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몸자마우(325~344쪽) 3조 조혜선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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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몸자마우(325~344쪽) 3조 조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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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상 작성일23-09-04 19:09 조회9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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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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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님의 댓글

엇박 작성일

아주 빠른 발제에 놀랐습니다. 시간도 있고 해서 질문에 대한 코멘트 하나 적어볼까 합니다.
샘의 질문은 샘의 발제문 속에 답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삶만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삶과 죽음의 배합비율을 10:0으로 섞은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로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는 인생은 배합비율이 0:10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질문에 적어두신 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져오는 긍정적 부분과 우려하는 부정적 부분이 맞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이러한 죽음의 배합비율을 0에서 10까지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다 옳고 다 틀렸다고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취향의 문제가 되겠지요. 해서 그게 결국 답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발제문 초기에 나오는 중국의 중용이나 불교의 중관사상은 이렇게 전체 10 가운데 삶과 죽음(또는 다른 이름을 쓰더라도)의 비율을 조절하는 기계적인 중간을 선택하는 철학이 아니라는 말이 될 것 같네요. 그럼 제3의 답은 무엇인가? 바로 10으로 된 인생이지만,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해서 삶도 10, 죽음도 10을 채운 인생을 살라는 말이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니체의 위버멘쉬가 바로 그걸 체화한 인물이구요. 니체를 많이 읽으면 보통은 허무주의(니힐-이즘)에 빠진다는 상식이 있고 우리가 거기에 빠질 가능성도 제법 높겠지만, 니체의 원래 구상은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방도를 제시해보려는 노력, 그걸 영원회귀사상으로 부른다고 봅니다. 또한 그게 붓다가 말하는 윤회를 뛰어넘어버린 인생이라고 추측해보구요. 그러니 이들 위대한 철학의 결론은, 삶만 생각하는 것이나 어설프게 죽음을 섞어넣는 것이나 결국 같은 평면 위에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궁극의 목표는 양자가 같음을 직관함으로써, 윤회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라는, 도약하자는 그런 부추김, 그런 격려...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이게 힘들고 한번만에 절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 쉽게 시도하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윤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웬만큼 살 만하다, 가끔 즐겁기도 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지 않나, 뭐 이런 포기가 우리의 일상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제 댓글이 개그를 다큐로 받은 게 아니기를 바라면서, 좋은 발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