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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1주차(10.8)_후기_1조 박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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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엇박 작성일23-10-09 02:10 조회214회 댓글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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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10.8일, 4학기 1주차 후기를 쓰기 위해 현장을 탐문하러 집을 나서는데, 절기는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이고 햇빛은 온데간데 없이 기온은 은근히 내려가 제법 쌀쌀하며 지하철은 어제부터라면서 150원을 더 내라고 한다. 한 주뿐이었던 방학인 데도 제법 길었던 추석 연휴 탓인지 많은 도반님들이 오시는 길을 잊고 16명이서 첫 시간을 시작한다.

ㅇ 선불교 시간은 명성 높은 『육조단경』(돈황본)이 교재이다. 6조 혜능이 저자로 되어 있고, 해설은 정화스님이다. 법명 때문에 도반 사이에 비구니로 오해도 있었던 해설자 정화스님이 큰 덩치를 이끌고 등장하셨는데, 아뿔싸, 정샘과 달리 질문을 하면 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다들 서양철학사 시간과 달리 사전에 질문을 준비하지 않아서 좋아하였는데 그 사이를 찌르고 들어오시니, 어쩔 수 없이 안샘이 대리하여 두 가지 질문을 내셨다. 교재 53쪽에 나오는 사상(四相), 즉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정체가 무엇이냐가 첫 번째 질문이다. 50분 동안 이것 하나를 풀면서 정화스님은 인도의 힌두사상과 차별화된 불교의 등장, 성경 <레위기>의 동성애자 배척 기록, 인과라는 말이 사실은 인-연-과의 구조 속에 우리 삶이 우연임을 드러낸다는 것, 시인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예로 들면서 우리 삶의 근본으로서 연의 다양성의 의미 등등을 휘젓고 다니신다. 결국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으로 요약하면서 6조 혜능이 그 샘플이라고 매조지하신다.

ㅇ 잠깐 쉰 뒤에 두 번째 시간에는 교재 62쪽 등등에 ‘깨달음은 수행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계속 나오는데, 우리가 하는 공부는 뭔가 하는 의문에서 안샘이 던진 질문이다. 선의 깨달음은 단박에 오는 것[頓悟]이고 심지어 수행조차 단박[頓修]이라는 게 선불교의 가르침이라면서 돈오 대 점오, 돈수 대 점수 간의 싸움을 뜯어말리신다. 옛날에 우리가 돈오점수라는 4자성어를 들어봤는데 그에 대해 정화스님은 깨달음은 단박에 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불끈불끈 승질(?)이 올라올 때 그걸 누르는 근육을 기르는 것을 점수라고 할 수 있으므로, 돈수와 점수가 병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듯하다.(틀리면 할 수 없고...) 여기서도 다시 실상사 도법스님, 그레타 툰베리 등을 끌어와 “함께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게 (신도가 아닌) 우리의 깨달음”이라고 정리하신다.(맞나?) 혜능의 흔들리는 깃발 이야기와 같은 화두뿐만 아니라 득의의 뇌과학 전문용어를 우르르 몰고와서는 우리의 삶을 이루는 주체라는 것의 허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시고, 연기법으로 마감하신다. 기후위기에 대해서 누적된 파괴적 힘이 극복하려는 새로운 힘을 능가하는 현실을 들어 비관적으로 보시면서 끝. 12시 종이 울리지 않았는데 점심하러 나간다.

ㅇ 덕분에 남산 산책은 아주 여유가 있었다. 아직 단풍은 일렀지만. 오후 낭송시간에 『선어록』을 붙들고 돌아가면서 한 장씩 읽어나갔다. 두 바퀴 못 미쳐 종료되었는데, 최고작은 운문 선사의 “호떡”(28쪽)이 차지하였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 듯하다.

ㅇ 마지막 세미나 시간. 교재는 『선의 황금시대』. 당나라 시대 혜능과 그 제자들이 선불교를 한창 휘날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존 우이고 말미에 붙여둔 절친 토마스 머튼의 책 소개 해설(<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선>) 부분부터 먼저 본다.(참고로 이 책의 번역자 김연수는 3학기 에세이 발표시간에 정샘이 ‘초고는 토고’라는 말을 뱉어냈다는 김천 출신의 잘 나가는 그 소설가이다. 검색 결과 그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 나온다는 건 알아냈는데, 그 책을 앞에 두고 1박2일(총 소요시간은 30분) 동안 뒤져도 끝내 해당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총 5명이 맡은 발제는 다들 훌륭하여 그것만 읽어도 전체의 대의를 짐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선불교라는 게 얼마나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는지 이미 충분히 알았기 때문에 심지어 기독교의 영성 전문가이자 관상가(!)가 쓴 내용을 내 것으로 체화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저마다 차이 나는 불교 또는 선불교와의 접촉 경험에 따라 제각각 다른 느낌을 받았다는 후문이고 보면 시절인연에 맞게 첫 미팅을 잘 끝냈지 않았나 싶다. 서양인들에게 선불교를 소개하려는 책으로 보이는데 과거 천년간 불교가 국교였던 한국인들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안샘의 중국 격의불교(格義佛敎)에 대한 강의가 인상적이었고, 1학기의 장자가 소환되었으며, 머튼의 개인사로 설왕설래하는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밤새 다 잊었는지 후기 필자는 마땅히 적을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섭의 염화미소, 현장법사의 서유기, 뭐 이런 이야기가 얼핏 떠오르지만 맥락을 조리 있게 연결하기는 어렵다. 단지 세미나 시간도 오전 수업과 마찬가지로 제때 끝났다는 소문을 전한다.

ㅇ 마무리에 이번 학기는 정화스님 강의 일정과 사이에 끼일 ‘씨앗문장 글쓰기’라든가, 세미나 시간의 교재 구성과 실제 명상 실습 등 학습시간 운영이 조금 유동일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1교시의 조별 질문 과제나 암송 시간의 간단한 암송 과제, 나중에 있을 암송 발표와 에세이 발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헷갈릴 소지가 조금 더 클 것으로 보여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요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10번뿐인 학습 시간을 최대한 빼먹지 않고 출석하는 것임이 분명하니, 다들 으쌰으쌰 합시다. 아, 그렇다. 『육조단경』의 부제는 ‘수행자가 의지해야 할 경전, 마음’으로 되어 있다. 오직 마음뿐(唯心)! 우리가 이번 학기에 찾아다닐 것은 바로 마음이다.

ㅇ 변덕 심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댓글목록

고희영님의 댓글

고희영 작성일

너무 긴 휴식으로 잃었던 수업 감각을 샘 후기글 덕분에 찾아가는 중 입니다. 디테일한 멋진 후기글 버스안에서 읽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버스에서 읽으면서 댓글까지 달아주시다니, 비록 한 주가 지나 제 후기의 약발은 끝났지만 마지막 답글을 생략할 수 없어 올립니다. 파란만장했던 샘의 23일성을 계속 응원합니다. 화이팅!!!

니은님의 댓글

니은 작성일

오늘 처음 들어와서 보니 댓글이 16개! 입이 떡!
답글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러웠습니다~
언제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보이고, 열심히 하시는 샘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래, 저런 사람이 공부해야지, 나는 좀...' 이러기도 합니다. 뒤의 생각은 운섭샘의 허물이 아닙니다.
일성의 꽃! 운섭샘, 감사합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댓글에 답글 붙여 부풀리기 한 효과를 봤네요. 근데 인문학 공부에 저런 요상한 말씀은 천만부당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고시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운전면허 시험공부가 더 맞는 비유일 것 같네요. ㅎㅎㅎ 마지막 말씀은 참으로 과분하군요.

어떤사람A님의 댓글

어떤사람A 작성일

운섭샘...존경합니다아~!!! 그리고,
강인이 만큼이나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우세요~.^ㅋㅋㅋ===333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초장에 와락 댓글이 달린 후에 너무 일찍 절필이 되었는데 샘이 뒤늦게 한 칼 밀어넣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저 말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약간 애매하지 않나요? 얼핏 낮술 기미가 살짝 보였는데, 제가 명예훼손으로 잡혀갈지 모르겠네요. K I Lee가 군대 면제 되어서 더 큰 활약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연주님의 댓글

연주 작성일

참으로 운섭샘 다운 후기네요. 재미있고만요~ ^^ 불교 강의는 듣는 동안에는 뭔가 알 것 같았는데, 지나고 나면 다시 모르겠는 것 같아요. 혜능의 흔들리는 깃발 이야기에서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일상에 적용하는 일주일 보내볼까 합니다. (잘 될런지는.. ㅋㅋㅋㅋ)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저 깃발은 책에 따르면 23살의 혜능이 의발을 전수받은 후 오랫동안 산속에서 수련하고 드디어 대중설법에 나서기로 하면서 첫 선문답으로 등장하는 것 같네요. 그래서 이후 수십년간 이어지는 숱한 설법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니 아마 선불교에서는 우리가 절에 갈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일주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나 싶군요. 말하자면 이게 트레이드마크이고, 그만큼 여기저기 쓰이고, 그날 정화스님이 예시로 든 것처럼 절대 심플하게 볼 게 아닌 듯하지요? 샘의 일주일 탐험기가 기대됩니다.

최운영님의 댓글

최운영 작성일

4학기 첫시간부터 마라톤으로 인한 도로상황으로 중간에 들어오기 민망할 정도의 엄청난 지각을 하고 새롭고 낯선 불교수업에 조금 당황되고 마음도 어수선해졌는데요. 늘 한결같이 열심이신 샘의 후기 읽으며 집중하자 마음 다잡아 봅니다. 4학기 응원과 격려가 되네요. 후기 재밌게 잘 읽었고 감사합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늦어서 보통의 제자리를 놓치시고 강의실 중간에 앉았으니 자리조차 조금 생경했겠네요. 몹쓸 마라톤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드렸으니 선불교와 명상으로 한 세월 낚아보시지요. 언제나 반갑습니다.

이대중님의 댓글

이대중 작성일

유머가 빠지믄 운섭 스타일이 아니지요~
역시나 재미난글~ 과감하게 휘리릭 흘러가면서도 빠뜨림없는 꼼꼼한 내용~!
언제나 유쾌한 운섭샘 감사합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3조장님에게 발제문 대독하게 하시고는, 그렇게 바쁘신데, 댓글은 달아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아시안게임까지 모든 대회가 다 끝났으니 빠짐없이 필동에 출두하시는 거죠?

구름22님의 댓글

구름22 작성일

엇박님!
후기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복습 잘 했구요.
4학기 첫 강의를 잘 요약해주신 샘 덕분에 어려운 선불교와 조금은 낯을 덜 가리게 되었네요.
재미난 후기 감사합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구름둘둘님, 댓글 감사합니다. 낯이 선 선불교군요. 언제든 연락주시면 좀 더 익숙하도록 해드리죠. 이런 거 어때요? '선불교'의 반대말 찾기 놀이... 앉은불교, 후불교, 점불교, 악불교... 이 놀이는 연주샘한테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수민님의 댓글

수민 작성일

길을 잊은 일인으로, 낯선 책 제목으로 걱정했는데 ^^;; 샘의 친절한 후기 덕분에 조금 아주 조금 수업의 흐름을 이해했습니다.~ 질문 사전 준비하기와 가장 중요한 결석하지 않기 !! 으쌰으쌰 하고, 복습하면서 궁금한 부분 있으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덕분에 알게된 찬이슬 맺히는 한로 절기에 감기 조심 하세요~ 감사합니다 ^^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길을 잊은 분이 댓글 단다는 것이 제법 드문 일이라 더 반갑습니다. 새로운 공부에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길에서 만난 연을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쉽지 않겠죠?

강은설님의 댓글

강은설 작성일

후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으며 웃음이 나더라구요. 정화스님 강의 중에 인과연이 인상적이었는데, 많은 연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다보면 나의 사고가 넓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어차피 이 게시판에 제가 글 써서 대댓글 달 일이 없을 듯하여 모든 댓글에 응답해봅니다. 역시 연연과 군요. 그래서 저에게는 샘의 '싯다르타'가 연이 됩니다. 거기서 새로운 물줄기가 자꾸자꾸 만들어집니다. 항상 1빠에 감사드립니다.

김경아님의 댓글

김경아 작성일

참 고요한 시간 새벽에 후기를 올리셨네요. 재밌게 후기를 쓰시면서 새벽에 많이 웃으셨을것을 생각하니 저도 몇번이나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어요.ㅎㅎ 강의내용 잊어버리기전에 복습까지 될 수있도록 꼼꼼하게 작성해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도'인과'에서 '인'에는 많은 '연'이 있어야 '과'를 얻는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조하셨던 '돈오' 부분은 후기를 읽으며 다시 정리가 되네요~ 간결하게 잘 요약하신 후기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

엇박님의 댓글

엇박 댓글의 댓글 작성일

변함없이 댓글 달아주시고 또 홍보대사까지 맡아주시고, 감사드립니다. 근데 어디서 웃음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전 아주 진지하게 썼는데 말입니다. 인연과와 돈오에 꽂히셨군요. 앞으로 계속 함께 가야 할 단어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