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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질문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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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사 작성일23-07-11 11:51 조회401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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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찌의 단자론에 의하면 

 각각의 단자는 다른 모든 단자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 단자들은 말하자면  "문도 창도 없다" 단자들은 서로 상호소통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다. 

⇒  여기서 "문도 창도 없다" 란 것은 인간의 고독함을 설명하는것 같은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우리 인간의 삶은 타인들과의 절대적인  상호소통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가운데서 살아간다고 본다. 단적인 예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즉 사랑, 미움, 분노, 질투, 등 등 수많은 감정들은 상호소통과 서로의 영향하에서 생기는것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효험님의 댓글

효험 작성일

스피노자는 '실체는 창조된 것이 아니고 자연이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이 자연의 창조자라 말할 수 없다'
이점 때문에 스피노자의 철학은 유대교와 기독교도들에게 공격을 당한 이유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실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삼각형,사각형은 상상할 수 있다.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10각형,11각형..
1,001각형 1,002각형으로 전진할 때 개념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이것들에 대해 생각(사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적 이미지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 많고 우리는 신에게 상상할 수 있는 속성들을 귀결 시킬 수 없다고 하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됩니다. 사유 할 수 있는 것과 정신적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틀린 것인지요

또한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실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현현 하는데 연장 속성과 사유 속성이라 부른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연장 속성하의 모디(양상)이고 개별 생각들은 사유 속성하의 양상들이다.
우리는 실체의 두 속성의 상이한 양상들과 직접 마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체와 직접 마주할 수 없다.
그리고 색깔 렌즈를 통한 실험에서 스피노자는 연장과 사유라는 두 속성은 하나의 동일한 실체의 두 측면일 뿐이다 
하고 말하는데 기독교 신앙인으로 살아온 저는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신이 없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다 자연이 증거다 자연이 어찌 존재가 없이 나타날 수 있는가
그 능력을 인간의 두뇌로는 알 수 없는 경지에 있기에 신이다 라고 알고 있었는데 일원론, 범신론의
논리와는 다른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수민님의 댓글

수민 작성일

저의 질문은 '수학적 형식의 배후에서 우리는 우주 내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비전을 발견한다' <서양 철학사 448쪽>에서 출발했습니다.
'수학적 형식'은 유클리트 기하학 방식인 공리와 연역적 추론을 통해 절대적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다음은 '인간의 위치에 대한 비전' 부분입니다. 올바른 시각으로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감으로써 우리가 속한 우주 '모든 것을 포괄하는','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연관도 어떻게 적절하게 통합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연역적 추론의 방식으로 명확한 인식과 인정 에 도착할 때, 자기 이해가 확장, 심화되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스피노자가 발견한 비전으로 볼 수 있을까요 ?

길상님의 댓글

길상 작성일

교재 456에서 “자유는 우리가 우리자신의 본성을 정확히 알 것을 요구하는 과제이다.”라고 하고 “우리 자신의 본성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전체의 측면들로, 실체의 양상들로 이해한다는 것을 말한다.“라며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자신을 공동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주어진 사회 내에서 사회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본질이 내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본성에 대한 이해가 늘 변화하고 움직이는 공동체와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결정되는 것에 바탕을 둔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이 곧 변화이듯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그것에 의해 형성되는 자기정체성과 내적, 외적 양상들 또한 늘 바뀔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자유를 갖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의 본성이란 것의 의미는 사전적 의미 -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천성(天性).사물이나 현상에 본디부터 있는 고유한 특성. 실성(實性) - 와는 다른 것인가요? 다르다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우리의 본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구름22님의 댓글

구름22 작성일

스피노자는 직접적 직관이 사물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는데, 자연의 법칙을 알고 우주의 필연적 본질을 통찰하는 것이 직접적 직관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스피노자는 열정, 정념, 감정이란 단어들을 언급하는데, 감정이란 한 단어로 대치해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는지요?
마지막으로 신과 실체는 결국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어떤사람A님의 댓글

어떤사람A 작성일

스피노자는 '실체는 자연이다.' 라고 했다.
스피노자의 실체론은 일원론, 즉 모든 것은 하나이며, 모든 것은 이 하나를 토대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과 자연이 모두 실체이기 때문에 결국 범신론에 이르며, 신과 자연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 즉 실체는 말하자면 그 자체의 논리적 구조에 기초하는 하나의 초시간적이고 정적인 전체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과 우리가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를 직접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다 큰 연관 관계 속에서 올바른 시각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포인트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불교의 연기론이나 주위의 모든 세계와 우리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주역의 원리와도 상통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