베르그송의지속이 생각난다. 변화하는 도중에 있는 것을 고정화시켜서 언어로 표현하면 이미 그것이 아닌 것이 된다. 변화는 시간성이 있는 말이다. 언어로 말하면 시간성을 상실한다. 언어로 고정화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속이 아니다. 이미 도가 아니다. 공간화해서 고정시킨 언어는 변화하는 것을 담지 못한다여기서 지산샘은 잘못 이해할까 봐 우려를 표한다. “물론 언어로 어떠한 생각을 다 담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언어를 포기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어로밖에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어의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감수하면서 사용하자는 말씀일 것이다.

 

  변화에 관해 지산샘은 재미있는 예를 드셨다. 바로 주역의 뇌풍항(雷風恒) . '부부의 괘'라는 것이다. 왠지 남녀관계에 관한 이야기라면 귀가 쫑긋해진다. 뇌풍은 우레와 바람이다. ()은 오랠 구(), 항상 상()과 같은 뜻으로 '오래간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레와 바람 같이 변하는 것이 오래간다는 말이다. 지산샘은 "변하지 않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변해야 오래간다는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 맞다. 이제 좀 살아보니 나도 수긍이 간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변치 않는 사랑을 하고.. "로 시작하는 결혼식 주례사는 없어져야 한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망상은 우리를 늘 괴롭게 한다. 절대 변하지 않는 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반드시 변한다. 그 변화를 알고 사랑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변할 것을 아는 사랑은 한때의 사랑을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시작되었다. 노자의 파격적인 사유는 우리의 생각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지난 학기 베르그송의 말을 떠올린다. “세상은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댓글목록

강적님의 댓글

강적 작성일

도덕경의 첫 시간을 정말 완벽하게 되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 흐르듯 막힘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와 닿으며 따뜻하고 흐믓해지는 후기였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후기 고맙습니다.

면이님의 댓글

면이 작성일

한수샘~~얼굴 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화면으로만 만나다가 실물영접을 하는 영광을 맛보았네요.ㅋㅋ
뇌풍항괘와 베르그손의 지속에 대한 한수 샘 샘각애 저도 동감입니다^^
덕분에 강의 내용과 그 때의 분위기가 되살아나네요.

목도리님의 댓글

목도리 작성일

한수샘 즐독 하였습니다. 위생을 철저히 하고자 하는 엔젤의 세심함이 돋보이네요. 강학원 학당에서 본 기억이 안나네요. 만나면 알아 볼수는 있겠죠?

단순삶님의 댓글

단순삶 작성일

아니 제가 빠진 날 한수쌤이 오셨군요..안타깝네요. 또 진쌤이 음료를 쏘셨군요..이것도 안타깝네요.
한 몸으로 두 곳에 있을 수 없으니 한 곳에서라도 지속을 느끼려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죠.
습지에서 지속을 느낀 저는 현장에서 지속을 느낀 한수쌤의 후기로 다시 지속을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습지의 지속과 일성 현장의 지속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어서요.
이번주도 또 오셔야 얼굴을 뵐 텐데...쩝 이번주는 안 오실 듯...ㅎㅎ

박운섭님의 댓글

박운섭 작성일

일요일 아침, 학교 가는 길에 한수샘을 만나서 놀라고, 너무 영해 보여서 또 놀라고, 중간에 앉은 자리가 흔적도 없이 깨끗해서 또또 놀라고. 그렇게 3번을 놀랐는데 월요일 올라온 후기가 너무 빨라서, 너무 조용한 단어들로 채워져서, 그런데도 내용은 너무 완전해서, 그렇게 또 3번을 놀랐습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사족] 걱정하시는 주례사는 진작에 박물관으로 가버리지 않았나요? 하도 빨리 사라져버려서 오히려 그리울 정도입니다.

이대중님의 댓글

이대중 작성일

그렇게 바쁘신 분이 이렇게 안바쁜듯 태연히 후기를 써놓으셨을까요. 공부는 안하면서 갑자기 샘이 납니다~

김재선님의 댓글

김재선 작성일

조원들께 선물해주신 '청년 붓다' 잘 읽겠습니다 :)

이형은님의 댓글

이형은 작성일

어제 저녁에는 작년 일성 3조 모임이 있었어요. 61년생 남궁진샘부터 86년생 박정원샘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만남인데도 대화에 전혀 이질감이 없고,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은 제 친구같이 젊게, 저보다 어린 선생님들은 제 친구같이 성숙하게 느껴지는 게 너무도 신기하고 좋았답니다. 어제 저희도 이구동성으로 동현샘에게 계속 변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한수샘은 사랑은 이제 그만이라시면서도 남녀 관계에 아직도 귀가 쫑긋하시다니 아직은 사랑에 한 발 담그고 계신 듯 하네요^^ 무엇보다 지산씨 강의를 다시 듣는 듯한 완벽 요점 정리 후기, 감사합니다!!!

남궁진님의 댓글

남궁진 작성일

맛있게 드시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한 잔 쐈습니다. ㅎㅎㅎ 사실, 저는 좀, 공부가 나에게 들어오길 거부하는 거 같아서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스스로 기운을 내보려는 마음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첫시간  노자는, 모든 건 변하고, 없는 것과 있는 것이 같은 뿌리이며 서로 생겨나게 하고 이루게 한다고 하니. 내 안에 있는 불멸의 원자들의 불확정한 운동과 흐름들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새학기가 시작되고, 방학동안 못뵈었던(방학이 엄청 길었던듯ㅎㅎ) 샘들 만나서 좋았습니다.

들판님의 댓글

들판 작성일

한수샘의 쉽고도 이해하기 좋은 글솜씨 부럽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뵈니 반가웠어요(오자 마자 또 도망가셨지만요 ㅎㅎ). 춘추전국시대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 많이 했는데,, 각 시기의 특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리가 늘 습관처럼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동현님의 댓글

유동현 작성일

도덕경과 베르그손, 주역까지 잘 버무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이해가 쏙쏙 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