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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2교시 반야심경_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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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주 작성일24-02-28 09:44 조회76회 댓글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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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류연주 질문입니다. 

(질문1) 간절한 마음의 기적은 이타적인 것을 소원할때만 이룰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살면서 무언가를 바란적은 많지만 쉽게 포기하고 잊혀지고 중단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을때, 뭔가를 떠올리다가는 이게 소원으로까지 바라야 할 일인가 싶어요. 제가 간절함이 없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관두는 것 같은데 이젠 작은 것 하나라도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이타적이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작은 바람들에도 간절함을 담아도 될까요? 

(질문2) 그리고 간절하다는 게 어디까지 바라는 마음인지 잘 모르겠어요. 

댓글목록

강종아님의 댓글

강종아 작성일

많은 사람들과 철학자들과 종교에서 ‘사랑’ 혹은 그와 비슷한 여러 단어를 쓰지만
각자들 이해하는 ‘사랑’의 정의는 조금씩 다른거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가요?
‘사랑’은 무엇인가요?

조혜선님의 댓글

조혜선 작성일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공부하면서 양자의 세계의 다양한 해석들 중 관계론적인 해석이 불교의 연기법의 무아, 무상의 이치와 많은 부분이 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불교도 과학도 처음 접해서 아직은 뭐가 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두 공부가 마음과 정신, 물질의 근본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과 불교의 가르침을 비교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연한활력님의 댓글

유연한활력 작성일

1. 화엄경에서의 네 가지 법계가 궁금합니다. (216쪽)
2. "뇌파는 다른 것들과 달리, 그 장벽을 뚫고 나가서 지구 저편에 떨어져 있는 것까지 파악해냅니다. 이것을 '하늘의 눈'이라는 뜻에서 천안天眼이라 부르며, '신들의 눈'이라는 의미로 신안神眼이라 부르기도 해요." (319쪽) 부분이 궁금합니다.
2조 박우경입니다.

김자비님의 댓글

김자비 작성일

어떻게 하면 무주상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람은 언제나 그 대가를 바라지 않나요?
복덕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행복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냥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인가요?

점배기님의 댓글

점배기 작성일

작년 읽었던 교재에서 '티벳 불교에서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전생에 나의 어머니였다.'라는 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윤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즐거움과 괴로움, 괴로움과 즐거움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윤회다....인생이 고라 함은 인생이 고락의 윤회라는 말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276쪽) 윤회란 계속 다시 태어나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한 인생에서의 고락을 뜻하는 것일까요?

돌피니님의 댓글

돌피니 작성일

1.  대승불교로서 반야심경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이나 의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P.216~222) 화엄경에 이사무애법계와 사사무애법계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이사무애법계는 분별은 하지만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사사무애법계는 분별이 존재하지 않는 깨달음의 차원이 이야기한 것인가요? 이사무애법계가 보살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럼 여기서 보살은 깨닫지 못한 존재인 건가요?

이상준님의 댓글

이상준 작성일

1. 감이당에서는 명리학을 배우기도 하는데, 법륜스님은 자기 팔자가 어떻다는지 올해 사주에 뭐가 들어온다느니 하는 것들은 다 아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사주팔자를 알고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 아니면 자기라는 상을 만들어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소승에서는 대승의 '보살'과는 달리 성문 내지 연각으로 혼자 내지 소수의 사람과 함께 해탈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깨달음에 이름을 중생들에게 보여주는 것 또한 보살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 왜 대승에서는 중생들과 함께 가는 지장보살님과 같은 대덕을 강조하게 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것을 그저 서로 방식이 다르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여겨도 되는 것인가요.

강은설님의 댓글

강은설 작성일

반야심경 189쪽 "우리의 존재는 인연 따라 일어납니다.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 따라 나툰다는 불수자성수연성의 이치를 깨달으면 우리의 삶이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에서 우리의 존재는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스스로의 성품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불수자성수연성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홍혜정님의 댓글

홍혜정 작성일

1. 현재의 삶에서는 간절함이 없는 것같은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간절함은 어떻게 생길까요?
2.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깨질 때 상처를 많이 받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자책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일의 대처방법은?